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기혐오의 늪에서

글 입력 2022.03.2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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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살고 있는 집에 놀러 갔었다. 줄곧 시골에서 살아온 탓에 서울의 주공 아파트를 처음 보게 됐다. 모든 집의 모습이 층마다 동일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며 영화 ‘벌새(2018)’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주거 공간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몰개성화를 엿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야’ 등의 암시를 걸어보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어디서부터 고장 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고쳐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덕에 나도 사회적 인습에 따라 튀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독특하고 싶었고 ‘대체할 수 없는 나’가 되고 싶었다. ‘남들보다 잘 난 나’가 아닌 ‘남들과 다른 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천편일률적인 나에게 독자성과 개성을 살리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내 생각이 담긴 글, 내 개성이 담긴 글은 나만이 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몰개성 한 내가 쓰는 글은 특별함이 없었다. 그저 위선과 자기 표출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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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던 중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계셨다. 신호가 바뀌는 시간 동안이라도 그 아주머니와 같이 우산을 써야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비도 적게 오고 모자를 쓰고 계시니 괜찮을 거라는 합리화를 거듭했다. 아주머니는 처량해 보이셨고 횡단보도 건너편의 사람들은 나를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했다. 나는 비 맞는 이에게 선뜻 우산을 씌워줄 작은 용기가 없었다. ‘튀는 행동처럼 보이면 어쩌지, 괜히 오버하는 건 아닐까, 아주머니가 이상한 분이면 어쩌지’ 등의 말도 안 되는 망상들이 나를 뒤덮었다. 그러고 집에 와서 잠잠히 생각했다. ‘나는 과연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가?’하고.

 

나는 글쓰기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해왔고 때문에 약자를 도와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비 맞는 이에게 우산 하나 건넬 용기도 없는 지극히도 미천한 사람이었다. 내 안에 사랑도 없으면서 오만으로 가득한, 있어 보이는 생각들을 해 왔던 것이다. 내가 써왔던 글 모두 어딘가 표출하고 싶어 막 싸질러 놓은 배설물에 불과했다.

 

나는 영화 ‘목소리의 형태(2016)’의 주인공 이시다처럼 타인들을 대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타인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붙여져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삶에 개입할 용기가 없을뿐더러 무관심하다. 나의 마음과 행동은 지나치게 상이하다. 내 안에는 타인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 그전에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수업 중 교수님께서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쉰의 나이에도 자신의 꿈을 설레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가 부러웠다. 교수님이라면 목표를 이룰 거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스물셋의 나이에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사는 나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렇다 나는 초라하다. 타인과 비교하면 끊임없이 초라해지지만 비교는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무력하게 일어나며 ‘또 하루가 시작됐다’는 생각을 한다. 잠들기 전, SNS 속 남들의 멋진 모습을 부러워하고 ‘또 하루가 시작되겠네’ 생각하며 잠에 든다. 회피할 순 있어도 그 어떤 것들도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이미 겪었기에 알고 있는 수많은 보편타당한 진실(그렇게 보이는 것) 또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만히 있는 스스로가 미련하고 안쓰럽다. 내가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줄 용기와 사랑을 갖기 위해서, 다시 말해 글을 쓸 만한 사람이기 위해서, 그리하여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내가 되기 위해서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바뀌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이 글 또한 또 하나의 배설물이 될 뿐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다만 시선을 바꾸어 보면 배설물도 쌓이다보면 좋은 거름이 된다. 나는 내가 자기혐오를 이겨내고 분명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꽃이자 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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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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