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기록하는 사람 중에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청춘의 회고록
글 입력 2022.03.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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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세 가지를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바로 외칠 수 있다.

 

'일기'과 '사진', 그리고 '기록'이다. 고작 이 세 개의 단어들로 나는 짧디 짧은 나의 삶을 표현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어, 일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내게 닥친 어려운 일은 나를 괴롭히는 요소가 아니라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과 행복을 주는 조건이다. 인생은 수영이 아니라 서핑이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이 글들은 내 일기장 여백에 빼곡히 적힌 문장들 중 극히 일부이다. 이 문장들을 필사할 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감정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이 문장을 본 후 나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았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생긴 버릇이 있는데, 바로 일기를 쓰고 난 후 남은 공간에 꼭 파란색 볼펜으로 문장필사를 하는 것이다. SNS에서 보이는 감성적인 글귀, 신문 기사, 또는 좋아하는 시인이나 방송인들의 인터뷰를 발췌해 남는 부분에 적는 것이다. 독서를 즐기지만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에 일기장에 짧지만 강한 문장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는 문장수집가였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재수생활을 하던 심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난 닥치는 대로 문장들을 수집했다. 위기의 순간에는 말이 늘 간절하게 들렸다. 내 인생에 흡수할 가치가 있는 문장들을 모았고 그것의 수는 족히 삼백 개가 넘었다. 문자가 주는 힘은 매우 강했다. 문자를 적는 행위를 통해 그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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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면서 사람은 참 단속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분명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한 일이 있다고 일기장에 적어놨지만, 오늘 봤던 지난주에 내가 썼던 글은 마치 남의 글을 본 것 마냥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시간에 살고 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감정들을 갖고 있구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나는 일기를 통해 그 시절의 나를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도덕적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오만했던 그 시절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난 부분들을 인정할 용기가 생겼으며 다짐을 되새기고 나를 조금씩 천천히 되고 싶은 나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 시절의 내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그저 물 흐르듯 감정을 다 흘려보내면서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종종 생각을 해본다. 수험생 시절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일기장. 표지가 예뻐서 사두고 방치해둔 그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면. 그 손짓 하나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 고난이 나를 성찰의 길로 인도했다.

 

 

 

두 번째 단어, 사진


 

사진은 그야말로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다. 스무살부터 스물 둘이 된 지금까지, 어느덧 사진을 찍는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빠를 따라 간 동묘시장에서 산 작디 작은 5만원짜리 중고 필름카메라였다. 모델은 삼성 케녹스 Z130S였다. 그 카메라를 들고, 난 친구들과의 제주도 여행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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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의 묘미는 기다림이라는 것이었다. 28장 또는 36장까지 사진을 다 찍어야만 그 필름을 꺼내서 현상 스캔을 맡길 수 있고, 또 사진을 받을 때 까지의 그 기다림은 정말 짜릿하고 설레는 맛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찍었던 필름들을 기다리던 그 떨림과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진을 본 순간, 행복했던 여행 속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이미 여행을 갔다와서 현재를 살고 있는데.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사진 속의 시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순간을 멈춰서 영원히 기록한다는 것.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는 마법사가 된다. 사진이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 그저 취미가 아닌,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쉼터. 위축되고 뒤틀릴 때, 나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본다. 그럼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내가 멈춰놓은 시간들은 '나는 이렇게 멋있는 사진을 찍을 줄 아는 대단한 사람이다'하고 말해준다. 실제로 나는 반수를 하면서 가장 무너졌을 때, 내 사진들을 보고 다시 일어났다. 기분이 이상했다.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 다시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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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해가는 빛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단 한걸음도 뗄 수 없었고 그 자리에 서서 각자의 노을을 프레임에 담을 뿐이었다. 모네는 빛과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그 순간의 인상을 담아내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같은 그림을 몇 번이고 그렸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다른 그림이었다. 모네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던 걸까. 이 빛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붓을 들었던 걸까. 나도 이 순간을, 지금 이 파도에 부서지는 별들을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 2021년 6월 30일

  

사진은 실제로 나의 삶을 영화로 바꿔놓았다. 이젠 사진을 찍기 위해 사는 삶인 것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내고, 여행을 가고. 내가 또래보다 조금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사진을 찍어서일지도 모른다. 이젠 그저 취미가 아닌 나의 습관이다. 아무래도 평생 함께할 습관일 것 같다.

 

 

 

세 번째 단어, 기록


 

앞서 말한 일기와 사진은 어떻게보면 기록을 하는 행위에 포함된다. 그렇다. 나는 기록을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기록하고, 지난 날의 과거를 되새기며 얻게 된 깨달음을 토대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을 대하는 나만의 자세다. 기록을 통해 성장을 한다는 것, 내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 그 짜릿하고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 이후부터, 나는 그 어떤 순간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록은 나의 삶이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명확하게 제시된 바가 없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삶이 어려워 방황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난 물론 어리다. 그렇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면 뭔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세월의 변화로 주름진 엄마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겠지만, 그래도 난 그게 좋다. 태어났을 때부터 삶의 목적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난 그냥 잉태되어 세상에 나왔고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일뿐이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생각들, 내 걸음걸이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이루어 내 인생이 되겠지. 그럴수록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말들로 나를 이루어 결국엔 내 인생은 사랑이 가득 넘쳤으면 좋겠다. 차분하게 사랑하고, 양가감정 없이 신뢰하고, 자기 조롱 없이 소망하며, 용기 있게 행동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될 것이다. 단순하게 태어나서 사는 삶 말고, 기록를 통해 나의 신념을 세우고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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