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폐허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 - 영화 [경주]와 진짜 '경주'

글 입력 2022.03.31 13: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Prologue

 

영화 <경주>의 인상적인 대사를 기억한다. 경주에서는 무덤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 그랬다. 경주는 그런 도시였다.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아이러니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떠나라는 교수님의 그 말씀에 나는 무심코 경주를 떠올렸다. 수학여행의 지겨운 레퍼토리가 아니라 겹겹이 쌓인 시간의 퇴적층 속에서 생기와 폐허를 함께 간직한 그 도시를 말이다.

 

경주에서의 첫 기억은 3월의 훈풍이었다. 겨울의 흔적이 여전히 자리하던 인천과 달리 남쪽의 그 도시는 먼 길을 떠나온 여행자에게 따뜻한 햇살과 화사한 벚꽃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영화 속 '최현'처럼 블랙을 드레스코드로 맞추었던 나는 후회하며 입었던 재킷을 벗어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계절이 내려주는 축복을 받으며 1박2일의 경주 여행을 시작했다.

 

 

1.jpg

출처 : 영화 <경주>

 

 

 

폐허로의 피난


 

경주역을 나와 곧장 직진 방향으로 걸었다. 지도를 보며 따라 걷다가 문화의 거리로 들어갔다. 대릉원, 그중에서도 천마총으로 가는 길은 그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죽음이 자리한 거대한 장소를 향하기 위해 삶의 생기가 넘쳐 있는 거리를 지나면서 나는 미묘하게 풍겨오는 아이러니를 즐겼던 것 같았다.

 

혼곤한 바람을 받으며, 경주시 곳곳에 포진한 고분들 중 황남동 고분군의 입구 앞에 섰다. 입장료로 2000원을 지불하고 들어가자, 영화와 달리 초록의 생기 대신 금빛의 품격을 간직한 거대한 언덕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자리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을까 했지만 천마총의 방향을 알려주며 재촉하는 안내원의 말에 못 이겨 무작정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길은 언제나 엄숙했던 것 같다. 죽은 자의 공간으로 산 자가 무단 침입을 하는 것도 같아 가슴이 괜히 섬찟했다. 아마 바깥과는 다르게 서늘한 공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덤에서 발굴되었다는 전시품들을 조명하기 위한 옅은 빛들이 아니었다면 칠흑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했을 그 어둠의 공간을, 나는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4~5평 남짓한 그곳에서 발들은 자꾸만 부딪혔다. 어서 가라고 재촉하듯. 죽은 자와 그것과 함께 있던 물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란 산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다소 조급했던 천마총의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때마침 나들이 철이었다. 조촐하게, 그러나 한편으론 영롱하게 금빛이라는 단 하나의 색으로만 빛나던 고분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입은 색깔은 분홍색과 주황색 등으로 화려했다.

 

잠시 앉아 쉴 겸, 근처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본 것들에 대해 몇 가지를 메모하다가 영화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경주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나온 최현이 짙은 녹빛의 고분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이윽고 카메라는 최현을 비껴서더니 서로에게 수줍은 입맞춤을 선물하는 커플과 소풍을 온 유치원생들의 생기를 비추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영화 속의 장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최현과 내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같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죽음이 침묵하는 곳에서 산자들이 펼치는 아리따운 생기의 춤사위를 바라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슨 기분이었을까.

 

그때였다.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신경을 긁는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젊은 부부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시선을 한 번씩 던졌다. 그러나 부부에게는 바윗덩이보다 더 큰 무언의 압박이었을 것이다. 순간 나는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 나오는 '소희'의 기분을 느꼈다. 침묵과 고요를 찾아온 여행자에게 떼를 쓰는 아이의 울음은 갑작스레 마주한 거대한 파도와 같았다. 나는 급히 일어났다. 어디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졌다. 이왕이면 조용한 곳으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그렇게 무작정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평일에 오지 못했던 나를 후회하며.

