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언제쯤 어른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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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다 큰 줄 알았다.
철이 일찍 든 아이로 주변 어른들의 예쁨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다사다난한 일들을 일찍이 겪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정말로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웃기지만, 그 당시의 나는 진지했다.
하지만 그 안일하고도 귀여운 생각은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면 사그라졌다. 그러다가도 그 환경에 점점 익숙해지면, 다시금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나는 이만하면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인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며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묵묵히 잘 견디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간다고 여겼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세상에 나아가던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여전히 잘할 줄 아는 게 없는 애일 뿐인데 어떻게 어른이라는 거지?'
어른으로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에 겁이 나서 든 생각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조금 더 단단해질 시간과 똑똑해질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바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초중고 학창시절도 딱히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20살 이후의 세상은 잔혹 동화 같았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고 이유없이 미움받아 좌절할 일이 생길 줄도 몰랐다. 돈과 시간이 없으면 사람을 사귀기 어렵다는 현실을 마주할 줄도 몰랐고 세상은 가족과 친구들이 아니라, 결국 나 혼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나이와 이름에 맞게, 어떻게든 꾸역꾸역 넘어갔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 테니까.
대학 시절 5년 동안 익숙한 매일매일을 반복하며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지난날의 치기 어린 생각처럼 '다 컸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그냥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버틸만하지 않을까? 정도의 자신을 향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최근 맞이한 첫 사회생활에서 와장창 부서졌다.
내가 너무나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라는 남의 돈을 받고 일하는 과정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죄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하는 일은 어린 시절보다 더 많아진 것 같고, 멘탈도 더 나약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어엿한 성인으로서 직장생활을 하는 건지 막막해졌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금세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를 돌아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일도 능숙하게 잘하고, 힘든 일에 울지 않는 게 아니라, 잘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안다는 걸까.'
여전히 나는 고등학생 정도의 사고와 지식, 장난기를 가진 어린 아이 같은데. 달라진 게 있다면 눈물 콧물 흘리며 힘들어해도, 앞을 향해 달릴 줄은 알게 됐다는 것 하나가 있다.
어른이 되면 세상만사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똑 부러진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말하는 이런 어른은 과연 언제쯤 될 수 있는 건지, 죽기 전에는 가능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내가 어른이 되고 있음을 인정해보기로 한다. 여전히 똑같은 나인 것 같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멋진 어른임을. 조그마한 인정과 칭찬을 스스로 던져 본다.
울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또 모든 일을 잘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혼자서 묵묵히 잘 살아왔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내가 꿈꾸는 어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이채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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