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부조리에 관하여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우리는 부조리의 파도 속에서 어떻게 몸부림치는가
글 입력 2022.04.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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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욕구와 세계의 대답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나는 대답을 요구하지만 세계는 기이한 침묵을 고수할 때. 나의 합리적 이성이 어떠한 결과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러한 때에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나'라는 존재와 외부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도 자연스럽던 행위와 사고들이 순간 낯설어지는 지점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이를 '부조리'라 칭한다.

 

그는 세 가지 항으로 부조리의 필연성을 설명한다.

1. 세상은 비합리적이다.

2.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며, 모든 것을 명쾌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3. 위 1항과 2항이 충돌하며 부조리가 생겨난다.

 

이는 우리가 인간 세계에 실존하면서 이성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부조리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문장 자체가 나에게는 부조리하게 다가온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결코 긍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것. 이게 부조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카뮈는 말한다. 세상은 부조리하고, 이것을 피할 수 없다고. 이를 대처하는 방법에는 회피와 희망, 그리고 반항이 있는데 앞의 두 가지는 부조리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기에 결코 좋은 해답이 될 수 없고,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반항'이라고 말한다. 부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부조리를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그렇다고 절망하라는 뜻은 아니다) 것.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오로지 나의 열정을 모두 소진하는 것. '행복한 시지프'가 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웹툰 중에서도 인생의 부조리함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있다.

 

 

모두가 처절하게 삶을 싸우고 있지만

애초에 승산이라는 게 있는 싸움일까요?

그래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패배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저도,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이것이 세상의 진실이고, 

모든 것의 결말이다.

 

웹툰 [ 더 복서 中 ]

 

 

이 또한 부조리에 관한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나 죽음에 관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예외 없이 맞닥뜨릴 그 종장에 대한. 하지만 이 웹툰에서도 이후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지 '그러나-'가 된다.

 

