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 팀 버튼 특별전

글 입력 2022.05.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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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기억


 

꽤 오래전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그 맘 때 즈음이면 그러하듯,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낮에도 밤의 시간을 사는 것 같았다.

 

누구의 제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이모, 사촌 언니라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조합으로 길을 나섰다. 사람이 꽤나 많은 공간에는 온갖 기괴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했고, 알 수 없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2012년 서울을 찾아왔던 팀 버튼의 전시였다. 그전에도, 그 후로도 많은 전시를 보았지만 유독 선명히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팀 버튼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가 상상한 세계가 너무나 기묘하고 유일했기 때문이다.

 

 

정사각 poster_4.jpg

 

 

10년의 시간이 흘러 팀 버튼이 다시 서울 찾았다. 한번 전시를 열었던 도시에서 다시 전시를 열지 않는다는 그는, 오래전 찾은 서울에서 느낀 온정으로 이곳을 다시 찾았다고 전한다.

 

팀 버튼 하면 가장 유명한 ‘가위손(1990)’,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등의 영화 작업물을 비롯해 드로잉, 의상, 음악 등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팀 버튼 월드 투어의 시작을 연 서울 전시회로 들어가 보자.

 

 


팀 버튼이라는 이름



팀 버튼 전시장2.jpg

 

 

팀 버튼은 환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시각적 요소들로 유명한 감독이자 예술가이다.

 

그가 만들어낸 장면들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녀서 그의 이름을 딴 ‘버트네스크(Burtonesque, 버튼 양식)’라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그의 유년 시절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는지, 무엇이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러한 궁금증을 품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팀 버튼이라는 사람에 대해 천천히 알게 된다. 팀 버튼의 초기 드로잉과 작업물을 통해 그가 영감을 받은 대상과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그의 대표 작품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이 탄생한 순간을 함께 경험해 보게 된다.

 

 

전시전경3.jpg

 

 

팀 버튼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버뱅크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따분하고 조용한 일상 속에서, 연말이면 찾아오는 화려한 축제는 그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다.

 

정적을 뚫고 찾아온 요란한 축제 분위기와 흥에 겨운 인물들은 ‘크리스마스 악몽’을 비롯해 그가 반복해서 작업하게 되는 테마로 녹아든다. 반짝이는 화면 속에 어쩐지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서글퍼지는 그의 영상 뒤에는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그의 어린 시절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익숙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팀 버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괴한 모습에 유머를 담은 존재들.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 섹션이다.


카니발레스크는 팀 버튼의 작품 양식, 테마를 일컫는 말로 유머와 공포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 융합된 것을 뜻한다. 카니발은 보통 축제를 의미하는데, 동시에 종교를 위해 절제하고 수행하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직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치와 유흥을 즐기는 기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적인 단어에 팀 버튼은 이끌렸다. 전시가 이어지면서 식인 주의를 의미하는 Cannibalism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비슷한 발음에서 그의 상상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팀 버튼 전시장3.jpg

 

 

이러한 그의 관심과 몰두를 가장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건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영상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 속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바다와 소금 냄새가 나는 굴의 형태를 한 소년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정력을 위해 굴을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속에는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이 외로움이 곧 팀 버튼이 수많은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해온 주제였다. 기괴하고 무서운 모습의 주인공들은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배제된다. 그들은 어두운 혼자만의 방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팀 버튼은 과연 그들을 괴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외면은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는 순수함을 지닌 존재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보호되고 싶었던 마음을 지닌 존재로 그려낸다. 그들을 천천히 만나보면서 실은 평범한 얼굴을 한 세상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쉽게 구 분짓고 차별하던 사람들이 괴물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까지 어딘가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모를 팀 버튼을 떠올려 본다. 추운 거리를 쓸쓸히 걸으며 따뜻한 온기가 흘러나오는 창문을 바라보는 존재들, 숨 막힐 듯한 외로움 속에 홀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 존재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그래서 팀 버튼의 세계는 기괴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서운 모습 뒤에 숨은 다정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찾아보게 된다.

 

팀 버튼의 세계를 거닐면서 내가 외로운 존재가 되었던 어느 순간들을 기억해 보고, 또 다른 누군가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은지 주위를 둘러보길 권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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