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가기까지

세상의 모든 '쿠크다스' 멘탈에게
글 입력 2022.04.0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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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혹은 고민했을 세상의 그 누군가에게 공감의 손길을 건네고자 적어봅니다. 당신의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Part 1. 상처 받는 '유리멘탈' 성격 살아남기


 

‘윽! 바사삭’

 

이 소리는 어디로부터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소리다. 가뜩이나 사소한 말과 행동들에 쉽사리 상처받는 나는 또 남몰래 마음 속 ‘쿠크다스’를 부러뜨렸다.


“저 사람은 왜 나한테 저렇게 말할까? 꼭 저렇게 말해야 했을까?”

 

사실 이 생각은 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전학 간 새로운 초등학교에서도, 나의 정체성으로 방황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던 대학교에서도,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한 직장 생활에서도 수시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 같으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가도 그 말을 스스로에게 대신 전했다. ‘저 사람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거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느 날, TV를 틀다 ‘동물의 왕국’ 다큐를 보게 되었다. 내용인즉슨, 같은 종의 동물인데도 자기 영역과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려는 같은 종인 다른 동물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눈빛을 날카롭게 쏘아대며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지 마라.’라는 위협의 사인을 줬다. 기존 영역을 침범하려던 동물은 할 수 없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으러 떠났고 기존 영역을 차지하던 동물은 그제서야 공격성을 가라앉혔다.


동물도 이런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사람 또한 물리적인 자기영역과 공간을 지키려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그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사람은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른 사람이 그 안에 들어오면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며 4가지의 인간관계의 거리를 설명한다. 즉, 3.6m~9m 거리로 위협을 받을 경우 피할 수 있는 거리인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Zone)’, 1.2m~3.6m 거리로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Zone)’, 45cm~1.2m 거리로 팔을 뻗었을 때 만큼의 길이인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Zone)’, 45cm 이내의 거리로 연인이나 가족처럼 친밀도가 높은 관계의 거리가 그것이다.


특히, 새로운 집단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 왔을 때 부리는 ‘텃세’가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기존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동물의 입장과 같을 것이다. 부모님의 교육열로 인한 잦은 학교 전학으로 적응될 때쯤 떠나야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두 번 반복되다보니 스스로 적응하는 힘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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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보니 한 집단에서 오래 머무는 일보다는 새로운 집단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떠도는 인공위성 같은 존재가 더욱 편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학교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모임에 참여해야하는 일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는 단기로 하는 일이 편했다. 게다가, 평일로 계속 만나는 일보다 주말을 선호했다. 누군가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역마살이 붙은 사람처럼 단기로 이곳저곳 새로운 일과 집단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일하다보니 처음에는 오래 진득하게 일하지 않는 내 모습이 아쉽기도 했지만 다양한 일을 시도하고 경험하다보니 참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다양한 직업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art 2. 높은 이상과 기준 속에서 방황하다


 

교양을 쌓는 일과 종교적인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던 어머니의 성향에 따라 그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로 인해, 다양한 문화예술을 어릴 적부터 경험할 수 있었지만 나의 기준과 이상은 하늘을 찔러갔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러했다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했다. 스스로가 만든 높은 기준과 이상은 더 높은 꼭대기로 달려갔다. 어느새, 내 마음 속의 기준이 너무나도 높아져버렸다.


하지만, 그 기준은 정작 ‘나’는 아니었다. 단지, 내가 그것을 추구하고 원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추구하다보니 그러한 사람인줄 알았던 것이다. 어느 순간 나를 감싸던 커다란 비눗방울이 터져버리고 찬란하게 반짝거렸던 거품이 사라진 순간 진정한 본래의 ‘나’를 보게 됐다. 그 현실의 나는 이상 속의 나보다 꽤나 볼품없었다. 처음에는 자기 비하도 많이 했다. 나약한 내 자신을 탓해보기도 했다. 나보다 잘나고 뛰어난 이들을 보며 동경하면서도 때로는 질투의 감정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유지하고 있기 보다는 그 뛰어나는 사람들처럼 되려면 그 모습을 닮아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콤플렉스로 여기는 것들을 책을 통해 읽으며 그 이상 속의 내가 되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때로는 밤을 세워가는 날도 있었다. 하루에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을 하나라도 알고가자는 심정으로 공부하고 또 했다. 그 모습이 꼭 수험생 같았는지 가족들은 항상 ‘너는 매일 뭔가를 하고 열심히는 하는데 좀 쉬기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가 푹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이 보는 기준은 그것이 아니었다. 최근에서야 이를 느꼈고 어떠한 죄책감 없이 하루를 푹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Part 3. '나'를 알아가다


