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열심히’ 사는데, ‘잘’ 살지는 못하고 있어요

글 입력 2022.06.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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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흘러가 버렸는지 모르겠는데,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어요. 1년 휴학을 해서 4학년 1학기이지만 조기졸업을 신청해서 사실상 막학기입니다.

 

사람들이 엇학기로 졸업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조졸하려고 한다고 대답하면, 얼마나 공부를 잘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조기 취업이 된 거냐고 물어봐요. 그렇게 공부를 잘 하지도 않고, 그냥 내돈내산 전액 등록금이 아까워서 열심히 수업을 많이 듣다 보니 학점이 채워져서 어쩌다 보니 한 거라고, 예비 백수라고 대답해요.

 

 

학교에서 좋은 강의들 많이 들으세요.

 

 

대학교에서의 수업이 학교에서 듣는 인생의 마지막 강의일 수 있잖아요. 귀한 교양 강의나 수업들을 찾아서 들으라고 말하는 어른들이나 유튜브에서의 조언들을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서 인정받은 유명한 교양 강의들도 저에겐 감흥이 없었어요. 수업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감탄하면서 공부하고 배움을 얻고자 했던 수업이 몇 없었거든요. 좋은 교수님들도 계시지만 이제 더 이상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요즘엔 다양한 방법으로 질 좋은 강연을 접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등록금 몇백만 원 낼 바에야, 그 돈으로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종강이 1달도 안 남아서, 2022년의 하반기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고민 중입니다.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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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조바심으로 조절을 하고 싶었던 거였어요. 조졸하고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방법을 생각해보다 찾은 조졸 요건이 우연히 충족됐고 덜컥 신청한 거죠. 열심히 1, 2, 3학년 다녔으니까 그 보상으로 한 학기쯤은 넘겨도 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조졸하고서도 정해진 게 없는 백수이긴 하지만, 조졸하는 학생은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 프레임도 괜히 좋긴 했어요.


지금은 나의 24살을 조금 더 소중히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게 취업으로 회사에 다니는 것일 수도 있고,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얻는 경험일 수도 있고, 아직은 정하지 못해서 열려있네요.


이렇게 여유로운 척하고 있지만, 상반기에도 회사 원서를 계속 넣었어요. 자기소개서를 써서 후딱 내고 필기시험을 보고, 아마 6월에도 계속 시험을 보러 다닐 예정이에요. 인턴을 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 넣고 우수수 서류탈락을 받을 때보다 타격감이 적어요. 재작년보다, 작년보다 멘탈이 강해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필기시험을 보고 나올 땐, 얼마나 자괴감이 큰지 ㅎㅎ 아직도 어른이 되긴 글렀구나 싶었죠. 그래도 필기 과목들을 못해도 3년은 공부한 건데, 학교 시험이 아닌 입사 시험으로서 전공과목을 보니까 아예 모르겠더라고요. 틈틈이 인터넷 강의도 들으면서 공부 조금씩 했는데 역시, 제대로 안 했던 거죠.

 

 

 

열심히 안 살았네



인턴 업무가 12월 초에 끝나고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으면 이 시험을 조금은 더 잘 봤겠지, 후회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었어요. 저번 주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학교 축제가 열린 주간이었습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주말에 치를 기업 필기시험을 준비하고자 벼락치기로 책을 구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집에 와서 공부하는데, 집중은 안 되고 대외활동 일정도 바쁘고 1달에 한 번 찾아오는 급격한 호르몬 변화의 시기와도 딱 겹쳐서 공부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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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시험을 못 본 핑계를 모아 둘러대는 거예요. 일주일 정도 벼락치기하고 시험장에 들어서 문제들을 읽어보니 올해는 난이도가 쉬운 게 바로 느껴져요! 이런 건 필기 과목 입문에서 배우는 것들인데? 이 문제들조차 못 푸는 내 실력에 놀라고 반성하다가 시험 시간이 끝나버렸어요.

