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인터뷰어를 인터뷰하다 -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

김소원 에디터를 만나다
글 입력 2022.06.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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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늘 궁금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누군가를 궁금해 하고... 누군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궁금해 하고... 누군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궁금해 하는 사람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말했다. 나 자신을 목격하는 일은 오직 타인의 세계에 도달할 때 가능해진다고. 나 말고도 다른 인터뷰어들이 목격하는 타인의 세계는 어떤 형태인지,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 도달하여 목격하는 자신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내가 인터뷰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동행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상대에게 온전히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을 내어준다는 건, 삶의 일부를 공유한다는 것. 나는 이것이 너무나 아름답다. 게다가 인터뷰에서 파생돼 나온 말은 그것을 읽는 누군가의 시간에 스며들어 파장을 안기기도 하지 않는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라 믿기에 인터뷰가 좋다.


『배우의 방』, 정시우

 


제 아무리 노련한 인터뷰어라고 해도, 누군가의 말을 지면에 옮긴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조차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한다는 것은, 서로가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적 속에서, 우리는 인터뷰와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쓰는 일에 관하여



벌써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신지 5년 차가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항상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문화예술에 관심도 있었고요. 마침 대학생 때 휴학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에 지원하게 됐어요. 오프라인 활동이 너무 잦으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트인사이트는 온라인 기반이라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5년이라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웃음) 지원서에 작성해야할 문항이 많아서 고생했었는데….


저도요. (웃음) 역시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최근에 다시 읽어봤는데, 너무 내가 드러나서 민망한 그런 글이더라고요. 모든 자기소개가 그렇겠지만...


맞아요. 그런데 저는 모든 글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엮어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고 개연성을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영화를 촬영할 때 연출되는 장면이 있듯이. 그래서 꼭 픽션이 아니더라도 모든 글은 사실 현실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내 것을 엮는다는 것에 대한 소름끼치는 느낌은 항상 드는 것 같아요. 비단 자기소개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글에 있어서요.


그 마음 알 것 같아요. 사실 그래서 글쓰기는 약간은 징그러운 일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편집과 가공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무언가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소원님도 글을 굉장히 오래 쓰신 편이잖아요. 혹시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시기 전에도 쓰시던 글이 있으셨어요?


아니요. 주기적으로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트인사이트가 처음이에요. 그 전에는 아무래도 국문과다 보니 레포트를 작성할 일이 많았고, 혼자서 일기를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플랫폼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사실 저는 소원님을 인터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던 타이밍에 플랫폼에 올라오는 소원님의 글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어요. “혹시... 이분은 초인인가...”(웃음) 쉬지 않고 글을 쓰시더라고요. 항상성 있는 글쓰기의 비결이 있을까요?


(웃는다) 그런 거 아니에요. 사실 회사생활하면서 중간 중간 쉬기도 많이 쉬었어요. 그런데 쌓인 글의 개수가 많아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꾸준히 쓸 수 있었던 이유를 떠올려보면... 저는 타협을 잘하는 스타일이에요. 예를 들면 저는 다이어리 꾸미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다이어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쓰기는 힘든 거잖아요. 친구들은 다이어리가 빈틈이 있으면 그게 보기 싫어서 안한대요. 근데 저는 그냥 며칠 빼먹거나 마음에 안 드는 페이지가 있어도 계속 쓰거든요.


그게 저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은데, 스스로 타협을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좋게 보면 에너지 분배를 잘하는 거고, 나쁘게 보면 몸을 사리면서 진심을 백 프로 쏟지 못하는(않는) 거죠. 그래서 에너지 소진이 덜 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성격상 규칙을 잘 못 깨고 뭔가를 한번 시작하면 잘 못 그만둬요. 좋게 말하면 무던한 건데, 변화를 시도하기를 망설이는 편이라 그런 부분이 글쓰기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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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김소원 에디터 (이하 모든 사진 동일)

 

 "좋아하는 문구점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학생 때나 지금이나 문구류를 보면 마음이 설렙니다."