 

내가 가진 장점이 있어도 낮은 자존감으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았던 적이 있다. 낮은 자존감은 자기 비하로 또 다른 콤플렉스를 만들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랬다. 다른 사람들과 쉽사리 잘 지내는 사람을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고 방법을 찾으려 한 적도 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해진 방법은 없었다. 단지, 서로의 마음이 맞아서 친해진 것이고, 친해지면서 친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그 만큼 사이가 돈독해지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관계 또한 영원하진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려 하기 보다는 친해지는 방법에만 초점 맞추는데 급급했고 친구를 사귀어야 된다는 생각이 가득해서 괜히 무리해서 친해지려 했다.


언젠가,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문뜩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잘 이해하고 스스로가 기준이 잡혀있어야 상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마음을 먹은 후 타인과의 관계에 쏟았던 에너지를 나를 알아가는데 썼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싫어하는 것과 어려운 것들도 나열해봤다.


또한, 대학교를 다니면서 나를 알아가기 위해 MBTI 테스트나 에니어그램 강의 그리고 여러 상담 프로그램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객관적인 지표로 나와 있는 테스트 또는 상담자의 눈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좀 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길렀다.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는데 MBTI와 에니어그램 테스트만큼 탁월한 것은 없었다. 이 두 테스트는 어떠한 성격이 우월한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먼저, MBTI 테스트는 나와 같은 삶을 사는 누군가가 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 나의 MBTI 성격 유형은 ‘인프제(INFJ)’이다. 인프제는 평화주의자이자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설명한다. 공감하는 바이다. 특히, 주변사람들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편이라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 태도나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이를테면, 외향적인 사람과 있을 때는 외향적인 면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내향적인 사람과 있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내향적인 면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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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 떠도는 각 유형별 빙고가 있다. 인프제 성격 유형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봤는데 꽤나 일치하는 면이 많았다.


한편, 에니어그램 테스트는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의 깊은 면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에니어그램 유형은 4w5(4번의 5번 날개)이다. 이 유형은 평범한 것을 기피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시기심에서 열등감으로 빠지는 유형이며 완벽주의 성향도 있으나 감정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직관력이 높아지고 침착해지며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고백하자면, 이 유형의 설명은 깊은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기술한 문장 같았다. 평범하기 보다는 특별해지고 싶어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발견하려 했고 나와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것을 계발했다. 그리고, 한때는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들 때문에 굉장히 마음속으로 열등감을 가졌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했지만 그들처럼 되고자 작은 것부터 고쳐나가기도 했다. 또한, 완벽주의 성향도 강해서 항상 매일의 계획을 지키려고 했고 내 마음에 만족되어야 잠을 자기도 했다. 그래서, 새벽에 잠을 자기 일 수였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듯한 삶을 살다가 여러 번 작고 큰 굴곡을 거친 후에야 마음을 편하게 먹는 법을 찾았다.


가장 느낀 것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챙기는 것이 뒷받침되어야 그 다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좀 더 몸을 챙기면서 현명하게 계획하고 하루를 사는 방법으로 바뀌어갔다. 몇 년 전, 스스로가 생각할 때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맨 바닥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힘든 일의 연속이었으나 이제 올라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 작은 일과 성취를 하나씩 이뤄가며 자존감을 하나씩 쌓아갔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개기, 기지개 펴기, 하루에 한 번씩 공원 산책하기 등이 있었다. 상당히 간단해보이고 쉬워 보이는 것이면서도 눈앞에서 실행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오늘 한 것들과 지킨 것을 적고 동그라미로 표시하면서 작은 칭찬을 해줬다. 그러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날이면 먹고 싶은 음식이나 사고 싶은 것들을 사면서 보상을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몇 달간 반복했고 점차 자존감이 회복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아직 앞으로 발전할 것도 나아가야 할 것들도 많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재 내 모습에 만족한다. 열심히 살아왔고 힘겨운 순간에서 부정적일 때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의 힘을 따라가며 나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전의 나의 모습은 매일 긴장되고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옅게 깔린 감정이라 때로는 꽤나 긴장되는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어제를 잘했으면 오늘도 잘해야하고 내일도 잘해야한다는 스스로가 만든 생각이 압박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일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갖는 긴장이 부담될 때도 있지만 또 가끔은 언젠가 이것 또한 일상처럼 익숙해진다면 ‘나는 또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될까’라는 자만심 내지 나름의 기대감을 갖는다.