 

2시간 동안 처절하게 내가 얼마나 제대로 공부를 안 했는지, 허술하게 넘겨짚고 문제들을 다 파악했다고 외면한 건지 느꼈습니다. 열심히 공부 안 했네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하거늘, 본분을 지키지 못한 학생은 다음 단계인 회사원이 될 수 없나 봐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요즘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입니다.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요즘 자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본캐 말고도 부캐들을 탄생시켜 여러 일들을 하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잖아요. 저도 지금까지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 본캐였고, 부캐로 작가 지망생,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문화예술에 대한 글을 끄적이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열심히 내 관심 분야인 예술, 문화계에서 대외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올해는 특히 좋은 기회들이 하나둘 찾아와 활동 범위가 커졌어요. 문화예술계 활동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취준생으로서 본업과 부업을 명확히 나눌 때가 온 것 같아요. 저는 스스로 멀티태스킹이 잘 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는데, 요즘 에너지의 분산이 너무나 심해져 모든 것을 다 애매하게,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하면, 자꾸 다른 일들이 의도치 않게 많아지고, 문화예술 쪽으로 확 틀어버리기엔 자신이 없고, 벌써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어 안정성에 대한 집착이 커지곤 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고는 자부할 수 있어요. 새벽 요가로 아침을 시작해 학교 수업 공부를 하다가 왕복 4시간 등하교 때 오디오북을 듣고, 수업 듣고 대외활동 일정을 하거나 자기소개서 작성, 기획안 구상, 경제 공부 등 주어진 과제들을 하고 자기 전 수면 명상을 틀어두고 하루를 마무리해요. 틈틈이 친구도 만나고 취미 클래스도 다니고, 산책도 해요. 그렇게 올해는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기업 입사 시험으로 전공 필기시험을 보고 오면, 그동안 뭘 열심히 한 건지 현타를 맞고 잘 살아내지 못했다고 느껴요.

 

 


잘 살 수 있으려면


 

무언가 선택해서 그 대상에 몰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선택에 따르는 위험과 아무도 모르는 결과에 무서워서 선뜻 결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아 버거워하면서도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과연 이 일들을 해서 내가 잘살고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목적의식이 없어서 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부디 무사히 졸업하고 여유롭게 학교 관련 과제들을 해치운 다음, 생각해보자고 또 열심히 계획만 하고 있네요.


어릴 때부터 인생 생활신조가 “열심히 열심히”였어요. 묵묵히 열심히 살아내는 게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표어 대회가 있으면 열심히 글자 그리면서 검은색, 빨간색 물감으로 한 땀 한 땀 글자들을 채워갔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열심히 사는 건 맞는데, 내가 잘살고 있지는 못하다는 겁니다. 아무도 열심히 살면서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효율성이나 가치 따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그냥 멍청하지만 노력하면 다 된다고, 누가 알아봐 줄 거라고 짐작하고 넘겼어요. 그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얻은 결과물들도 겉으로 보기엔 제법 괜찮아요. 하지만 제가 들인 시간의 가치와 노력, 에너지를 따져보면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머리를 써볼 거예요. ‘열심히’와 ‘잘’이 합쳐진다면, 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수동적인 그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잘 살고 싶어요. 잘 살 수 있으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요?  우선 지금처럼 삶의 여유를 느끼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삶의 여유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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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과제는 타임 어택으로 빡빡하게 시간을 제한해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여유롭게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일상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이 방법이 맞는 건지 아직은 모르겠고,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감이 잡히지도 않지만, 꼭 올해가 가기 전, 목적의식을 만들고 저의 에너지를 집중시킬 일, 공간, 행동들을 찾을 겁니다.


열심히 살고 있는 모두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행 바라지 않고 착실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잘 맡고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더 잘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때가 오겠죠? 다 같이 화이팅하고 살아가요. 잘 사는 데 정답은 없잖아요.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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