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대가 헤엄치듯이 살길 - 털 난 물고기 모어

글 입력 2022.05.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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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 난 물고기 모어>의 저자 모지민을 지칭하는 대명사는

전부 '모어'로 통합합니다.

 


언젠가 ‘드랙’ 문화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도 항상 막히고 망설여졌다. 드랙에 엉켜있는 수많은 생각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퀴어 이론 산책하기>의 초반 부분을 읽으며 퀴어, 소수자의 역사는 주류로 편입하기 위한 소수자 간의 갈등 양상을 띠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른 소수자 존재를 끌어내야만 하는 그 위치란. 소수자에서 해방되기 위한 이러한 행위는 해방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해방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이것이 내 비겁한 생각의 현주소다.


이런 나를 알고 온 것일까.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의 이야기를 담은 <털 난 물고기 모어>는 시의적절하게 품에 들어왔다. 책은 술술 읽히고 압도당하고 웃고 감탄하고의 반복이었다. 모어의 언어를 받아들이며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드랙' 뒤엔 감추어진 한 사람의 인생이 있다는걸. 내가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삶이 있다는걸.

 

모어의 글을 직접 보기 전까진 무엇을 통해서도 모어를 알 수 없다. 아니 읽고 나서도 알 수 없다. 그 생존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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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 변방에서 애쓰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자신과 맞닿은 아주 꼭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너무나 영민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마이너임을 표명하는 것은 결국 용기다. 자기를 향한 너무 많은 소리를 자처하는 것이므로. 언제는 그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흘러간다. 다시 언제는 성능 좋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헤드폰을 낀 것처럼, 나를 향한 지지는 캔슬되고 비난만이 확대되어 귀에 꽂힌다.


어쩌면 야속하게 눈부신 운명의 재능일까. 모어는 어떠한 잡음과 잡념과 장면이든 자기 세상의 모든 걸 부지런히 기억하고 놓치지 않는 섬세한 기록자다. 기록에 관해 모어를 따라올 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뇌가 본능적으로 지워버릴 만한 데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기억한다. 인생에 한 번 있어도 영향이 클 사건이 한 챕터 안에서도 우수수 펼쳐지는 것을 읽으며 기이했다. 이 일들을 정말 줄글 읽듯 눈으로 훑어 내려 봐도 되는가. 하나로는 형용할 수 없는 사건을 어떻게 지나쳐왔는지 알 길이 없다.

 

단지 그 결과가 모지민, 모어라는 존재라면 그저 경외심을 가득 담아 박수를 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때에 자신 빼곤 넌 살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는, 자신을 기록할 때 그것을 빼놓을 수 없는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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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인은 추천사에서 모어에게 탐나는 문장이 많다고 말했다. 나 역시 모어의 문장을 흠모하고 욕심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자유로워 보여서 그렇다. 모어이기에, 모어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들이 정제하는 칼날을 피해 끼를 펼친다고 느꼈다.


에세이지만 시와 소설과 형언할 수 없는 문학이 산발적으로 배치해있다. 정말 이런 에세이는 본 적이 없다. 어울릴 것 같으면 틀에 박힌 형식을 신경 쓰지 않고 자리시키는 이 책은 모어라는 삶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듯하다. 확실한 건 지금껏 본 어떤 글보다 솔직하고 흡인력 있고 팔딱 살아있으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글을 내뿜을 수 있는 모어의 삶과 손가락은 단연 위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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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며 가장 경계한 것은 나도 모르게 모어를 해석해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안다고 부러워하고 슬퍼하고 무심하고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어에겐 자신을 향한 어떠한 말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긴 인생에서 소음 없이 살았던 적이 없었을 것 아닌가. 아니 그렇지만 말은 필요하다. 그러니까 모어의 삶에 대한 해석이, 주석이 불필요할 것 같다는 말이다. 고운 털을 빗질할 힘을 나게 하는 말이 아니라면 되도록 삼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건 어쩌면 모두를 향해 가져야 하는 마음. 내가, 세상이 외로워진다고 해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 그것.

 

모어가 ‘보광동 세련된 아이들’과 삶을 나누는 장면은 참 부러웠다. 그들의 관계는 그들 본연에 맞닿아 보여서 그렇다. 자기의 구림과 남의 구림을 보란 듯이 내놓고 웃어버리며 멋쩍게 안아버리는 것이란. 한편으론 안도했다. 그 안도감이란 왠지 이상했다. 누군가의 일상이 그 자체로 안도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 안도가 일상이 된 인생이 있다는 게 당연하고 당연하지가 않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난 뼈를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내가 이만큼 알아도 될까 싶을 이야기가 폭포처럼 와르르 콰르르 쏟아져 나오니 당최 감당할 길이 없다. 그를 통해 알았다. 한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양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릇임을. 그 넓은 그릇에 일평생 담아온 비난과 혐오와 사랑을 구체적이면서 슬프게도 아름답게 뱉어낸 모든 말은 말 그대로 문학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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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할지 모르겠지만 모어는 한편으론 강인하다. 확고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결국 사랑이 전부라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전부를 갖고 잃기를 반복하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찬란하고 외로운 것은 아닐까.


모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 진심을 담아 아름답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쓰셨다. 당신이 하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바라보고 싶다. 앞으로 기록하게 될 모든 것들에 아름다운 잔향이 묻어나길, 조금은 더 편안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어를 보고 있자니 AKMU(악뮤)의 <물 만난 물고기>가 떠올랐다. 마침 털 난 물고기인 모어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사다.

 

* ‘우리(we)’를 ‘그대(you)’로 개사함.


그대가 노래하듯이

그대가 말하듯이

그대가 헤엄치듯이 살길

Live like the way you sing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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