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사랑한 그리스 신화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4.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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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회의>, 라파엘로 산치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그리스 로마신화’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규모와 상관없이 어느 도서관에서나 찾을 수 있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그야말로 국민 만화책이었다.

 

2010년대 초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 만화책에 푹 빠져 있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만 읽었던 것은 아니다. ‘만화로 보는 북유럽 신화’, ‘만화로 보는 중국 신화’ 등, 신화란 신화는 다 섭렵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신화를 매우 좋아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만화책으로 읽던 어린이는 ‘서양 문화 속 신화와 정치’ 같은 이름의 교양 과목을 찾아 듣는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4가지 이유가 있는데, 심장 뛰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첫 번째 이유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단조로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언제, 어떻게 이타케로 돌아갈지, 아내 페넬로페와 무사히 재회할 수 있을지가 내 인생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순간도 있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마르탱 드롤랭.jpeg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마르탱 드롤랭

 

 

로맨스 영화 버금가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비극적인 사랑, 잔인한 복수로 끝을 맺는 메데이아와 이아손, 많은 고난 끝에 해피엔딩을 맞은 에로스와 프시케.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에 울고 웃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나의 ‘과몰입’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또한, 어려운 그리스식 이름이 주는 낯섦이 좋았다.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 월계수가 된 ‘다프네’, 크레타 왕국의 공주 ‘아리아드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름’이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목구멍을 타고 입술 밖으로 나오는 생소한 발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 걸맞은 차림새도 어린 나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햇빛에 반짝이는 다채로운 색의 머리카락과 매끄럽게 펼쳐진 백사장 같이 자연스러운 주름이 만들어지는 드레스는 신화 속 세계를 동경하게 했다. 아주 가끔씩은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부드러운 옷감의 감촉이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아라크네와 아테나의 베틀 대결 장면을 유독 좋아했다. 별개로 신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로 거미가 되어버린 아라크네의 결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이라고는 ‘하느님’밖에 몰랐던 시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는 터라, 과거의 나에게 ‘신’은 그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말해주었던 하느님이었다.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달랐다. 일단 셀 수 없이 많은 신과 그들 각자의 개성 넘치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내가 생각했던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과도 사뭇 달랐다. 그들은 불같은 사랑과 질투를 했으며, 권력욕이 넘쳤고, 본능에 충실했다. 인간을 사랑하기도 했으며 혐오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특징이 아닌가? 그들은 인간의 외형을 갖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한 채 태어나는 아테나>, 르네 앙투안 우아스.jpeg

<제우스의 머리에서 무장한 채 태어나는 아테나>, 르네 앙투안 우아스

 

 

지배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잡아먹은 크로노스,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 하지만 자신과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왕좌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임신한 메티스를 삼켜버린다. 실수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신들이 과거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질투를 참지 못해 레토의 출산을 막고, 칼리스토를 곰으로 변신시켰던 헤라나,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사랑싸움은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신들의 모습이 내가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마지막 이유이다. 닿을 수 없는 먼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에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미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는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 않은가. 나르시시즘, 피그말리온 효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처럼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의 유래가 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진다는 ‘비극적 운명론’ 또한 대표적인 그리스 사상 중 하나이다. 델포이에서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신화 속 인물들이 숱하게 그려진다. 신탁을 받고 운명에 저항하지만 결국 비극적 운명에 굴복하는 인물들 말이다. 이 사상은 결말은 정해져 있기에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오디세우스에게 컵을 건네는 키르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peg

<오디세우스에게 컵을 건네는 키르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그런데 정말 그 수많은 신화 속 인물 중, 단 한 명도 운명을 거스른 이가 없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재한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한 인물이 있다. 틀림없이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같은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그 예상은 틀렸다. 굳이 이야기 속 역할을 정해보자면 조연과 단역,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글을 읽었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일 테지만, 자칭 그리스 신화의 ‘팬’인 나에게도 기억 저편 어딘가에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었던 이름, ‘키르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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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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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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