 

 

이전에 소원님과 함께한 독서모임에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그 때 소원님께서 '나는 모른다'에서 시작되는 글을 쓰려고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어요. 저도 0에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늘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소원님은 그런 글을 쓰기 위해 기울이시는 노력이 있나요?


이것도 노력의 일부분일지는 모르겠는데, 제 안에서 나와서 제 3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어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이 글을 읽어보았을 때 오만하게 보이지 않은가를 늘 염두에 두려고 해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어떤 용어 같은 것을 쓸 때 부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으니 늘 검색하는 과정을 거치고요.


하지만 완전해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나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인 글이란 것은 없잖아요. 저는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글쓰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은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든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해요. 애꿎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방향이나 핵심이 없는 글을 쓰는 것도 지양하려 해요. 접근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중심을 잡으려 하죠. 약간의 자기 합리화,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기사 검색하기. 정리해보자면 이 세 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저는 소원님의 목소리가 쓰는 글의 형식에 따라서 노련하게 변화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어찌 보면 부러 소원님이 크게 드러나지 않게 쓰시는 것 같기도 했어요. 사실 그래서 인터뷰 내용을 많이 확보할 수 있을지, 약간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웃음)


(잠시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사실 필명으로 쓴 글도 있거든요. 거기서 제가 좀 더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좋게 보면 노련한 것일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틀에 박힌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무엇을 하더라도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러니까 나의 나 자신의 현실적인 안위를 계산하게 되는데요. 그런 부분이 글에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보통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초월해서 열정을 쏟으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온 마음을 쏟는 글은 일기나 개인적인 글 위주로 하게 돼요.


사실 진정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은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어릴 때는 제가 꽤 낭만적이고 좋아하는 것도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학에 와 보니 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이 많더라고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분들도 그렇고요. 그래서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제게는 나름대로 소중한 열정인데, 내놓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비해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저는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우연히 하게 되는 게 많은데, 무언가 목표를 잡고 그걸 향해 한결같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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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모두 다른 의자가

해질녘 카페에 늘어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찍었어요.

제가 원하는 삶의 분위기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만드는 일에 관하여



[소소한 출판]으로 소형 출판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계시죠. 아무래도 동종업계에서 일하신 경험이 있다 보니 상황에 관한 이해도가 남다르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책을 만드는 일은 어떠셨나요?


책을 한번 찍어낼 때 2000부 정도가 기본 1쇄로 찍히다보니 종이가 굉장히 많이 소비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책이 진짜 세상에 필요한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사실 산업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꼭 필요한 걸 만들어낸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자원을 들여 상품을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책 만드는 일 역시 산업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이왕 만드는 거 제 손을 거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 가닿을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작가님들도 감리 보실 때 두려움에 휩싸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저라도 종이 수천 장이 제 눈앞에서 소비되면 두려움이 우선일 것 같아요. 반면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니까 굉장히 보람찬 일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소원님은 책을 만들면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들이 있나요?


책을 만드는 분들이라면 모두 비슷하게 느끼실 것 같긴 한데, 책이 너무 좋다거나 책에서 도움을 많이 얻었다고 할 때가 기쁘죠. 작가 분들께서 고맙다고 말씀주실 때도 기분 좋고요. 한번은 번역서 편집을 했는데, 번역이 어색한 것 없이 잘 읽혔다는 후기를 보고 뿌듯했어요. 물론 번역은 1차적으로 번역가의 몫이지만, 그걸 좀 더 읽기 좋게 다듬는 것은 편집자도 관여하는 일이니까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출판업계 종사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보통 좋아하는 것(취미)과 일은 분리해야 한다고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직업으로서 읽고 쓰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제가 편집한 쪽은 주로 인문, 과학 분야 도서였어요. 그래서 조금 분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을 편집하게 되면 조금 힘들 것 같긴 했어요. 소설 편집자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소설 편집자로 일하면서도 계속 소설을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일긴 하더라고요.


