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행과 모호함 속에서 자아 찾기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비정형적 요소로 가득한 극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글 입력 2022.04.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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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원작으로 하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라는 뮤지컬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스메르쟈코프의 생애를 다룬 것이 오늘 이야기할 ‘스메르쟈코프’이다. 즉,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의 인물을 한 명 뽑아내서 또 다른 극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작품을 스핀오프(spin-off)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든 것을 떠올리면 된다. 큰 줄기에서 파생된 다른 관점의 이야기, 본편에 이어지는 속편으로 생각하면 감이 잡힐 것이다.

 

 

[크기변환][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그렇다면 우리는 본편인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봐야만 이 극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전체를 알고 부분을 이해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세부적인 것에서 전체로 뻗어나가는 이해의 확장을 경험해 보는 것 역시 새로운 즐거움이 될 것이다. 스메르쟈코프의 생애를 깊게 이해하고 그러한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서론이 길었다.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전체적인 틀을 소개하고 싶다.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자면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시대에, 시골 지주 집안인 카라마조프가에서 아버지인 표도르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표도르의 맏아들, 드미트리가 그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사실 진짜 범인은 따로 있었다.

 

그 진범이 바로 이 극의 주인공인 스메르쟈코프이다.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를 죽이기까지, 그의 생애는 한 가지 의문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20417_154039103.jpg

 

 

극을 보면서 눈여겨볼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독특한 극의 구성이다. 극 중 스메르쟈코프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광기가 서려 있고 정신이 분열되어 있는 점은 세 명의 스메르쟈코프로 표현된다. 스메르쟈코프들은 서로 같은 인물이면서도 다름을 표현하는데 그들 사이에 성격의 차이가 있지만 그 정도가 크지 않고 결국 전체적으로 한 명의 인물임이 드러난다. 세 명을 하나로 여기는 것이 작품 이해의 첫 번째 열쇠이다.

 

그리고 극의 전개 방식으로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했다. 사건이 실제 벌어지는 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내용이 전개된다. 이상의 <날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하나의 큰 줄거리가 있지만 의식이 끊임없이 흩어졌다가 모인다. 이것이 실제로 인물이 한 말인지 아니면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환상과 실제의 경계 속에서 그가 분명히 말하는 것이 있다. 정신 분열로 인한 모호한 만남들 속에서 그의 트라우마가 건드려지고 그 의문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주목하면 된다.

 

두 번째는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주목하면 좋겠다. 스메르쟈코프는 모스크바로 요리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 여러 인물을 만나게 된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묘지의 관리인, 고문 기술자를 만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조시마 장로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묻고 그들의 고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름이 있다면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과 같다. 그의 이름은 ‘수증기’라는 뜻을 가졌다.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존재가 희미하고 곧 사라질 수증기와 같은 상태에서 그는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표류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반대되는 개념에 집착한다. 선과 악, 신과 악마. 악한 것이 있기에 선함이 드러나고 악마가 있기에 신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고통이 있기에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비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여러 유비 논증으로 그는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는데, 이러한 사고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비극적인 결말까지 짐작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안무와 무대 연출에 감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매핑 스메르쟈코프’라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안무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 말했듯 주인공 스메르쟈코프를 세 명의 배우가 동시에 연기한다. 그런데 놀라운 지점은 오히려 이 세 명의 안무를 짤 때 최대한 군무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세 인물의 동작이 너무 유사하지 않게 구성하고, 다른 동작을 하다가 어느 순간 합쳐지는 듯한 느낌을 표현했다. 강물의 물줄기가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또, 인물의 자아가 분열되어 있다는 특성상 동작을 깔끔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연출했다. 가다 말고 돌아오는 것처럼 끝맺음이 없는 느낌을 추가하여, 그의 혼란스러운 정서를 표현하는 데 힘을 썼다고 하셨다. 새와 곰 등 동물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안무를 구상한 넘버도 있었는데 다시 보니 정말 동물의 움직임을 모사한 부분들이 있었다. 이런 지점들을 짚으며 다시 한번 감상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대 연출 또한 함께 신경을 썼는데 360도 돌아가는 회전 무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설마 저게 돌아갈까? 했는데 정말로 돌아간다. 노래에 맞춰 웅장하고 극적인 장면이라서 인상에 깊게 남았다. 회전 무대를 사용하면서 배우의 연기가 잘 보이도록 배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신경 쓰고 고민한 점이 돋보였다.

 

*

 

여러모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요소가 가득했던 뮤지컬이었다. 전형적인 극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배우분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삶의 이유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그리고 불행과 모호함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비추어 자신만의 결론을 찾아내고 싶다면 한 번쯤 봐도 좋을 극이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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