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을 사랑한 신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4.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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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그리스신화>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주에 기고했던 <내가 사랑한 그리스신화>를 읽다 보면, 이 짧은 글에서조차도 정말 많은 인물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C 3000년, 크레타 문명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 신화는 그 역사만큼이나 방대한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담지 못했거니와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우리 기억 속에 진하게 기억된 인물은 그야말로 ‘소수정예’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이것은 신화 속 인물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단역에게도 그만의 서사가 존재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조연과 단역 사이의 인물이다. 오디세우스의 이타케로의 여정에 스치듯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에서 키르케는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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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키르케’를 ‘운명을 거스르는 이’라고 명명했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 있다. 미디어에서 마치 신성한 가치인 듯 묘사되는 ‘운명적인 사랑’이나, ‘너는 나의 운명이야’처럼 뻔하지만 로맨틱한 고백은 심장을 뛰게 한다. 또한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고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대한 벽이 떠올라 인간을 ‘우주의 먼지’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한다. 사전에서는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키르케의 처지는 무엇이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탈피했는가?

 

 

 

[인간을 사랑한 신]


 

키르케를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하여 평면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의 딸’, ‘서양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마녀’ 같은 말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딸이나 마녀로만 불리기에 그의 삶은 너무나도 입체적이고 파란만장하다. 약 500쪽에 달하는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나에게 키르케는 ‘인간을 사랑한 신’으로서 각인되었다.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얀 코시에르.jpg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얀 코시에르

 

 

인간을 사랑한 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그에 따라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은 티탄족. 바로 ‘프로메테우스’이다. 이런 프로메테우스와 키르케가 사실은 친척 관계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신화가 우연한 인연의 연속이듯, 둘의 인연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키르케에게 프로메테우스와의 대화는 꽤 오랫동안 강렬하게 기억된다. 인간에게 불을 주고 죄인이 되어 황금빛 피를 흘리며 고문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에게 키르케는 몰래 다가가 ‘넥타르’를 건넨다. 그 당시의 키르케에게 인간이란 미지의 존재였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들이 ‘죽는다’라는 것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편에 섰는지, 왜 신의 처벌을 자청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런 키르케에게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라고 답한다.


그 대답이 키르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도화선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의 ‘처지’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모든 것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이었지만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평범의 기준에 미치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님프와 태양신의 딸답지 않게 특이한 노란 눈과 가늘고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키르케의 목소리는 주위 신들에게 ‘인간의 목소리’라고 묘사되는데 그가 평생 신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키르케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기며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말은 암흑 속에 있던 키르케에게 따라갈 수 있는 작은 등불이 되었다.

 

 

“내 인생 자체가 뿌연 심연이었지만 내가 그 어두컴컴한 바다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 사는 생명체였다”

 

p.35

 

 

그 후, 키르케의 인간을 향한 관심은 계속된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신은 신이다. 인간의 생은 신에 비하면 턱없이 짧았고, 이 불변의 사실은 키르케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결정을 하게 한다.


바닷가를 거닐던 키르케는 어부 ‘글라우코스’를 만난다. 둘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고,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 키르케에게도 생겼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키르케는 신과 인간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신들의 금기를 깨고 ‘파르마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파르마콘은 신들이 흘린 피에서 자라는 꽃으로, 즙을 마시는 누군가는 그의 가장 참된 모습으로 변한다는 전설을 갖고 있었다. 키르케는 이 꽃으로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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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키르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영생의 삶을 얻게 된 글라우코스와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지만, 그는 ‘스킬라’라는 아름다운 님프를 사랑하게 된다. 평소 키르케를 괴롭혔던 님프를 사랑하게 된 글라우코스라니.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에 놓인 키르케는 스킬라의 연못에 파르마콘의 즙을 떨어뜨린다. 스킬라는 괴물이 되어버렸고, 글라우코스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키르케에게 남은 것은 죄책감뿐이었다.


그때, 키르케의 머릿속에 프로메테우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자신의 행동을 직접 말하여 신의 처벌을 달게 받았던,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던 목소리 말이다. 키르케는 아버지 헬리오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그 대가로 아무도 살지 않는 섬, 아이아이에로 유배를 가는 벌을 받는다.


그곳에서 키르케는 여러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그 만남으로 인해 그는 각기 다른 것들을 얻었고, 그 경험들은 키르케를 단단하게 성장하게 했다. ‘다이달로스’와의 인연으로 그는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육체가 땅속으로 흩어지고, 영혼은 차가운 연기가 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게 무엇인지를.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죽었을 때 느껴지는 마음의 응어리가 상실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팔다리가 기운을 잃고 회색으로 변했고 그의 모든 능력이 연기로 바뀌었다.

 

내게 그를 차지할 권한이 없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고독한 삶을 살다 보면 별들이 일 년에 하루 땅을 스치고 지나가듯 아주 간혹 누군가의 영혼이 내 옆으로 지는 때가 있다. 그가 내게 그런 별자리와 같은 존재였다.

 

p.198

 


‘오디세우스’와의 인연으로는 ‘희망’을 배웠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오디세우스의 계획을 들으며 그의 희망을 느꼈다. 매일같이 절벽으로 나가서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할 그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또한 오디세우스로부터 평생을 사랑할 아들을 얻었다. ‘텔레고노스’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울음소리는 키르케에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소리였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두려움의 대상과도 맞서 싸울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텔레마코스’는 키르케에게 확신을 주었다. 텔레마코스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할 것과 흉터가 남지도, 늙지도 않는 몸을 포기해도 좋다는 확신을 갖고 키르케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파도 속에서 헤엄친다는 게, 흙을 밟고 걸으며 그 느낌을 감상한다는 게 그런 뜻이다.

살아 있다는 게 그런 뜻이다.

 /

예전에는 신이 죽음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죽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바뀌지도 않고,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p.500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에로스적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김새조차 알지 못했던 키르케가 작은 일에도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무한한 존재이기에 시간의 개념이 불필요하지만, 상대방과의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대화하는 방법으로 말한다. 키르케가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고, 결국은 동화되는 모든 과정이 사랑이다.


키르케가 사랑한 또 다른 존재가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것이 소설 ‘키르케’의 장르를 로맨스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그는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고, 땅에 끌리는 드레스를 말아 올려 맨발에 닿는 흙의 감촉을 자유롭게 만끽한다. 신의 집단에서 ‘미운 오리 새끼’였던 그가 아이아이에 섬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키르케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부러움의 감정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구절이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키르케의 이야기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신화란 그런 것이다. 상상 속 공간에서 신 또는 인간을 비롯한 존재들의 삶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 말이다. 신화를 통한 비현실적 세계로의 도피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도피한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는 신화를 탐험하며 얻은 다채로운 감정을 가지고 우리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며, 그 감정들은 암흑 속의 등불이 되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의 자양분이 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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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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