편집자의 직무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편집자들이 하는 일은 단순한 교정, 교열 업무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책을 만들고 파는 전반적인 부분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요. 그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편집자는 단순히 글만 쓰는 작가와 달리 책을 파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에 대중성, 작품성, 수익성의 경계에서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온갖 일을 다 하는 거에 비해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게 편집자의 업무인 것 같아요. 작가님들께 마감일정을 공지하기도 하고, 마케팅에도 관여를 하기도 해요. 대중성과 작품성, 수익성의 경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연차가 있으신 분들도 아직까지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특히 편집을 할 때 어디까지 개입을 할 것인지 적정선을 찾는 건 계속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책을 만들다보면 쓰고 싶다는 생각도 생길 것 같아요.


어쨌든 출근을 하고, 앉아서 계속 다른 사람의 글을 만지다 보면 저도 모르게 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는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 글을 쓰다 보면 또 이게 아닌데 하는 순간이 와요. 그럴 때는 역시 남의 글을 만지는 것이 적성에 맞나 싶어요. 그렇게 파도치듯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원래는 책을 만드는 사람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타이밍을 놓치니까 그때만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단 것을 느껴요. 거기다 요즘은 독립 출판을 워낙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거기에 저까지 합세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하더라고요.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독서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고 느껴요. 읽는 사람들에 비해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고 느끼고요. 물론 그럼에도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책을 집어들겠지만요.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읽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요.


저도 그래서 그냥 읽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고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쓰고 싶다는 마음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은연중에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어쨌든 계속 그냥 쓰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존재하기는 해요.


한편으로는 책보다도 책을 소개하는 일이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짧은 콘텐츠를 즐겨 소비하니까 책들도 그에 걸맞도록 요약본으로 등장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은 끊임없이 헤매고 부딪히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삶과 비슷한데, 이것을 짧게 요약한 것으로 끝내버리면... 너무 아쉽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저도 요즘 무언가의 지위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요. 퀸의 노래 중에 ‘Radio Ga Ga’ 아시나요? 그 노래 가사가 TV의 등장으로 인해 라디오가 자리를 빼앗긴 것에 관한 이야기이잖아요. 그렇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라디오를 좋아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이제 TV 마저 자리를 빼앗기고 있잖아요. 짧은 영상의 유튜브나 기타 매체 등 자극적인 콘텐츠들로 인해서요. 사람들에게 특정 매체를 강요한다고 해서 그 매체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더 많은 사람에게 선택받는 매체가 '대세'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하신 책 요약본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런 걸 원한다면, 아쉽지만 출판계도 그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는 ‘책은 이래야 한다’라고 고정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세상에 필름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있듯이 종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들도 줄어들지언정 사라지지는 않고 계속 존재할 거라 믿어요. 그게 너무 소수 마니아의 취향이 되어간다면 좀 슬프겠지만요.


소원님의 답변을 들으면서 계속 느끼는 부분인데요. 아까 진정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저는 외려 소원님이 좋아하시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아끼는 듯한 마음이 들어요. 그것이 지속 가능한 애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진심으로 책을 사랑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마음과는 많이 바뀌었죠. 지금도 책을 좋아하냐, 싫어하냐로 굳이 따져보자면 좋아하는 쪽이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데 순수한 100%의 애정이라기보다는 책을 읽는다는 것에서부터 오는 어떤 부가적인 것들이 있어서 읽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의무감을 포함해서요. 예전에는 100% 애정으로 책을 대하던 때도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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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 가을,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가을을 꼽았다.

사진은 직접 찍은 서울숲의 은행나무.

 

 


이야기의 이야기



그 시절에 대해 쓴 글이 [이야기의 이야기] 시리즈 맞나요.


