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손목 위 나무 그리기

규칙-개성
글 입력 2022.04.10 13:1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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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_small.jpg



한승민(Han SeungMin)


무제(Untitled)

 

2022


합판, 목탄, 파스텔, 유화, 수채화, 실크스크린, 흙물, 


162.2 * 97.0

 

 

<세부 사진>

 

발_디테일_small1.jpg

 

발_디테일_small2.jpg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 답답한 생각과 국면을 맞이한 그간, 난 내 삶에 변화 가능성이 스며들 틈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루틴과 계획이 아닌 여유와 소통은 내 작업의 새로운 발판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미술을 시작하게 된 초기의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어릴 적 손목의 핏줄을 따라 볼펜으로 가지를 쳐가며 한 그루의 나무를 완성하는 것은 지루한 수업 시간을 견디는 놀이였다.


내가 그러는 것을 보는 모든 주변 사람들, 어른들은 담배보다 안 좋은 게 피부에 볼펜으로 낙서하는 거라며 발암물질이니, ADHD니 정신 산만이니 집중력 부족이니 날 겁주고 면박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루한 영어 과목, 단어를 외우라고 준 시간에 난 역시나 낙서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 선생님은 내 옆에서 내가 하는 딴짓을 가만히 보고 계셨다.

 

심지어 원어민 선생님이었어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선생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너 그림 정말 멋지다.”라고 한마디 하시고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 순간이었다. 강제로 다녔어야만 했던 학교라는 시스템 속 공간이 내게 숨 쉴 틈을 준 것이. 그 후 난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덜 겁에 질렸고, 내가 하고픈 일에 재능과 열정을 발견했으며 나아가 시스템의 부품이 아닌 시스템을 이용하는 나로 사는 법을 어렴풋이 알았다.


이 그림엔 흙으로 인쇄된 이진법과 그 안에서 뿌리가 아닌 발이 달려 앞으로 나아가는 나무가 그려져 있다. 시스템을 상징하는 이진법은 나라는 씨앗을 뿌리고 타인과의 교류, 소통, 사회화를 시작하게 도와주는 기반이자 흙이다.  그러나 일정한 성장이 이뤄지며 “나”를 인식하고 개성을 펼쳐가며 개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늘 외면하고 싶고 간과되는 점이다. 제도권 속의 삶이 가장 안전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스템과 개인은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이다. 그리고 이를 내 삶에서 받아들이기 위해선 개인으로 사는 삶의 불안정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가장 예측하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난 이를 자연으로 정의했다. 이 작업엔 자연적 변화와 그에 따라오는 흔들림 또한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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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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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뎌주세요
    • 표현이 압도적이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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