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리통이 알려준 선의 법칙

처음으로 응급실에 가다
글 입력 2022.03.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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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나를 장악하는 고통의 수렁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택시에 모로 누워 눈물을 쏟으며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도와주세요. 이제 그만 두세요. 정체 모를 신에게 기도하면, 병원까지 몇 분이 남았냐고 기사님에게 유난을 떨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러 참을 수 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랫배를 부여잡고 택시에서 내린다. 시야가 아득하다. 찬바람에 실려 온 알코올 냄새가 코끝에 번진다. 병원에서만 맡을 수 있는 고통의 체취다. 사람들 몇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지만, 각자의 고통에 심취해 있는 그들에게 옆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응급실에는 남은 침대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장의자에 눕듯이 기대앉는다.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할 만한 시련이 닥쳐오고 있음을 느낀다. 몸속에 잠들어 있던 고통의 뿌리가 깨어나 요란스럽게 온몸을 휘젓는다. 고통의 줄기가 심장을 따라 턱 끝까지 자란다. 장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누인다. 숨이 턱 막힐 만한 고통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넘실넘실 고여 있다. 여전히 신에게 도와주시라 기도한다.

 

유대인 가족들은 식구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환자에게 다른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그의 정체성을 바꿔, 악의를 품고 그를 찾아온 초자연적인 불청객을 속이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정체 모를 신은 그 정도 아픔으로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내가 괘씸하다며 더 큰 고통을 주고 떠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읊조리는 것이다.

 

죄송하다고 말을 내뱉고 나면 내가 지은 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는 나의 무심함으로 동거인에게 전염병을 옮겼고, 우리 집 반려 화분 율마에게 이틀째 물을 주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반복 재생되는 기부 독려 영상을 5초 만에 가차 없이 넘겨 버렸고, 지하철 노숙인 할아버지를 보며 내가 느끼는 안도감이 역겨워 그를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나는 죄가 많다. 지금은 죄를 고백하며 같잖은 위안을 얻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무고하게 아픈 이들의 병까지 ‘벌’로 만들고 있지 않나. 하지만 나는 아플 때마다 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정답처럼 느껴진다. 혼자 버려져 지옥 불에 떨어진 것처럼 내 상태는 끔찍하게 고통스럽다.

 

10분은 족히 흘렀는데도 응급실에는 침대가 나지 않는다. 저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아픈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을까.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옆으로 의사가 다가온다.

 

환자분은 기도 삽관을 하셔야 해요. 병상이 나는대로 중환자실로 옮겨 가실 거예요.

 

환자는 여자의 아버지일까. 혹은 어머니일까. 그도 아니면 반려자 혹은 친구일까. 나는 그녀가 나를 얄밉게 쳐다볼 것만 같아 흘러나오는 신음을 잠재우려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나를 괴롭히고, 신음이라도 흘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문득 나는 그녀의 가지런히 모은 다리를 베고 눕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낑낑거리며 울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자와 같이 울고 싶다고 생각한다.


몇 분쯤 더 흘렀을까 의사가 이번에는 나에게 다가온다.

 

여기가 대학병원이라서요, 진통제만 처방받아도 가격이 높아요.

(낑낑대며 그를 올려본다) 얼마인가요?

10만 원 나오세요.

(10만 원과 고통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다) 10만 원은… 그건 너무 비싸요.

그럼 약을 드세요. 타이레놀 같은 거 말고 꼭 이지엔을 사드세요.

 

의사는 다시 자동문을 열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집 옆 건물 1층에 있는 오뎅바에 자주 갔다. 새벽 한 시쯤 내가 잠든 틈을 타 조용히 나갔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내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어머니는 내 침대로 다가와 비밀스럽게 말하곤 했다.

 

엄마랑 아빠는 착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오뎅바에 가서 작당 모의 하듯이 나누는 착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도 나는 늘 죄를 짓는 사악한 아이였는데 어른들이라면 정녕 착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비밀 이야기를 나누어 듣고 싶어서 창문을 열고 오뎅바로 들어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가만 응시하곤 했다.

 

나는 어른이 되고 미디어에서 선함(혹은 사려 깊음)의 이미지를 습득해 채식하고, 노동 인권 시위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슬픈 사람들을 대신하여 분노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나의 태생적 위악을 감추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나는 점점 일그러지고 위선적인 그냥 어른이 되었고, 착한 이야기라는 허위에 둘러싸인 인간의 참모습을 일상적으로 마주하였다.

 

장의자에 누워 있는 나에게 응급실 경비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는 누워 있는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인 뒤 아주 다정한 말투로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그만 나가야 해요.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나의 고통을 진득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비밀 이야기를 엿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념하고, 비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의 흔독한 눈빛을 오래오래 기억할 터였다.

 

오늘 낮에는 도서관에서 그 할아버지를 봤다. 그 할아버지는 언제나 자료실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내가 책을 빌리고 도서관에서 나올 무렵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탔고, 나는 왠지 그가 무서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나보다 먼저 내려온 그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 있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종이컵을 이리저리 들어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비밀스러운 행동의 의도가 궁금했고, 그 비밀을 파헤쳐 보기라도 할 요량으로 그의 뒤에 멀찍이 서 있었다. 그는 종이컵 여러 개에 담긴 이물질을 한 개의 컵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물질이 모인 컵 하나만 손에 쥐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남은 한 손은 나팔나팔 흔들며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는 다만 더러워진 공중전화 부스를 정리하고 싶었을 뿐인지 몰랐다.

 

세상에 착한 이야기의 비밀 따위는 없었다. 다만 작당 모의처럼 지밀하게 주고받는 하루의 민낯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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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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