맞아요. 책이라고 단정 짓기는 애매하지만 책을 포함하여 모든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좋아했을 때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것이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과장을 좀 하자면 그때 받은 영향이 진로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고요.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8화를 기획하고 썼는데, 막판에 가서는 그것이 너무 관습화되어서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조금 다른 컨셉으로 시즌 2를 쓰다가 막혀있는 상태에요.


소원님의 과거의 글들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인상적인 글을 봤어요. 문학을 읽는 이유에 관하여 소원님께서 주변인들의 생각을 조사하여 정리한 글이었는데요. 문학을 읽는 이유에 관해 답한 세 분은 상상력을 통한 세계의 확장과 재미, 다른 매체보다도 세밀한 묘사 등을 언급하셨더라고요. 요즘은 정보가 범람하고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라서 그런지 문학의 쓸모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기도 것 같아요. 소원님은 어떤 대답을 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과거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큰 이유 중 하나였던 '재미'는 오늘날 문학보다 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다른 미디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제 책은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모든 것이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변한다. 읽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어쩌면 문학을 읽는 것 역시 구시대적인 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것' 대신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건 앞으로의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문학의 범위 역시 지금과는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에 발붙이고 사는 나는 아직 문학의 본질이 읽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문학을 읽을 때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혀끝에 달라붙는 특유의 감각은 중독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나열된 검은 글자들이지만 읽는 사람마다 타인과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어떤 영화보다도 상황이나 인물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생략하자면 한 문장으로도 넘어갈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만이 품을 수 있는 무한함과 유연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문학 읽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읽다'라는 동사로 이루어진 문장 안에 '글'이나 '책', '표정', '감정' 같은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이 있기를 지금의 나는 바란다.


이야기의 이야기 中 <읽는 사람>

 


우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문학의 쓸모를 따져 묻는 사람에게 약간의 편견이 있습니다. (웃음) ‘책 읽는 건 좋은데, 소설 읽는 건 시간 낭비다’라고 나무라는 사람이요.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분에게 책은 지식이나 양질의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인데, 소설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고 생각하신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게 곧 소설 읽는 거라서, 그 분의 질문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힌편으로는 ‘그러게, 문학을 왜 읽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고요. 그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보니 좀 민망하네요.


저는 ‘소설 읽는 건 시간 낭비다!’라고 여기는 분들께 문학의 쓸모를 설파하거나 문학을 읽어야한다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굳이 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그저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면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예를 들면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거나 아예 먹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한테 굳이 억지로 음식을 권유하지 않거든요. 상대방의 반응과 관계없이 이 세상의 즐거움을 제가 하나 더 안다는 느낌으로 (웃음) 넘기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좋아하시다보니 아무래도 이야기를 쓰시고 싶다는 생각도 하실 것 같아요. 혹시 쓰고 싶으신 글이 있나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장래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처음으로 되고 싶었던 것이 동화작가거든요.

 

그러실 것 같았어요. (웃음) 혹시 쓰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장르를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한동안 청소년 문학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능력이 된다면 견고한 추리소설을 쓰고 싶기도 해요.


문학 외에도 애호하는 문화예술 분야가 있을까요?


저는 문학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도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것에 비해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도 좋아해요. 공연이나 전시에 비해서 그런 류를 더 많이 향유하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목소리를 낮추며) 혹시 어떤 거 보시는지 여쭤 봐도 돼요?


저 약간 B급 감성이 있는 SF 좋아해요. (웃음) 이건 약간 취향 오프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긴 한데... ‘닥터 후’ 좋아하고요. SF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더크 젠틀리의 전체론적 탐정사무소’도 재미있게 봤어요.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제가 지금 넷태기인데... 꼭 도전해봐야겠어요. 혹시 아트인사이트에서 앞으로 더 쓰고 싶으신 글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요즘은 공포물에 관심이 가요. 사람이 어떤 것을 왜 무서워하는지 파헤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요. 공포물을 보고 리뷰를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소소한 출판]시리즈 연재를 잘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마주 보는 일에 관하여



[소소小昭한 출판] 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 역시 한때 출판사에 몸담고 있던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출판사들이 규모에 따라 일하는 방식, 처한 현실이 어느 정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또, 대형 출판사는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고, 현직 실무자 분들께서 강연을 하시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제가 진행하는 인터뷰에는 제가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소소한 출판]의 출판사 선정 기준은 어떻게 되세요?