 

 


Part 4.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기


 

본래 상처를 많은 받는 성격이라 그런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날카로운 말이나 험담에 쉽게 상처받는다. 단지,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정말이지 대놓고 나에게 무례하게 굴 때면 잠시 지구 밖으로 날아가 우주에서 유영하고 싶을 만큼 멍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받아치지 못하고 집에서만 끙끙거리던 감정을, 요새는 불편함을 드러내거나 그것이 어려울 경우 나에게 한 질문을 똑같이 하면서 내 감정을 그 사람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그 감정을 느끼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경우가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 불필요하거나 버겁게 하는 인간관계는 거르는 습관이 생겼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예의 있게 대해주지만 그 친절을 자신의 우월감으로 채우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최소한의 친절과 말만 한다. 하지만, 허점이 보이지 않도록 예의 있는 모습은 잃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행동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지만, 친절을 친절로 돌려주는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 그리고 관계를 우월이 아닌 평등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으로 대한다. 굳이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관계를 개선하고자 애를 쓰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완전한 인간관계는 없고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라 여전히 누군가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작은 상처를 받는다. 내가 그들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그렇게 바로 그 무례함을 받아쳐서 갈등을 직면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상처받기보다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다.


상대의 말을 듣고 잘못한 점이라면 고쳐나가지만 이것을 본래의 ‘나’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의 ‘나’일 뿐이라 생각하고 본래의 ‘나’의 모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본래의 ‘나’로 연결시키면 하루 온 종일 그 생각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낼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완벽한 인간관계라는 환상에 젖어있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생의 반쪽처럼 친밀한 친구와의 모습이라던지, 굴곡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이어지는 연인 속 모습 혹은 내가 충족하는 완벽한 이상형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가족에게도 완벽한 부모님 상을 바란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환상이자 유토피아 세상 속 이야기가 아닌가. 나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완벽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것을 모두 충족하고 변함없이 그들이 내 곁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어린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난 후 인간관계에 대한 촘촘한 선을 풀고 좀 더 그 간격을 넓혔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과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말투와 의도가 내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는다고 생각할 때면 마음속에서는 점점 정리하는 것 같다. 그 사람에 대한 상처라기보다는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또 다른 사람을 찾아서 떠난다. 그러면서도, 이전 관계를 꽤 많이 돌아본다. 사실, 지금껏 스쳤던 사람들을 좋든 그렇지 않든 존중하지 않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어진 관계를 고치려는 복잡한 노력은 그만둔다. 대신 지나갔던 인연을 생각하며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시작하려면 ‘나는 어떤 것을 바꾸어갈까’ 생각한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관계를 위해서도 맞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가도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과 미묘한 신경전은 여전히 있다. 때로는 걸러지지 않은 채 뛰어나오는 나의 약한 행동이나 말투 등을 보고 누군가는 기세등등해지기도 한다. 그 모습을 인지하면서도 넘어갈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일 때가 많다. 여전히,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일부러라도 더 강하게 나를 어필하거나 자신 있는 목소리와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 또한 엄청난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어제는 잘해주는 것처럼 보였다가 오늘은 대놓고 무시하는 매일 같이 뒤바뀌는 사람들의 감정을 보면 참으로 허무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겨주는 가족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래도, 나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사람들을 만나면 또 피로감은 쌓이겠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다시 내 본래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상처에 그다지 반응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상처를 받기를 하지만 그보다는 개선점을 찾거나 앞으로 내가 보여야 할 행동을 먼저 생각한다. 또한, 그 상황에서 바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 푸는 방법을 택한다. 아마,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 더 내가 단단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방 벽에 책을 읽고 쓴 문장을 적는 것들을 붙여놓았다. 그 중에서 특히 아침마다 보고 가는 문장이 있다. 바로 ‘있는 그대로 나를 평가하는 것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저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인정해줄 수 있는 과정에서 단단한 자기가 필요하다.’이다. 잘하든지, 못하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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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장점은 쉽사리 인정하지만 대부분 단점은 인정하기 싫고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단점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좀 더 삶을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특히, 완벽주의 성향을 조금 더 내려놓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지금은 누가 나에 대한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그 판단에 휘둘리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적어졌다. 조금 힘든 하루를 보냈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참으로 긴 글이었다. 얼굴도 모를 누군가의 글을 시간 내서 읽어주어 감사하다. 만일,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자신을 잃지 말고 인생의 기준을 자신을 두는 삶을 살길 바란다.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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