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는, I-DLE : 'TOMBOY' [음악]

그 누구도, 어떤 기준도 나를 맞출 수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글 입력 2022.03.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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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던 (여자)아이들이(이하 아이들) 첫 번째 정규 앨범과 함께 돌아왔다. 아이들은 'LATATA'로 데뷔한 이래 이별의 정서를 서늘하게 풀어낸 '한(一)',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Senorita', 불온한 악마와 천사를 연상시키는 'Oh my god', 불길처럼 피어오르는 사랑의 아픔을 표현한 '화(火花)' 등 강렬한 콘셉트를 통해 독보적인 그룹 색을 만들어왔다.


지난 14일 발매된 정규 1집 [I NEVER DIE]는 멤버들이 전곡 작곡, 작사에 참여했으며 락, 댄스, 힙합,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한데 담아낸 앨범이다. 아이들은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이라는 장르를 계속해서 개척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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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얘기를 하기에 앞서, 아이들이 어떤 팀인지부터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룹명 아이들(I-DLE)’은 ‘아이(I)’와 복수 접미사 ‘-들’의 합성어로, 저마다의 매력과 개성을 지닌 멤버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룬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아이들의 음악 세계에서 대문자 ‘I’는 나이자, 우리의 시작으로서 매우 주요하게 다뤄진다. 아이들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I AM],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해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을 무한히 넓혔던 [I made],나 자신을 믿기에 세상에 당당하다는 [I TRUST], 상처받은 나를 불태움으로써, 새롭게 꽃피우는 [I burn]까지 이들에게 ‘나’는 아이(I)-들(DLE) 개개인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멤버 전원을 대변하는 주체다.


아이들은 이번 앨범 [I NEVER DIE]에서도 ‘나’를 전면에 내세운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앨범명은 화火가 남긴 재를 거름 삼아 다시 화花로 태어났던 [I burn]의 연장선상이자, 6인조에서 5인조가 된 아이들의 현 상황을 비유하는 것처럼 읽힌다. [I NEVER DIE]는 자신을 버티게 만드는 내적인 각오인 동시에, ‘나’를 해치려 드는 모든 것에 대항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01. TOMBOY 

‘그 누구도, 어떤 기준도 나를 맞출 수 없다. 나는 나일 뿐이다.’


02. 말리지 마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다. 후회도 내 몫이다.’


03. VILLAIN DIES

'마지막 그날, 우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07. LIAR 

‘내 안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여주지 않았을 뿐, 사실 난 변한 게 아니다.’


08. MY BAG

‘이 가방 안에는 5개의 붉은색 다이아몬드가 있다’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들의 손으로 써내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언제나 명료하다. 앨범을 관통하는 확고한 태도는 개별 곡 소개를 통해 구체화된다. 나는 나라는 것.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까지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 우문에 아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현답을 내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집요한 메시지는 "누가 뭐 겁나"라고 외쳤던 [I am]부터, "넌 못 감당해 날"이라고 말하는 [I NEVER DIE]까지 계속된다.

 



 

 

‘TOMBOY’는 타이틀답게 앨범이 품은 메시지가 가장 과감하고, 강렬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톰보이는 본래 ‘남자’ 같은 여자아이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들은 주로 짧은 머리(숏컷), 바지 등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차림을 하며, 축구처럼 남자아이들이나 즐길 법한 놀이를 하고, 여자아이보다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톰보이를 연상시키는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긴 머리, 네일아트, 짙은 화장, 크롭티 등 전형적인 톰보이와는 오히려 거리가 먼 차림새를 하고 있다. 톰보이라는 이름을 빌렸을 뿐 –혹은 빼앗았을 뿐–, 보여주는 것은 걸크러시와 별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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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비는 이러한 역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 얼개를 살펴보자. 우선, 다섯 명의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고, 트렁크 문이 닫기며 튀긴 피로 만들어진 ‘TOMBOY’ 로고가 나온다. 내리깐 그들의 시선에서 트렁크 안에 무언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민니는 분홍색 총으로 누군가의 사진 주변을 쏘고, 미연은 실종 포스터 사이에서 수상쩍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우기와 슈화는 뮤비 초반에 나온 빨간색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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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에서 이들이 꾸미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소연은 랩을 하다 냉장고에 나이프를 던지는데, 이때 문에 붙어있는 VENGENCE CAKE 레시피가 클로즈업된다. 이 복수 케이크에는 재료료 '1 EX Boyfriend'가 들어간다고 나와있다. 소연은 바비 인형 사이에 앉아있는 전 애인을 집어 들어 믹서기에 갈아버리고, 케이크를 완성시킨다.