 

소란을 피해 빽빽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갔다. 몇 분쯤 걸으니 출구가 보였다. 사람들은 주위에 여전히 가득했다. 햇살이 워낙 좋은 탓이었다. 하키코모리들도 집 밖으로 안 기어 나오고는 못 배길 따뜻한 봄날은 이곳에서조차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결국 고분군을 나와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다시 섰다. 출출함을 햄버거로 달래며 경주역을 향해 다시 무작정 걸었다. 영화에서 나온 찻집인 ‘아리솔’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갈색 표지판으로 시선이 닿았다. 큼지막하게 하얀 글자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황룡사 가는 길.” 황룡사, 643년 선덕여왕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동양 최대의 목탑을 간직하던 곳. 그러나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려 이제는 그 흔적만이 남아버린. 그 사연을 떠올리자 나는 충동적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더 이상 황룡사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핸드폰과 나의 체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시간가량을 헤맸을까. 핸드폰의 데이터량도 10%가 채 남지 않았다는 문자가 도착하자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려오는 허무함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애석하게도 빈논 뿐이었다. 그러다 내 눈으로 황량한 공사장이 담겼다. 설마, 아니겠지? 묘한 직감과 의심이 마음속에서 공존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다시 한번 확인할까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앞으로의 여행 일정이 두려워 그러지도 못했다. 결국 믿을 건 직감뿐이었으니. 잠시 그 공사장을 바라보다가 무작정, 빈 논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사장에 가까워지자 컨테이너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가까워지자 그 안에 박힌 글자도 서서히 선명해졌다.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센터 건립 현장.” 그 문장을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다. 결국 찾긴 찾았구나. 1시간을 헤맨 보람이 없지는 않았구나. 가슴을 두드리는 벅찬 감격을 애써 진정시키며, 쪽문이나 다른 없는 조그만 출입구로 나의 발을 옮겼다.

 

예상은 했지만, 죽음이 다녀간 흔적은 역시나 적막했다. 그것도 무덤보다 더한 적막감이었다. 사람도 없었고, 목련도, 개나리도 없었다. 듬성듬성 드러난 잔디와 이곳이 한때 ‘절’이었음을 설명하는 표지판과, 그 시대를 같이한 몇몇 개의 거석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주위는 빈 논이었다. 아직 모내기도 시작하지 않은, 겨우내 황량하던 바로 그 모습만이 가득했다. 무려 150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통과하면서, 한때 동양에서 가장 큰 탑의 권위는 어디로 가버렸던가. 뒤늦게 찾은 표지판에도 황룡사란 이름은 없었다. 대신 근처의 분황사만이 적혀 있었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은 그렇게 지리멸렬하게 흩어져버린 것이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근처에 몰려있던 갈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흥망이 유수하니’로 시작되는 원천석의 시조가 떠올랐다.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버린, 한때 한 나라의 수도였던 개경을 바라보던 그의 마음은 그때 황룡사의 터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닮았을까.

 

 

4.jpg

출처 : 영화 <경주>

 

 

 

찻집, 그리고 밤의 대릉원


 

몇 시간을 돌아다니다 보니 몸이 쉽게 지쳤다.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그러다 가다 말았던 영화 속 찻집인 ‘아리솔’을 다시 떠올렸다. 그곳에서 만끽하는 휴식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묘한 설렘에 나는 마침 오던 212번 버스를 탔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아리솔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나의 인내와 한계를 밑바닥까지 체험해야 하는 고단한 시간이었다. 지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 한참을 달려 뒤늦게 내린 곳이 안강이었다. 서서히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네 시에 그렇게 낯선 도시에 던져지니 무인도에 갇혀버린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근처 농협을 찾아가 겨우 경주역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아낸 뒤에 의자도 없는 조그만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어폰에서는 경쾌한 노래가 쉴 새 없이 들려왔지만, 기분은 여전히 우울했다.

