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벚나무 가지 끝에 벚꽃이 없던 이유

그리고 꽃을 사랑하는 이유
글 입력 2022.04.2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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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 좋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그중에서도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이가 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름다운 그 색감 때문일 거다.


집 밖을 나서면 나의 주변은 온통 무채색이다.


진회색의 아스팔트가 내 발밑에 가장 먼저 닿고, 허여멀건 아파트들이 빼곡히 내 시야를 가린다. 조금 더 걸어나가면 주위에는 검은색, 회색, 하얀색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다니고, 아파트보다 더 커다란 회색 빌딩들이 하늘을 가리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 풍경 속에서는 보도블록 틈새로 자란 조그만 민들레 하나라도 반갑다. 너무나 작지만,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 쨍한 그 노란 색깔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러니 개나리, 목련, 벚꽃, 라일락처럼 한데 모여 와르르 팝콘처럼 피어나는 꽃들에는 맥을 못 춘다. 알록달록한 꽃잎들이 가지는 고유의 촉촉한 색감들은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누구나 꽃을 보면 괜스레 들뜨고 기분 좋아지는 건 꽃만이 갖춘 능력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건 아주 찰나의 시간이라는 게 꽃을 더 애틋하게 만든다. 꽃구경 한 번 제대로 하려고 날씨 체크하랴, 휴가 빼느랴 열심히 준비했다가도, 억센 비 한 번에 후두둑 떨어져 취소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나 작고 연약해서 인간의 눈으로 생생히 담기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꽃이 항상 피어있으면 이만큼 예뻐 보이지 않을 거야. 희소가치가 있으니 더 좋은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지만 나에게는 틀린 말 같았다. 꽃은 잠깐 피어서, 이때 아니면 볼 수 없어서 좋은 게 아니다. 벌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을 오색 빛으로 물들이고,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를, 낭만 한 숟가락을 얹어줘서 좋다.


물론 생물과 세상의 이치에 따라 꽃의 준비기간은 언제나 길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간은 언제나 짧아야 할 것이다. 그 점이 꽃을 좋아하는 마음에 애틋함을 더해 준다.


*


이렇게 꽃을 좋아하다 보니, 축제나 많이 열리는 봄의 꽃구경을 나는 자주 다닌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큰 규모의 꽃구경을 못 다닌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번 봄에는 걱정과 염려를 조금 숨겨두고, 사람도 많고 벚꽃도 많은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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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이 옆에 있는 여의도 윤중로길. 아주 긴 도로 양옆에 커다란 벚나무들이 하늘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벚나무 하나하나, 잎 모양 하나하나 음미하며 '꽃心'을 채우던 중, 아주 풍성한 벚나무의 가지 하나가 밑으로 쭉 뻗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체 나무들의 키가 높아서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웠는데, 아래까지 내려와 보기 쉽게 늘어져 있어 좋았는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나무가지 끝에 한 10cm 정도만 벚꽃잎이 하나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마치 거기만 꽃이 원래 안 자란 것처럼.


"왜 끝자락에는 꽃이 없을까?"하고 같이 온 친구에게 물어보던 찰나, 저 멀리서 한 사람이 해맑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곤 내가 관찰하던 가지의 잔가지를 통째로 푹 꺾어서 떼어갔다. 아주 신 난 표정으로.


친구가 내 질문에 답변할 필요가 없었다. 그 사람의 움직임이 아주 정확한 답이 되어버렸으니.


꽃이 아름답다며 꽃을 찾아다니던 나였는데, 그 순간 왠지 부끄러워졌다. 제 뿌리에서 강제로 꺾어진 그 벚꽃잎에게는, 나나 그 사람이나 같은 '인간'이니까.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게, 사람은 참 어렵나 보다. 꽃에게도, 사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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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면, 사랑한다면,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내 입맛대로 요리조리 바꾸는 게 아니라, 보이는 모습 그대로 아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문득 꽃을 아끼는 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은 잠깐이듯이, 서로에게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이는 모습도 아주 일부분이니까. 꽃이 아름답게 핀 순간만을 사랑하며 꺾어버리면 그다음의 꽃은 없듯이, 사랑하는 이의 좋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렇게 하나 더 는 것 같다.


연약하지만 강하고 아름답고 특별해서, 이렇게 교훈까지 떠올리게 하는 존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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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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