[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살아진다 - 그녀를 그리다 [도서]

짧은 글에서 긴 세월을 엿보다.
글 입력 2022.06.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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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의 빈자리를 느낄 때의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운이 좋았던 것인지, 감사하게도 나는 아직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던 적이 없다. 반려동물을 길렀던 적도 없어서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의 감정을 온전히 알지는 못한다.

 

남들의 이야기가 슬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완전하게 공감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곧 누군가를 먼저 보낼 일이 그리 멀지 않음을 느끼고 있는 요새,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집을 읽게 되었다.

 

시집 <그녀를 그리다>는 시인 ‘박상천’의 아내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하게 느닷없이 사별하게 된 후, 남겨진 남편의 마음을 눌러쓴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는 급작스럽게 아내를 떠나보내고 시인은 ‘의미 없는 시간의 한구석’에 버려졌음을 느꼈다고 했다.

 

아내의 부재는 겨울이 왔음에도 여전한 여름 이불, 김치 얼룩이 지지 않는 도마, 함께 쓰던 양치컵, 좋아하던 쑥갓 등 일상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로 찾아왔고 ‘혼자’라는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시를 써내려 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 시퍼런 가을 하늘도, /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의미 없는 시간의 한 구석 어딘가에 / 나는 버려져 있을 뿐이다.

 

의미 없는 시간의 찬바람이 / 초라한 이불 속을 파고드는 밤.

아, 이불장 속 압축팩엔 / 그녀가 넣어둔 지난 계절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압축팩 지퍼를 열면 / 그 계절의 따뜻한 냄새가 부풀어 오르며 / 되살아날 수 있을까?

 

- 이불 中 일부 발췌

 

 

의미 없는 시간의 한구석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뿐이라는 부분에서 아내의 부재에 대한 그의 상실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 부분을 읽다 문득 무서워졌다.

 

언젠가 다가올 면역 없는 이별의 무게가 전혀 가늠되지 않은 무거운 감정이라 무너져 내리면 어떡하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미래에 나는 과연 면역 없는 이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겠지.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 차를 몰고 가다가 길가에 세우고 / 한참을 울던 시간도 있었지만 / 살다 보니 살아졌다.

밥을 먹다가도 /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어 / 한참을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지만 / 살다 보니 살아졌다.

터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 시간도 많아졌지만 / 살다 보니 살아졌다.

피어나는 꽃들조차 그렇게 싫더니만 / 살다 보니 살아졌다.

거지 같다 정말 거지 같다, /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 속으로 욕을 하며 살았지만 /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살다 보면 살아진다 中 일부 발췌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뮤지컬 ‘서편제’의 ‘살다 보면’이라는 넘버에 등장한 가사다. 한때, 이 곡을 계속 반복하며 들었었는데, 책의 ‘살다 보면 살아진다’를 보니 노래를 들었을 때의 기억과 감정이 맞물려 왔다. 곡을 들으면서도 ‘부재’에 대한 슬픔과 담담함이 함께 느껴졌는데, 이 시를 읽으면서도 시간 속에 닳고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어느 한 켠에 남아있는 슬픔을 본 것 같았다.

 

목도한 이별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며 슬픔에 잠식된 감정이 아닌,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흔적을 마주하면서 마모된 슬픔에 담담해진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그 담담해진 감정이 느껴졌을 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별로 인한 빈자리를 확인하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슬퍼했기에 이렇게 담담해졌는지. 짧은 글에서 긴 세월을 엿본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도는 이런 것이다.

딸과는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소서. / 그의 손을 붙잡고 / ‘네가 내 딸이어서 고마웠다’는 / 인사를 할 수 있는 / 따뜻한 기회를 주소서.

딸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 따뜻한 기회를 주소서. / 아내와 이별 인사조차 못 나누고 / 병원 한 귀퉁이에 서서, / 하염없이 울어야 했던 그 새벽의 이별이 / 딸에겐 일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손을 붙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 따뜻하게 따뜻하게 이별하게 해주소서.

 

- 따뜻한 이별 中 일부 발췌

 

 

아무래도 나는 아직 철없는 딸인가 보다. 반려자의 빈자리를 쫓으며 슬픔을 느끼던 때보다 미래에 자신마저 떠났을 때 남겨진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부분에서 다른 어떤 부분보다 울컥하는 감정을 마주했다.

 

내가 떠나야 하는 순간에도 ‘나의 슬픔’보다 ‘남겨진 이의 슬픔’이 더 중요한. 부디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오질 않길. 어차피 해야 하는 이별이기에 따뜻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자그마한 시간이라도 주어지길 바라는 심정에서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나의 부모님 역시 똑같이 생각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자 알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마, 내가 아직 철없는 딸이라는 거겠지.

 

앞에서 말했다시피 아직 누군가와 이별, 부재를 경험한 적이 없다 보니, 책 초반에는 공감보다는 이해가 앞섰던 것 같다. 그러나 시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내용이 누적되다 보니, 작가의 심정이 나에게 흘러 들어왔고 끝으로 갈수록 공감과 약하게나마 감정이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이별의 순간이 있을 거라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훗날 이별에 대한 감정을 알게 됐을 때 다시 읽어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겠지. 그때는 어떠한 마음으로 읽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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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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