 

한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경주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고난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지도 한 장 들고 찻집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문화의 거리 골목을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익숙한 포스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틀림없었다. 그건 영화 ‘경주’의 포스터였다. 무려 2시간 30분 동안을 찾아 헤맨 그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친 발걸음을 옮겨 초라한 입구 앞에 섰다. 영화 속 모습처럼 아리솔은 도심 속 비원 같은 풍경이었다. 더 나아가 표현하자면 ‘장해’가 기거하던 곳이라고나 할까, 도심이라는 짙은 안갯속에 둘러싸인. 그러자 내가 그를 찾기 위해 나선 수많은 속인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여주인이 맞아주었다. 그녀는 영화를 따라온 나그네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영화 속에서 ‘최현’이 차를 마셨던 바로 그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무엇을 주문하겠냐는 말에 나는 최현이 그랬던 것처럼 황차를 주문했다. 주인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고, 황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주변 풍경을 향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어 왼쪽 벽을 쳐다보았다. 영화 속에서 최현은 이곳에 붙은 춘화를 찾아 경주에 왔었다. 하지만 7년이 흐른 시점에서 그 춘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만이 거기 놓여 있을 뿐이었다.

 

처음 마시는 황차는 예상보다 순했다. 냄새도 맛도, 달빛의 차라는 별명답게 은은하고 따뜻했다. 부식으로 나온 과자를 함께 씹으며 잠시 벽에 등을 기대었다. 연결된 스피커에서는 쎄시봉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좋았다. 설령 모르는 노래라 하더라도 그들의 화음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 허락된 고요를 누리자니 하루의 피로가 조금씩 풀려갔다. 그제야 최현이 충동적으로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짧은 휴식의 보답으로 6000원을 남기고 아리솔을 나왔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노곤한 상태에서 더는 돌아다닐 용기는 없었다. 숙소로 가기로 결정하고 걷는 길에서 나는 능사리 고분군을 마주쳤다.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곳의 주민들이었다. 경주에서 밤의 대릉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노을 지는 풍경이 좋아 벤치에 앉았다.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한 채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하얀색 환자복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더딘 발걸음으로 이곳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초췌한 몸짓으로 목련나무 앞에 섰다. 꺼져가는 그녀와 달리 나무는 싱그러운 흰 꽃잎들을 자랑했다. 그녀는 무망하게 나무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장률’ 감독이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주는 단순히 역사적인 관광지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이 나란히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한데 뒤엉켜 경계도 없었다. 대신에 그 경계의 흔적에 자리한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었다. 죽은 시간이든 살아있는 시간이든 곳곳에 꽃가루처럼 흩뿌려져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유영했으며, 또한 자연스레 도시에 스며들었다.

 

사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결코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경외라는 포장 속에서 유폐시켰고, 종교를 만들어 죽음을 비껴선 채로 마주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그것은 더더욱 심해졌다. 과학은 죽음이 우리와 먼 시대의 일처럼 다루었고, 사람들은 병원이나 교외의 공동묘지, 혹은 납골당으로 그것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인공적인 낙원 속에서 인간은 영생을 꿈꿨다. 그러나 비눗방울 같은 허상은 언젠가는 깨지고 말기에, 현대인들은 조급함과 불안을 안고 살았다. 다만 365일 무덤을 바라보는 여기 사람들만이 묵묵히 흐르는 시간에 자신들의 몸을 맡겨놓고 있었다. 진정한 낙원은 바로 그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중년의 여자는 이내 목련 나무를 비틀거리며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에 무심한 눈길을 던져주다가 거대한 언덕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풀이 패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윤희’와 ‘최현’은 문화재인 고분 위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관리인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삶들이 죽음 위로 무던히 흔적을 남겼다. 그렇다면 나도  올라가 볼까. 나도 모르게 도전 의식이 일어나 가방을 다시 맸다.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모습에 이내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 한 쌍의 연인이 거기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산 자들의 특권인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죽음의 봉우리들 사이에서 사랑이 거기 있었고, 삶이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 올라갈 자신을 잃어버렸다. 대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내가 찍은 이곳의 사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서서히 공기가 싸늘해지자 다시 일어나 걸었다. 그러다 다른 고분들에 비해 유독 아담한 규모의 고분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것은 언제나 큰 것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 한. 때문에 나태주도 ‘풀꽃’이란 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그곳에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었다. 고분과 같이 있던 생명은 흰 목련과 개나리, 그리고 소규모의 대나무 군락뿐이었다. 조촐한, 혹은 소박한 그 풍경을 향해서 나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람도 없고, 심지어 새조차도 그 위를 날아다니지 않는 그곳은 숨소리조차 사치일 만큼 적막한 고요만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자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산자에게는 언제나 소리가 있었다. 침묵을 경청하던 귀를 향해 손을 갖다 대었다. 용암 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붉은 피가 혈관의 거친 단면들을 긁으며 내는 바로 그 용암 소리가. 그리고 그 소리는 내게 말했다. 이 죽음들 사이에서 너는 살아있다고. 이 폐허의 중심에서 너는 삶을 외칠 자격이 있다고.

