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앤서니 브라운의 숨결 - 앤서니 브라운의 원더랜드 뮤지엄展

글 입력 2022.05.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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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은 필자에게 무척 친숙하고 유명한 동화 작가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갈 기대를 한가득 안고 전시회로 향했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느꼈다.


내가 한 기대는 그의 상상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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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의 느낌



디지털 아트에 익숙한 우리는 무엇이든 디지털로 만들어졌으리라 느끼기 쉽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는 분명히 손 그림이지만, 완성된 동화책을 보면 너무나 깔끔하고 정교하고 완벽하다. 그 탓에 ‘실제로 손으로 그렸음’을 알지만, ‘실제 손 그림’이라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만졌던 빳빳하고 매끄러운, 인쇄된 동화책 그림의 원본이 사실은 오돌토돌한 스케치북 위에 이런저런 물감과 펜을 덧대어 그려진 그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많은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인쇄된 책에서는 느낄 수 없던 작가의 애정이 느껴졌다. 패턴 하나하나를 손으로 그리고, 오밀조밀한 디테일들을 한 올 한 올 그려내고, 그 생동감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시간 동안 관찰하고 구상하고 그려내었을지, 동화책에선 느껴지지 않던 그의 손길이 원작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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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의 작품은 뛰어난 동시에 인간적이었다. 몇몇 그림은 수정 사인펜 등으로 덕지덕지 수정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린 후 흰색 빗방울을 위에 덧그린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고, 정말 어린아이가 사인펜으로 슥슥 그린 듯한 느낌이 살아있는 작품도 있었다. 그림책에서는 완벽히 한 장을 가득 채우던 그림의 경계가 실제로는 삐뚤빼뚤하기도 했다. 삐뚤빼뚤하게 붓 터치가 남아있는 그림의 경계를 보면 그가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런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감탄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무척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봐왔던, 너무나 친숙하고 귀여운 동화의 그림들이 내 앞에서 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엄청난 작품들이 사실 내가 장난으로 끄적대는 그 스케치북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종이 위에서 탄생했다.

 

그 때문에 자꾸만 그림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의 모든 애정과 생생한 터치가 살아 숨 쉬는 그림을 직접 마주하며, 그림이 뿜어내는 생동감과 ‘실제’의 감각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작품과, 그림 속 캐릭터 하나하나와, 작가 앤서니 브라운과 ‘직접’ 생생하게 교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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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백 - 소박함과 상상력



미술 작품은 보통 하나의 주어진 공간을 완벽하게 채워낸다. 여백의 미라고 해도 그 여백까지 작품의 온전한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볼 때 그 공간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 전시회는 조금 달랐다. 그에게 여백은 말 그대로 여백이었다. 그 점이 재미있었다. 그의 여백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쉴 틈이었다. 무언가를 쏟았는지 얼룩이 남아있기도 하고, 그림의 가장자리에 재단 선을 연필로 그어두기도 했다. 그림의 위아래에 구절을 연필이나 펜으로 써두기도 하고, 아니면 프린트된 구절을 아무렇게나 오려서 붙여두기도 했다. 거장의 그림 주변이 이렇게 지저분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오직 전시회에서 그 모든 여백까지 즐길 수 있었다. 매끈함 대신 소박함이 느껴졌다. 세상에 어느 거장이 자신의 그림 주변에 수정펜을 덕지덕지 칠해두고 주변에 얼룩을 막 묻힐 수 있을까. 신문 종이 쪼가리 오리듯 자신의 그림을 슥슥 오려 다른 종이 위에 붙여둘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그림을 그냥 있는 그대로 다른 나라의 많은 사람에게 전시할 수 있을까! 그만큼 그의 그림은 소박했다.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초점에만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적인(!) 여백은 오히려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끊임없이 느끼게 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형편없는 낙서가 그려지기 가장 쉬운 ‘백지’에 그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냈다. 그는 자신의 그림 경계 안쪽에 철저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두었다. 바로 옆은 그냥 빈 도화지인데 그의 손길이 닿기 시작하는 구역부터 너무 따뜻하거나 너무 실감 나거나 너무 귀여웠다. 어떤 그림은 작게, 어떤 그림은 크게. 어떤 그림은 색연필의 부드러운 느낌을 살려서, 어떤 그림은 거친 사인펜을 사용해서. 망망대해 같은 막막한 흰 종이 일부분에 그의 번뜩이는 세계가 창조되어 있었다.

 

틀에 박힌 형식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그림을 오려 다른 도화지 위에 붙여둔 작품도 있었고, 배경까지 강렬한 색상으로 직접 칠한 그림도 있었고, 테두리를 굵은 펜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그림도 있었고, 흰 도화지에 그저 동물 한 마리만 그려둔 그림도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이 상상한 그 무엇이든 자유롭게 도화지 위에서 펼쳐졌다. 그에게는 애초에 주어진 공간을 모두 완벽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공간에서 벗어난 그 자유로움이 더욱 다채로운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을 보며 그 종이가 그저 흰 종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동시에 그 일부분, 때로는 전체에 펼쳐진 그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보았다.

 

그렇게 틀에 박혀 있지 않으면서도 앤서니 브라운만의 특정한 개성이 모든 그림에 굳건하게 깔려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력, 그리고도 놓아버리지 않은 소박함. 그들의 조화가 앤서니 브라운을 고유한 작가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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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막연히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 정도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앤서니 브라운 전시회는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전시회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그림의 생생함과 여백을 통해, 완벽하고 매끈한 상업용 동화책이 아니라 순수하고 소박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항상 디지털의 깔끔하고 완벽한 그림, 혹은 디지털화된 정제된 그림, 혹은 사진만을 보아왔다. 누군가가 붓으로 사인펜으로 색연필로 숨결을 불어넣은 생동감을 마주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었던가. 그림 한 장 한 장을 그려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이 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손의 감각과 엄청난 상상력, 그리고 표현력이 모여 너무나 생생한 얼굴과 질감과 세상을 만들어내었다. 그 원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앤서니 브라운,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와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글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이 외에도 그림의 따뜻한 색감, 마음이 편안해지는 표현, 뭉클한 이야기들까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걸음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많은 순간순간을 함께 했던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들을 이렇게 성인이 되어 다시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싫어할 수가 없다. 윌리의 꿈은 아마도 이 세상을 조금은 더 아름답게 만들지 않았을까.

 

앤서니 브라운이 직접 그린 바로 그 그림들을 보며 다시 한번, 마법 같은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차마 동화 속에서 표현하지 못한 말들을 당신에게 꾸밈없이 들려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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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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