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이트 클럽: 구원은 오직 나로부터 가능하다 - 1부 [영화]

글 입력 2022.05.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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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소설 원작과 영화 둘 중 하나를 주력으로 골라야 할 것 같다. 두 작품의 디테일과 방향성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더욱 쉽게 구체적 이미지 제시가 가능한 1999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주(主)로 살펴보도록 하자.


전술했듯이 극의 주인공은 (어쨌거나) 셋이다. 극의 나레이션을 맡은 주인공 잭, 타일러, 말라까지. 여담으로, 잭은 원래 무명(無名)의 인물로 서술되지만, 주인공이 별다른 개성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과 함께 주인공의 자아분열 시퀀스는 일종의 반전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숨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또한 작품 홍보에 있어 주인공 이름을 표기할 수 있어야 하므로 ‘잭’이라는 가명이 설정됐다. 본문 역시 쉬운 길을 가려는 안일함으로 ‘잭’이라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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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을 만나다



잭은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다. 엔진 문제로 죽은 자동차 사고 현장을 보며 어떠한 측은지심도 없이 보상금 지급과 리콜 중 무엇이 더 저렴할지 고민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하는 건 이케아 가구를 사서 인테리어를 바꾸고 조미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사실 이러한 취미, 특히 새 가구는 매번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호텔 침구와 어메니티에 더 익숙한 잭에게 불필요한 것들이다. 특히 잭이 집 안 냉장고를 열었을 때 먹을 만한 음식 없이 열 네 가지 무지방 샐러드드레싱, 겨자소스, 일곱 개의 조미료만이 채워진 장면은 그에게 냉장고란 겨우 진열장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잭이 무의미한 ‘자신의 취미’를 늘어놓는 이유는 그의 ‘정체성’ 때문인데, 그는 이케아 가구로 집안을 채워 이케아가 내세운 실용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각종 조미료를 통해 집에서 직접 요리할 시간이 충분하고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섬세한 도시적 이미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즐거운 ‘취미’가 아니라, 정체성을 정립할 방식으로 ‘취미’를 채택한다. 이케아 가구를 카탈로그에서 하나 골라 주문하듯이, 그의 취미는 기성품에 불과하다. 잭은 다 큰 성인에다 정규교육을 밟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 없이는 여전히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물질에 집중된 피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취미와 정체성은 당연히 삶을 더욱 무료하고 공허하게 만들 뿐이므로, 잭은 극심한 불면증을 앓는다. 극도의 불면증에 시달리던 잭은 의사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자,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불면증으론 사람이 죽지 않아요”라면서 “화요일 저녁 교회에서 열리는 고환암 환자 모임에 가 보면 진짜 고통을 알게 될 거예요”하고 말한다.


의사의 권유대로 잭은 고환암 환자 모임에 참석하고, 그들의 고통에서 정서적 해방을 찾는다. 고환암 환자 모임에선 서로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타인의 처지가 어떠하든, 무슨 이야기를 하든 진심으로 공감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희망을 찾았다. 희망을 포기하니 자유가 보였다”라는 잭의 대사처럼, 삶의 희망을 잃은 이들을 통해 잭은 ‘나만 죽지 못한 채 사는 게 아니구나’하는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해방은 잭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불면을 일시적으로 달랠 뿐이다. 자신의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환자들의 슬픔을 이용하는 건 물론, 다시 한번 거짓된 정체성의 가면으로 남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원하는 점에서 그렇다.

 

뻔뻔하게도 잭은 고환암 환자 모임에 이어 알코올 중독 모임, 과식 환자 모임 등 매일 고통받는 이들의 모임에 드나든다. 정체성 확립의 필요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무시한 채, 오직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한 정서적 해방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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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를 만나다



그렇게 모임 중독자가 된 잭이 고환암 환자 모임에서 펑펑 울고 있던 그때, 말라가 등장한다. 여타 환자들처럼 고환을 제거한 건 아니지만, 같은 남성이란 이유로 눈에 띄지 않고 동정받을 수 있던 잭과 달리, 말라는 여성이다. 이 말인즉슨, 말라도 잭과 마찬가지로 위장 환자인 것이다.