 

 

5.jpg

출처 : 영화 <경주>

 

 

 

오로지 삶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오전에 떠나는 기차 시간 때문에 한 군데 정도 돌아볼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최현이 찻집을 나와 돌아다닌 곳 중에 하나인 보문호를 마지막 여행지로 잡고, 이번엔 제대로 버스 노선을 확인한 뒤에 출발했다. 20분 정도를 타고 갔을까. 이제껏 보았던 역사의 도시인 경주가 아닌, 관광지로서의 경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경주에서는 무덤을 보지 않고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만큼 경주에서 삶과 죽음은 밀착되고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 보문호는 예외였다. 오로지 삶뿐이었다. 죽음을 초월한 낙원을 표방하듯이 아름다운 풍경과 삶의 생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제와 다르게 남쪽 도시의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판타지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최현이 어느 할아버지와 태극권을 하던 장면을 캡처한 사진 한 장을 들고 보문호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대나무 군락이 넓게 자리한 장소를 찾았다. 호수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대나무가 이따금씩 흔들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기로 했다. 그러자 새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 안에 둥지가 있기라도 하듯이 대나무 군락 속에 몸을 단단히 숨긴, 크기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새는 낯선 여행자에게 목이 터져라 경고의 울음을 보냈다. 결국 새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발을 물러섰다. 뒤에는 큰 호텔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산책로를 걸었다. 반 바퀴쯤을 돌고 나니 호숫가로 나있는 길에 동상들이 놓여 있었다. 다가가보니 포토존이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을 재현해놓은 곳에서 사람들은 왕좌에 앉아보기도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담아내며 나는 잠시 풍경을 바라보았다. 호텔이 마치 주택촌처럼 나열되어 있었고 곳곳에 자리한 상점들은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괜찮다고 여길법한 산책로는 하나같이 호텔의 소유여서 손님이 아닌 이방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 찬란한 풍광에서조차 자본의 씁쓸한 뒷내는 여전히 풍기고 있던 것이다.

 

호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했다. 호수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끊길 줄을 몰랐다. 무덤을 보고 살아야 했던 경주의 다른 부분들과는 달리 오로지 삶의 시간만이 자리한 이곳. 그걸 생각하자 남진우 시인이 쓴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문장만큼 이곳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설령 이 모든 풍경이 판타지처럼 비현실적이더라도 말이다.

 

 

3.jpg

출처 : 영화 <경주>

 

 

 

Epilogue


 

1박2일의 짧지만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동대구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1시간쯤을 달려 동대구역에서 내려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올 때도 머물렀고, 갈 때도 짧게 머무르는 이 도시에는 김광석 거리가 있었다. 올드한 음악 취향을 가진 동생 때문에 나도 좋아하게 된 그 가수의 흔적이 말이다. 왠지 그곳을 꼭 들러보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왕복이 한 시간이 넘었다. 고작 40분 정도의 여유를 가진 나그네에게는 사치인 곳이었다. 대신에 나는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했다. 그리고 달래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틀었다. 기분 좋은 휘파람과 기타 소리,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 노래를 들으며 소망했다. 지금 부는 이 바람은 내가 돌아가야 할 인천에서 불어오는 것이기를.

 

 

 

컬처리스트_이중민.jpg

 

 

[이중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7435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