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공연]

글 입력 2022.03.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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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은 죽은 아빠의 꿈인 북극 탐험 중 펼쳐진 ‘로리’의 성장 스토리이다.

 

여성 1인극 모노드라마로 다양한 인물과 시공간에 따른 변화와 배경 설명을 모두 주인공 ‘로리’가 전달한다. 여러 인물은 얼굴의 방향과 목소리로 표현한다. 하나의 공간은 아빠의 서재, 북극의 공간 등 여러 배경으로 변한다.

 

북극의 얼음 소리, 북극곰 경보음 등의 음향 연출도 몰입감을 부여한다. 문학적이고 구체적인 대사들은 풍부한 상상을 펼칠 수 있게 돕는다. 80분 동안 극을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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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십 대 소녀였던 그는 죽음이라는 처음 겪는 상실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른들이 애도하는 방식도, 부엌 한쪽에 방치되어버린 유골함의 모습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지리학 교사였던 아빠는 북극 탐험가가 꿈이었다. 딸의 이름도 ‘오로라’에서 가지고 왔으며 어릴 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글루 놀이를 하기도 했다. 탐험가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며 탐험 계획을 함께 세웠다. ‘로리’는 유골함을 가지고 홀로 아빠의 마지막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북극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앞서 세상을 떠난 탐험가들의 발자취를 따라서며 미지의 세계로 다소 충동적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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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는 순탄치 않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북극에 엄마와 함께 도착하게 된다.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라고 여기며 동경했던 환상 속 북극에는 막상 흰색 얼음 뿐이었다. 탐험가들의 꿈이 가득했던 곳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한편으로는 허무한 공간인 것이었다.

 

그렇게 북극의 실체를 마주한다. 지리적 북극에 아빠를 날리려고 했지만, 바람으로 인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간다. 결국 천구의 북극으로 도달할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아빠는 북극에 도착한다. 북극의 진실과 죽음의 허무함을 이해하며 로리는 아빠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로리만의 애도 방식을 충분히 취했을 때 치유가 이루어진다. 엄마의 슬픔까지 이해하며, 비로소 가족 간 화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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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이트 언어로 눈을 뜻하는 단어가 수백 가지나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래.”

 

어찌 보면 눈을 말하는 ‘단어’가 수백 가지라는 연극의 제목 또한 허구지만, 그 속엔 다양한 ‘의미’가 분명 담겨있다. 사랑은 상처 위를 소복이 덮어 치유하는 눈과도 같다는 탐험가 난센의 말처럼 저마다의 마음속에도 따스한 눈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연극이 막을 내리고 관람객은 박수를 보낸다. 배우는 그들을 눈에 가득 담았다.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꿈을 꾸는 사람의 아우라가 인상 깊었다. 이 연극을 보고 <투스카니의 태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모든 것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마치 로리의 아빠가 북극에 도달해 뒤늦게 나마 꿈을 이룬 것처럼. 로리도, 그를 연기한 배우도, 관객인 우리도 꿈을 꾸며 살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않을까.

 

 

[윤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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