잭에게 말라는 불쾌한 존재다. 먼저 잭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성공해서 정체성 정립- 더불어 자기완성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금연하고, 깔끔히 잘 다린 옷에 넥타이를 맨다. 그러나 말라는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옷을 입고, 암 환자들의 모임에서도 담배를 뻑뻑 피우며, 전혀 손질되지 않은 머리를 한 채 나타난다. 모임에 다니는 이유조차 잭과 다르다. 그저 공짜 커피가 좋아서 모임에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뿐이다. 남들의 고통에 기생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는 잭과 완전히 반대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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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하지 않나. 말라는 잭에게 왜 이렇게 모임에 중독된 건지 묻고, 잭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사람들은 상대방이 죽을 때가 된 걸 알면 진심으로 경청해주더라”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말라는 이렇듯 잭이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일생의 결핍-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를 소망하고 있음을 끄집어내는 등 그의 마음을 자연스레 열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자신과 너무도 다른 것 같지만, 사실 유사한 면이 지나치게 많은 말라 때문에 잭은 다시 불면 상태로 돌아간다. 그녀의 존재는 잭이 ‘가짜’임을- 즉 진실한 관계를 이뤄낸 적 없는 데다, 자기 정체성을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자기완성을 타인의 인정에서만 찾는 ‘껍데기뿐인 잭’이자, 아울러 그 모든 궁극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타인의 고통에서 해방을 찾는 ‘가짜 환자 잭’임을 계속해서 되뇌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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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를 만나다



그러던 잭은 출장을 위해 떠난 비행기 안에서 비누 제조업을 하는 타일러를 만난다. 첫 만남에서 타일러는 비누를 이용한 폭탄 제조법을 설명하며 “비누만 충분하면 뭐라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비누와 폭탄은 원료가 같기에, 마찬가지로 비누와 폭탄은 세상을 정화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묘한 논리에 어쩐지 설득된 잭은 살던 아파트가 원인불명의 폭발 사고로 사라져 거처가 불분명해지자, 타일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다시 만난 타일러는 잭에게 그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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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는 잭을 데리고 한 선술집에 가서, “할 수 있는 만큼 강하게 때려봐”라고 부탁한다. “싸워보지도 않고 어떻게 너 자신을 알 수 있겠어?”라는 말도 덧붙인다. 장난인 줄 알았던 잭은 반복되는 부탁 아닌 강요에 반신반의하다가 타일러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는다. 이렇게 이어진 싸움은 잭에게 난생처음으로 흥분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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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자신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남성적 혹은 마초적 인물이자,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하며, 그렇게 모든 순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타일러에게 매료된다. 잭은 타일러와의 동거를 통해 점차 그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동안 순응해왔던 현실의 딱딱한 규범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파이트 클럽'이 세워진다. 설명에 앞서 파이트 클럽의 근간인 동시에 리더 타일러의 '철학'이란, 기성 제도나 가치 체계- 특히 미디어와 사회 전반이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이에 더해 그러한 체제를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다. 타일러는 이러한 자신의 가치관이자 ‘파이트 클럽’이 지닌 혁명안을 늘어놓고, 잭은 이에 동조하게 된다. 왜냐하면 파이트 클럽은 잭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물질주의에 빠져들어 살아가지만, 늘 실패한 상태인 이들에게 매혹적이며 자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잭의 자기 정체성 발견이나 자기완성 및 진정한 유대는 파이트 클럽에서 폭력 형태로 분출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잭의 근원적 문제이자 어쩌면 현대사회 속 보편적 염증을 자기파괴라는 해결 방안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도에서 항상 소외당한 잭은 결국 이러한 자기파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담배를 피우고, 파이트 클럽에서 주고받은 폭력으로 만들어진 멍이나 피딱지 등 외모를 등한시하며, 자신에 관한 외부의 평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는 결국, 기어코 잭이 또다시 더욱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외면함을 보여준다. 자신이 소망하는 분신- 남자답고, 세상에 복종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데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방식이자 마초다운 방안인 폭력으로 살아가는 '타일러'를 만들어내 또 한 번 '가짜' 정체성을 뒤집어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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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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