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의 수많은 오르공 가족 [문학]

몰리에르, 「위선자 타르튀프」
글 입력 2022.05.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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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 타르튀프」에서 ‘타르튀프’의 뜸 들인 등장, 그가 활개를 치다 반전을 통해 몰락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독자들은 3막 1장이 지나도록 등장하지 않는 ‘타르튀프’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며 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중을 차지하며 각각의 개성을 가진 오르공 집안사람들에 대해 한 번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다.

 

과연 그 가족들은 ‘악’인 ‘타르튀프’에 대비해 ‘선’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을 ‘악’이라 말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선자 타르튀프」에서 오르공 가족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는 오르공 가족들과 더불어 하녀 ‘도린’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녀는 ‘타르튀프’가 어떤 인물이며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물쭈물하는 마리안에게 잘못된 태도를 일깨우고 계책을 세워보기도 한다. 하층 계급에 속하는 ‘도린’이 이야기에서 현명하고 빠릿빠릿한 인물로 등장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타르튀프’처럼 위선자가 아니더라도 남의 시선과 소문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교양을 지키며 절제된 삶을 사는 이들이 잘못된 일을 마주하더라도 하녀 ‘도린’처럼 함부로 나서서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르공’의 가족들도 ‘타르튀프’가 잘못된 것을 알지만, 모두 집의 주인이자 가부장인 ‘오르공’을 따라야 한다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클레앙트는 잘못된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음에도 ‘오르공’이 직접 나서기만을 바라며 ‘타르튀프’를 비난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말’만 늘어놓는다. 직접적인 피해를 본 ‘엘미르’ 역시 처음에는 이런 일을 알려 뭐 이로울 것이 있냐며 조용히 묻으려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위선자 ‘타르튀프’의 만행과 몰락을 그리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이런 만행을 처치하려 나서지 않는 나약한 혹은 필요 이상으로 교양 있는 오르공 가족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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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타르튀프’는 오르공 집안의 사람들에 비할 바 없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오르공 집안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극 중에 선과 악이 있다면 ‘타르튀프’는 분명히 악이다. 그러나 오르공네 집안사람들을 과연 반대로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남의 소문에 상관없이 바르게 살면 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닥친 어둠의 그림자를 막 쫓아내지도 못한다. 이런 오르공 가족들이 ‘악’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선’의 모습이라기에는 조금 허술한 점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클레앙트’는 극에서 말한다.

 

  
이분들은 요란스럽게 덕이 있음을 알리지도 않고 우리가 참아 내기 힘든 그런 허영심도 보이지 않아요. 이분들의 신앙은 인간적이며 너그럽지요. (중략) 우리는 그분들이 바르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걸 볼 수 있어요. - p.34-35*
 

 

어쩌면 그들은 완벽한 ‘선’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있는 ‘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모습은 사회 전반에서는 자칫 너무 평범해 보여서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극명한 ‘악’과 만나면 그 가치가 빛나게 된다. 오르공네 가족들은 ‘악’을 물리치기 위해 매 순간 현명하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살지는 않았고, 바르게 살려 노력이라도 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타르튀프’와 그들을 구분하는 평범해 보이지만 중요한 잣대였다. 오르공 가족들이 가끔 답답한 모습을 보이고, 그들을 완전한 ‘선’이라고 부를 수 없음에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는 까닭은 아마 그들이 평범한, 노력하고 있는 ‘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는 필자가 좋아하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세상이라는 이름의 낙하산은 매일 하늘 높은 곳에서 추락합니다. (...)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낙하산에 자꾸만 필사적으로 구멍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들도 그 낙하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지요. (...) 하지만 이 위태로운 낙하산을 내일도 무사히 쓸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매일매일 소리 없이 낙하산의 찢어진 구멍을 꿰매는 사람들입니다. - p. 176**

 

 

「위선자 타르튀프」는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을 수 있는 태도, 그럼에도 우리가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오르공의 가족들은 나서서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타르튀프라는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자' 옆에 섰을 때, 그들이 지켜나간 평범해 보이던 노력의 가치는 빛난다.

 

세상이라는 낙하산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당신과 나는 사실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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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몰리에르, 「위선자 타르튀프」, 『몰리에르 3부작』, 김익진 역, 아카넷, 2013.

 

참고 도서**

강신주, 강준만외 6명,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메디치 미디어, 2014.

(인용 부분은 정여울의 「거대한 낙하산을 한 땀 한 땀 꿰매는 사람들」)

 

 

[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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