많은 작품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 그렇다면 실제 나의 인생 중에서 내가 부조리를 느낀 적이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부조리함을 느꼈던, 그 과거의 나는 어떠한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을까? 카뮈의 책에 관한, 카뮈의 사상에 관해서 말하기보단 나의 경험들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며칠 전 읽었던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나의 이런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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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나. 바쁜 일상에 지친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득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봤더랬다. 길을 지나면서 혹은 수업이 끝난 후 잠깐 숨을 돌리면서 바라보는 느낌이 아니라, 오롯이 하늘만을 뚫어지게 꽤 긴 시간 쳐다봤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하늘이 낯설어졌다. 나의 일상 혹은 감정 상태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오롯이 존재하는 하늘을 보며 세상과 나의 '단절감'을 경험했던 것 같다. 이에 더해 구름이 물러가고 남색 하늘만이 남게 되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몸을 엄습하기까지 했다. 이성으로는 완전한 설명이 불가능한 이러한 낯섦, 단절, 공포감을 이제 와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역시 '부조리'가 아닐까 싶다.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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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겨울날 밤 학교 운동장을 정처 없이 걸었던 적이 있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그리고 또 한 바퀴.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걷던 중 문득 쌓여가는 눈에 찍힌 발자국들이 시야에 잡혔다. 그리고 나는(이제 와 표현하자면) 부조리를 경험했다. 찍힌 저 많은 발자국들 모두 '나 혼자'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 운동장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이러한 사유가 확장되어감에 따라 결국 삶이란 세상에서 혼자 펼치는 1인 경극이 아닐까-라는 공허한 상상. 그 순간 몇 바퀴를 더 돌던 찍히는 발자국은 오롯이 나의 발자국뿐일 거라는 부정적 기대. 나의 기준에선 이 모든 것들이 부조리였다. 누군가 같이 걸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비겁한 침묵만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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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는 색에서조차 부조리를 겪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 그 당시에 하늘이 나의 벽지에 투영하던 그 하늘의 색에서 부조리를 겪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마음속은 공허하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날이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비치고 식욕은 생겨날 기미도 없었다. 그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모두 나처럼 불행했으면 좋겠다-(실제로 불행을 바라진 않았다) 하는 날. 하필 그런 날에,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갔던 때에, 미처 커튼을 지고 집을 나서지 않은 나의 전적인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 황홀한 빛이 벽을 밝히고 있더랬다. 그 당시 마음에선 하나의 싸움이 일어났다.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려는 마음 1과 그럼에도 부상하고자 하는 마음 2의 싸움 말이다.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마음 1과 마음 2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마음의 반쪽과 반쪽이 싸운 것이리라.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고,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부조리인 듯하다.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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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부조리. 이 또한 겪었다. 여름철 친구들과 가평에 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빠지'라고 부르던가? 그곳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 후 펜션으로 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음주 가무를 즐겼다. 실컷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후 내일 몇 시에 나갈지, 해장은 어디서 할지, 또 무엇을 하고 헤어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일어나니 이게 무슨 일인가. 밤사이 내린 폭우가 인근 계곡을 초토화시켰다. 내가 도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 것을 3분이라도 늦게 발견했다면 우리 일행은 그날 펜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려나간 내가 회차하는 마지막 버스의 기사님을 간신히 설득해 5분 안에 짐을 싸서 나오기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전날 계획했던 모든 계획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물론 이전에도, 앞으로도 여러 번 느낀 감상이지만) 세상일은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고, 확정된 미래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든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느겼다. 그렇다. 부조리를 느껴버린 것이다.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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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부스스한 나의 모습이다. 외부 세계와 외부 세계에 대한 관념과의 일치성을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의 외향적인 관념과 실제 존재가 일치한다고 보기에,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매일 수차례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어떠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학생생활관 한편에 비치되어 있는 한 기기 앞을 지나갈 때였다. (위의 사진 속 기기이다) 나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기기였다. 정확한 기기의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명확성이 사라지고 추상성만이 남은 나의 모습, 표정조차 제대로 확인할 길 없는 나의 반사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가. 나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배경 속 붉은색은 나의 심상인가. 하는 여러 상념들이 뒤엉키며 형언할 수 없는 낯섦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아. 세상과의 단절. 내가 나를 낯설게 여기는 이 아이러니. 이것은, 부조리일 것이다.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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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발자국도, 색도, 미래도, 나 자신도 나에게 부조리함을 겪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빠질 수 없는 한 가지. 바로 인간관계.(죽음 또한 매우 큰 부조리의 실상이지만, 그간 나의 글들의 대부분이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외하고자 한다) 살면서 가장 많은 부조리를 겪게 되는 주된 테마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에 대한 타인의 기대와 나의 행동. 타인에 대한 나의 기대와 타인의 응답. 이 사이의 간극은 필연적이다. 정확히 일치할 수는 단언컨대 없다.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합치하다는 것이고,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조리이다. 아, 인간관계는 그 자체로 부조리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믿음을 욕망한 나에게 타인은 나에게 배신이란 대답을 하고, 세상은 그에 대해 침묵한다. 배려를 욕망한  타인에게 나는 이기심이라는 응답을 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부조리와 부조리의 관계. 얽히고 얽힌, 부조리의 그물망. 부조리의 총집판. 그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세기도 힘들 정도로 나는 부조리한 감정을 겪었다. 그렇게 많이 세상과 단절됨을 느꼈다. 그렇게 많이 자연스러움 속에서 낯섦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여기, 강원도의 한 대학교의 한 카페에서, 이후에는 강원도의 한 대학교의 동아리방에서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그 수많은 부조리함. 부조리의 세상. 부조리의 파도. 그것을 겪은 나는 아직 여기 존재한다. 내가 그러한 세상과 파도 속에서 자유형이든 배영이든 개구리헤엄이든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그저 파도가 치는 대로 떠다니며 지내왔는지 답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지금 있으니까.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부조리함을 인지한 인간, 그러니까 부조리 인간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부조리를 부조리로 인지하고, 부조리를 부조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기대, 희망은 가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나의 열정을 소진하며 살아간다. 다람쥐 챗바퀴 같은 인생 사이사이 부조리가 존재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인가.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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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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