아이들은 "사랑 그깟 거 따위 내 눈에 눈물 한 방울 어림없"다고 말하지만, 복수를 위해서는 "미친-연"이 되기를 꺼리지 않는다. 도대체 전 남자친구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요구하는 게 많은 인간이었나보다. 네가 원하는 "blond barbie doll"이 될 바에야 '여자'답지 않은 "fuxxin tomboy"가 되겠다고 외치게 만드니 말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욕망하지 않는 남자 욕하기’는 사실 케이팝에서 흔한 주제다. 바람핀 남자친구에게 "더 멋진 내가 되는 날 갚아주겠"(소녀시대, Run Devil Run)다며 경고하거나, "너 같은 남잔 이 세상에 깔렸"(2NE1, Hate you)다며 까거나, 복수하는(전소미, XOXO)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숱하다. 상대가 떠나간 후 보란 듯 미친 여자가 되거나(선미, 가시나), 피자배달부로 표상된 남자를 가지고 놀면서 주체와 대상을 뒤바꾸는 것(레드벨벳, 피카부) 또한 낯설지 않다.


사랑을 통한 주체성 획득은 어느덧 입체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 '주류'가 됐다. 영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파격적이지도 않다. 편견을 깨부수는 무기로 사용하기에는 이미 날이 무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남자 바비 인형을 갈거나, 매다는 장면들은 그 섬뜩함과 별개로 이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뻔해진다.


그러나 “편견이란 답답한 우리”(LION)를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왕국에서 왕좌를 쟁취한 아이들이, 'PRODUCE101'과 '언프리티랩스타'를 거친 소연이 이를 정말 몰랐을까? 아이들이 여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이 평범하디 평범한 로맨스릴러 영상물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I don’t wanna play this ping pong

I would rather film a TikTok

Your mom raised you as a prince

But this is queendom, right?

I like a dancing, I love ma friends

Sometimes we swear without cigarettes

I like to eh, on drinking whiskey

I won’t change it, what the hell?

 

 

표면적인 복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물러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면, 영어라 무심코 흘려 들었던 랩 가사가 귀에 꽂힌다. 'your mom raised you as a prince, But this is queendom'이라는 가사도 인상깊지만, 볼드를 넣은 부분이 특히 재미있게 다가왔다. 소연은 담배와 술 등 '여자'아이돌에게 금기시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동시에, 여자'아이돌'의 일이라 여겨지는 틱톡이나 춤을 언급한다.


여자아이돌은 대상화에 쉽게 노출되는 직업 특성상 주체적인 여성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사자에게 있어 분명히 양립할 수 있는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모순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뮤직비디오 속 아이들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동시에, 여자 아이돌로 소비되기 위한 '코르셋'을 벗지 못한 아이돌로 남는다. 양측의 시선을 두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를 수는 없다. 하나의 주장이 다른 하나의 주장을 완전히 반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소연의 랩 가사는 아이들이 깨부수고자 하는 편견이 그들이 현재 속한 (여자)아이돌이라는 복합적인 위치를 향한 것임을 뒷받침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바지를 입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머리를 기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이돌이라는 직업 자체가 여성 인권을 하락시키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 아이돌은 어떠해야 한다는 이 모든 평가 기준은 아이들을 편견에서 벗어나게 만들기는 커녕, '여돌'이라는 틀 안에 가둔 채 또 다른 선입견을 만든다. 그들을 향해 소연은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을 나열하며, 무엇도 바꾸지 않겠다 말한다.


소연은 케이크를 완성시킨 후, 어이없게도 쓰러지고 만다. 관객석에 앉아있던 슈화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티켓을 찢어버린다. 우리가 여태 본 뮤직비디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멤버들을 캐스팅해 찍은 영화였다. 민니가 총을 쏠 때 팝콘과 콜라가 터진다든가.


우리가 여태 보았던 뮤직 비디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멤버들을 캐스팅해 찍은 영화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차에서 내린 장소가 극장 앞이고, 민니가 총을 쏠 때 팝콘과 콜라가 터졌기 때문에 이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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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는 영화라는 결말로 끝나지만, 그 속에서 실종되어 있던 'G'는 현실로 넘어와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 'G'는 Guy의 이니셜로 전 애인의 이름이면서, (G)-IDLE의 Girl을 뜻하기도 한다. 즉, 남자 바비는 전 애인의 탈을 뒤집어 쓴, 아이들이 맞서고자 하는 편견 그 자체다.


[I NEVER DIE} 프로모션 내내 아이들의 그룹명은 (G)-IDLE에서 G가 빠진 ( )-IDLE로 기재되었다. 포스터 속 흔적만 남은 'G'는 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 겸 결과다. 또한, '아이들'만으로는 검색이 어려워 붙였다고 추측되는 수식어를 뗌으로써, 그룹명에 고유명사로서의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까지 쓴 후 다시 ‘TOMBOY’라는 제목과 아이들의 모습을 살핀다.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봤을 때, 톰보이는 전형적인 여성/남성상을 탈피하는 전복의 언어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톰보이가 본래의 의미대로 사용될 수 없는 이미지를 그려냄으로써, 그 말에 담긴 이분법적인 사고에 혼란을 주고자 한 게 아닐까. "It's neither man nor woman Just me, I-DLE"이라고.


내가 나일 수 없도록 만드는 편견 앞에서 아이들은 결코 물러나지 않고, 이렇게 외친다.

 

I NEVER DIE.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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