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야기 - 나의 악당, 할머니 [도서]

할매와 소년의 질긴 30년간 이야기
글 입력 2022.03.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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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제목의 책 리뷰를 봤다. 진심이 담긴 글자는 나를 그곳에 조금 오래 머물게 만들었다.

 


준이로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삼십이 넘는 현재까지의 삶의 한 부분, 어쩌면 전체일지 모르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그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 가족을 향한 사랑, 슬픔이라는 공통점을 느끼며 그 어떤 글보다도 공감하며 책장을 넘겼다.

. . .

그의 말대로 준이로 작가는 아주 멋지게 이 글을 완성하고 나서 할머니와 그의 아픔, 처절했던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게 되었다. 비로소.

 

이제 나는 내 사람들을 행복하게, 나 또한 행복하게 세상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 사랑해야겠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타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한 사람의 삶까지 변화시킨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궁금해졌다. 이 책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기대하며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독립출판 <나의 악당, 할머니>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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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새빨간 표지, 그리고 오래돼 보이는 사진 하나. 그 사진엔 손에 무언갈 꼭 쥐고 있는 앳된 소년과 악당으로 추정되는 듬직한 할머니가 서있었다. 100장도 채 안 되는 88쪽, 88g의 가벼움과 큼지막한 글씨체, 시선을 이끄는 표지에 저절로 손이 가는 책이었다.

 

처음으로 접한 독립출판 책은 투박했다.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툽툽한 글씨체,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는 내지 디자인, 색연필로 그린 그림들까지. 대중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트랜디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독특한 디자인 덕이었을까. 작가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다가왔다.

 

투박했지만 그래서 더 정스러웠다. 마치 이쁜 밥상은 아니지만 밥그릇을 싹 비우게 되는 할머니 집 밥 같은 느낌이랄까. 독립출판 책과의 첫 만남은 조금 어색했지만 손에 쥐고 계속 보다 보니 나름 귀엽고 정감도 느껴졌다.

 

정감이 가는 데에는 작가의 문체가 한몫을 더했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온기가 느껴졌다. 준이로 작가의 따뜻한 문체에서 그가 주고받았던 사랑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솔직한 표현과 친근한 이야기의 짧은 에피소드들은 계속해서 다음 장으로 넘기게 했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다.

 

유머는 삶을 비극에서 희극으로 만든다고 했던가. 단단하게 성장한 준이로 작가는 상처와 결핍의 소년 시절에 담백한 유머를 입혔다. 아픔의 시간들이 이젠 누구나 보고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잔잔한 웃음이 지어졌다.

 

세상에 첫 작품을 펼쳐낸 준이로 작가. 그가 해상도를 높여 기록하고 싶었던 그의 소년 시절. 쓰고 싶은 글보다 써야하는 글을 써낸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나의 악당, 할머니

by. 준이로


 

이 책엔 준이로 작가가 아주 어릴 적 할매와 만났던 시간부터 이별까지 30여 년간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목차는 오십, 육십, 칠십, 팔십 4챕터로 할머니와 작가의 나이에 따라 흘러간다.


세상의 눈이란 눈은 다 내리던 88년 1월 8일. 작가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할매의 곁에서 자랐다. 할매는 드래곤볼의 피콜로처럼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흡수해 엄청난 슈퍼 악당이 되었다. 강한 교육과 찰진 욕으로 7명의 자식들을 길러내며 손주까지 키웠다. 가혹한 현실이 할매를 악당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을까. 할매는 소년만의 슈퍼 악당 피콜로가 되었고, 소년은 할매의 품 속에서 세상의 추위를 피했다.

 

할매는 소년에게 유일하게 친절했고 많은 사랑을 주었다. 소년은 늘 결핍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할매가 챙겨줬다. 눈물을 흘리기도, 칭얼거리기도 했다. 엄마의 존재를 애타게 찾던 6살의 소년은 어느 날 할매에게 그간의 어리광과 땡깡을 터트려버렸다. 할매는 결심한 듯 말했다. "회초리 걷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아팠던 회초리로 인해 소년의 종아리엔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다. 소년은 엉엉 울면서 엄마 같은 건 없다고 입밖으로 말했다.

 

 

나를 태어나게 만든 누군가가 나를 버린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찬란하고 멋진 순간이었다.

 

<나의 악당, 할머니>, 20p

 

 

이별이란 인생의 쓴맛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경험한 소년이었다. 할매의 강한 교육으로 소년은 세상의 이치를 차차 깨달아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할매의 강한 교육방식은 아이를 약하게 하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어쩌면 정말 피콜로같이 할매는 소년에게 자신의 기를 조금씩 나눠주시고 계셨던 게 아닐까?


할매는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다. "이놈의 몸뚱아리, 그냥 빨리 죽어버리든지 해야지." 이에 질세라 소년은 답한다. "할매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거야." "나도 할매 죽으면 죽을래. 할매 없으면 나도 없을 거야."

 

어린 나이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할매가 없으면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할매가 살아야 자신이 산다는 것을 깨달았던 소년이 같이 죽자고 했던 말은, 역설적이게도 같이 살자는 말이었다. 생존본능으로 공감 능력을 저절로 터득한 어린 소년은 민감한 감수성으로 남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할매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라는 나의 말은 '우리 둘 다 잘 살고 행복해지자.' 라는 바람이었다.

 

"둘 다 죽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자."