보통 제가 읽었던 책들을 쭉 한번 살펴보는 것 같아요. Press를 했던 도서들도 유심히 살펴보고요. 도서관이나 온라인 서점을 살필 때도 있어요. 철학과 개성이 잘 드러나는 출판사들을 추려보고 점차 범위를 좁혀서 선정하죠. 시간 관계상 당시에는 완전히 책을 정독하지는 못하지만 컨텍이 된 이후로는 공을 들여 꼼꼼히 내용을 파악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전에 했던 인터뷰를 살펴보거나 지금까지 낸 책들을 훑어보기도 하고요.


인터뷰 질문을 준비할 때 초점을 맞추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상대방이 출판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는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준비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계속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담다 보니까 질문이 어떤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게 조금 고민이긴 해요.


질문은 비슷하더라도 내용은 전혀 다르던걸요? 하지만 저 또한 항상 하는 고민이기에 이해가 가긴 합니다. 소원님은 인터뷰할 때 어떤 지점이 가장 힘드셨어요?


인터뷰 내용 자체는 상대방의 말에서 기인한 것이니까 제가 어느 정도 기댈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소개하는 글을 쓸 때 힘들죠. 제 말로 인해서 상대방의 인상이 드러나는 순간이니까요. 나 때문에 이 사람의 인상이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되어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주관적인 견해가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글이 밋밋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저를 드러내지 않으려다 보니까.


저 역시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워요. 혹시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재단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질문자의 질문이 선행되어야 답변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이의 상황이나 상호작용을 어떻게 글로 드러내지? 라는 고민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인터뷰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많이 배우기도 하고,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는 일이죠. 소원님은 인터뷰를 하시면서 새로 알게 된 점들이 있으세요?


처음에는 인터뷰 대상에게 컨택하는 것 자체에 큰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의 반응을 지레짐작하고 상상을 너무 많이 하게 됐죠. 무엇보다 인터뷰하기 전의 그들은 저에게 추상적인 대상이잖아요. 그 점에서 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그냥 다들 개별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저를 경계하고 있으니 서로 처지가 같다는 것도 천천히 깨달았죠. 그 점에서 오는 안도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추상적인 대상이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두렵지만 기쁜 일인 것 같아요. 인터뷰어를 인터뷰하다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일전에 소원님의 인터뷰를 통해 제가 애호하는 출판사에 관해 깊이 있게 알게 되어 무척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요. 앞으로도 소원님의 글들을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제 이야기가 답변이 잘 되었을지 조금 걱정스럽긴 하네요. (웃음) 덕분에 저의 지난 기록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 정리하시느라 힘드실 텐데 먼저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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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고 마음속에 품어둔 문장이 있다. “천국의 모든 색깔과 지옥의 모든 냄새를 가지고 있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세상에 쉽게 매혹되지 않는다”는 문장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천국과 지옥을 그만큼이나 오래도록 그려본 사람일 것이다. 내가 본 소설에서 그런 사람은 쉽게 매료되지는 않지만 그만큼 사려 깊은 애정에 이르는 사람이었다.


한 오라기의 포장지도 걸치지 않은 소원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야 건네는 나의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던 질문들이겠구나.’ 그 치열한 문답의 과정을 거쳐 그는 지속 가능한 형태의 조심스러운 애정을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문학에 관해, 글쓰기에 관해, 그리고 이야기에 관해 말이다. 이런 마음이라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소원님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조금은 안심하며 생각했다.

 

 

interviewee. 김소원

 interviewer. 박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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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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