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

글 입력 2022.06.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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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우린 솔직하지 못해 때론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앞에서도 거짓말을 한다. 타인에게만 거짓말을 하면 다행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여 자기 마음을 속이기도 한다. 그래서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감당할 수 없이 커진 마음을 발견하고, 그때는 다가가지도 멀어지도 못해 슬픔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필자는 싫은 건 싫다고 직설적이게 말하는 편이지만 좋은 것 앞에선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다. 사실 내게 그런 경향성이 있다고 미처 알지 못했는데 이청준의 <이어도>를 읽으면서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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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섬 '이어도'


 

이어도라는 섬을 들어봤는가.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에게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환상의 섬이다. 그곳으로 가면 힘들게 일하며 고달프게 살지 않아도 평생 굶어 죽을 일이 없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어도를 본 사람은 육지로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흉흉한 소문도 함께 있었다. 그들에게 이어도는 가난하고 고된 생활을 견디게 하는 낭만이자, 동시에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방식이었다. 섬의 특성상 뱃일로 생계를 유지했던 섬사람들에게 가족들이 바다로 일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망인이 유토피아 공간인 이어도로 갔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들이 보고 싶을 때면 이어도에 대한 노랫말이 담긴 구슬픈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그리움을 달래고 죽음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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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를 증오했던 천남석


 

하지만 주인공 천남석에게 이어도는 환상의 섬이 아닌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만든 죽음의 공간일 뿐이었다. 뱃일을 하다 이어도를 발견했다는 아버지가 이어도를 한번 더 보기 위해 바다로 갔다가 육지로 돌아오지 못했고,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에 한이 서려 매일같이 이어도 노래를 부르다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어도로 아버지와 엄마를 모두 잃은 천남석에게 이어도는 증오의 대상이었고, 그는 말도 안 되는 섬의 존재를 믿으며 희망과 슬픔을 반복하는 섬을 떠나고자 했다. 천남석은 섬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지로 와서 기자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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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천남석


 

어느 날 이어도와 비슷한 섬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해군에서는 이어도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이어도와 인연이 깊었던 천남석은 누구보다도 수색 작업에 관심이 많았고, 적극적으로 취재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 섬이 이어도가 아님이 밝혀지고 이어도는 실재하지 않는 섬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천남석은 실종이 된다. 천남석의 갑작스러운 실종에 의문을 품은 해군 선우현은 진실을 밝히고자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을 조사한다. 천남석이 일했던 직장의 동료 양주호는 그가 자살했을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어도를 증오했던 사람인데 왜 이어도의 존재 하나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 물음에 양주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남석 그 자야말로 그가 그토록 자기의 이어도를 부인하고 섬을 떠나고 싶어 했던 만큼,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그 이어도를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역설 같군요.”

“역설이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다만 그 이어도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과는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기의 섬을 너무도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섬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뿐입니다.”

 

 

 

미움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기에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미워하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미움은 애정의 다른 형태일 뿐인지 감정의 근본적 시작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마 천남석 본인도 자신이 이어도를 사랑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미워하는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의 본심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알 수 없는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그때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어도를 누구보다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말이다. 남들처럼 이어도를 예찬하고 동경하지 않았지만 천남석은 나름 자신의 방법대로 이어도를 사랑하고 있었다. 미움의 방식이 본심을 늦게 깨닫게 방해했을 뿐. 그리고 사랑을 미흡하게라도 완성시키기 위해 마지막 최후의 방법으로 이어도로 가는 유일한 방법인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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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어도같은 존재는


 

나에게 천남석의 이어도 같은 존재는 '영원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해 믿음이 적어 영원한 사랑이 어디 있겠냐 늘 말하고 다닌다. 영원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달콤한 유혹을 하는 것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사실 나도 천남석과 다르지 않았다. 영원한 사랑을 강하게 부정할수록 나는 누구보다도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랑이 두려운 건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 앞에서 두려움이 커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움의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각자 이어도 같은 존재는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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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이어도는 무엇인가요.

부정하고 있지만 부정하지 않는 것.

사실은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는 것.

 

 

[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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