 

이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의 악당, 할머니>, 39p

 

 

대학 졸업식이 다가왔다. 소년은 슈퍼 악당 할매의 손에서 쑥쑥 자라 대학을 무사히 다니고 큰 기업에 취직까지 한 번듯한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는 한 번도 그의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초대되지 못했다. 유치원 때 친구들은 젊은 엄마가 데리러 왔지만 작가는 늙은 할매가 오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은 할매에게 창피하다고 말했고 슬픈 결말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 할매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우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그것은 해선 안된 행동이었고 평생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땐, 야속하게도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뒤다. 그래서 더욱 후회의 마음으로 남는 것 같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엔 이렇게 짐이 하나씩 얹어져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중학교 졸업식 때 후회되는 일이 있다. 큰 대강당에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행사를 치르러 모여있었다. 졸업생들은 의자에 앉아있었고 개근상 수상자들은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축하받는 자리였다. 내 모습을 찍으려 카메라까지 챙겨오셨던 부모님은 개근상을 받았던 나를 찾으려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끝끝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상도 아닌 것에 축하받는 것이 부끄러워 일어나지 않았고 부모님은 나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아쉬워하셨다. 부모님은 생각도 안 나는 자그만 순간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순간이 미안하여 마음속에 남아있다.

 

준이로 작가는 과거로 돌아가 할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이곳에 남겼다.

 

 

 

"그래도 졸업식 올 거지?"

"할매가 온다면 내가 더 축하받는 기분일 것 같아."

"할매가 나를 이렇게 키워서, 내가 이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한 거잖아. 졸업식에서 자랑스러워해도 돼."

"잘 키워줘서 고마워 할매."

 

<나의 악당, 할머니>, 49~50p

 

 

과거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할매에게 학사모도 씌워주고 함께 사진을 찍고 할매를 함께 안고 학교를 한 바퀴 돌겠다고 한다. 생애 모든 졸업식에서 할매의 웃음을 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다음 생에엔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평생 소년만의 슈퍼 악당일 줄 알았던 할매는 점점 약하고 보살펴야 할 인간이 되어갔다. 가방공장과 식당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집안 살림을 하고, 가족을 키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할매의 무릎은 아파져왔고 손은 마비가 왔고 치매도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 심해진 손의 마비에 가위질조차 잘 못하게 되자 할매는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아이고... 이제 이런 것도 못하네. 빨리 죽어야 애들한테 짐이 안 되지. 이놈의 몸뚱이 빨리 죽어서 없어져야 해."

 

작가는 그때 생애 끝에 외롭게 서있는 할매를 봤다. 습관처럼 죽는다는 말을 하던 그녀의 말이 진심 어리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는 잽싸게 달려가 할매의 가위질을 도왔고 심하게 떨리는 할매의 손을 붙잡았다. 평생 따뜻한 말 안 했던 그가 할매를 꼭 안아주었다. 할매의 모든 슬픈 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질 거야. 할매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내가 할매 많이 사랑해. 그러니까 울지 마."

 

할매는 더욱 펑펑 울었고 한동안 그 둘은 그렇게 멈춰있었다. 할매가 가장 힘든 순간 그의 목에서 나온 첫마디는 "사랑해"였다. 살면서 할매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어리고 쓸모없을 시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던 준이로 작가는 이제 다시 할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다. 사랑은 아름답고, 강하고, 멋진 존재에서만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존재가 강자든, 약자든, 아름답던, 추하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할매를 꼬옥 안아주며 사랑한다 말했던 그 이야기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심지어 강하고 철인 같고, 가족들이 할매를 우러러봤을 때도 사랑한단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 나서 알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가장 그 사람이 추하고 보잘것없을 때에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추하고 쓸모없을 때,

 

그녀가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의 악당, 할머니>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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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에피소드가 하나씩 하나씩 쌓이면서 어느샌가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임에도 공감하며 읽었다는 리뷰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가 쓴 개인적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누구에게나 이런 존재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실오라기 하나 없이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아래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난다. 그들의 교육관과 그들의 말을 흡수하며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며 서로에게 미안함, 고마움, 사랑 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엮어간다. 관계와 성장은 누구에게나 있는 과정이었기에 이 책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 한 사람을 위한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이 책에서 공감을 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이유다.

 

결국 모든 답은 사랑인 것 같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인간의 삶은 반복된다. 내가 받아왔던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주고 떠나는 것. 그래서 세상에 사랑이 계속해서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 같았다. 필자도 훗날 누군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할머니 같은, 부모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악당, 할머니>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았다. 준이로 작가는 소년의 시선과 말투로 자신의 처절한 이야기들을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 필자는 좋은 글이란 쉬운 글이라고 쓴 적이 있다.

 

 

글은 애초에 잘 읽혀야 한다. 단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문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물 흐르듯 술술 읽히는 글. 이러한 글이 진정 쉬운,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 단순한 글은 쉬운 단어로 진리를 관통하며 간단한 문장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아트인사이트 Vol.3>, 34~35p

 

 

쉬운 언어와 간단한 표현들로 할매의 사랑과 한 아이의 성장이란 가치를 담았다. 소소한 재미와 쉬운 전개로 읽을 때는 금방 읽어버리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여운은 길었다.

 

가족의 사랑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책이다. 그리움이 있는 어른이 봐도 좋을 것 같고, 표지의 사진처럼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봐도 좋을 것 같다. 마음에 온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얇지만 강력한 준이로 작가의 에세이 <나의 악당, 할머니>를 추천한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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