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도서]

글 입력 2022.03.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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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왕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 것이라면, 입맛에 맞는 재미있는 소설이나 세계 문학 전집, 또는 지식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정보성 책들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그런 편향된 독서만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이요, 지당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여겼다.

 

한때는 자기계발서조차 끔찍이 멀리했던 사람으로서 뻔하디뻔한 위로와 교훈의 말을 세상의 진리인 양 포장해 내세우는 책들만 봐도 절로 신물이 나고, 얄궂은 심술이 솟았다. 작가의 인생관이나 개인적 경험을 담은 에세이도 이와 비슷하리라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평소 좋아하는 작가 혹은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이들이 꾸준히 펴내는 에세이를 여럿 읽으며 그 잘못된 편견과 아집의 시선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에세이와 산문집의 세계는 예상보다도 훨씬 무궁무진했다. 제목만 발견했다 치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읽어버리고 싶은 [아무튼 시리즈]부터 세상의 온갖 대상을 주제로 작가 개인의 소신과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의 세계는 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의 지대와 같았다. 이 출구 없는 늪지대 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나는 이제 에세이 없는 독서 생활을 여간 상상하기가 힘들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도 하던가.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것은 결국 에세이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한 개인의 내밀한 세계관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일과 같아서일 테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온갖 양질의 정보를 떠먹여 주는 정보성 책들보다도 에세이나 산문집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라든가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나아가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절로 ‘사람 온기’가 전해지기 마련인데, 이는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온기가 유난히 활활 타오르는 책들이 더러 있다. 읽는 이의 마음속까지 뜨겁게 감싸 안는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는 새에 작가가 지닌 삶의 자세까지 비로소 배우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내게는 유지혜 작가의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이하 '미워하는 마음 없이')라는 책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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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유지혜 작가의 에세이이다. 240페이지에 달하는 다소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깊이는 얕지 않다. 과장하지 않고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의 소박함과 쉽게 읽히면서도 어딘가 확고함이 느껴지는 작가의 뚜렷한 문체가 좋았다. 그가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좋았다. 책에서 공감하고 싶은 대목이 많았던 만큼, 작가의 남다른 사유와 시선을 하나하나 깨우쳐가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를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작가와 같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타인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과 세상을 향한 믿음, 신뢰, 그리고 다정을 배우고 싶었다. 세상을 향한 다정, 타인을 향한 다정, 그리고 삶을 향한 다정. 그 모든 다정의 힘이 작가의 글로부터 고스란히 뻗어져 나와 나의 마음을 덥혔다.


나긋한 기운이 도는 문장력에 몸을 내맡기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책 속 키워드를 뽑아 나의 경험과 연결 짓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1. 몰두의 눈빛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정말 눈부시게 빛난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작가가 피아노를 배우며 그에게 열정적으로 수업을 가르치는 스승을 가리켜 언급한 말이다. 나 역시도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의 눈빛을 좋아한다. 아니, 이 눈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긴 할까?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몰두의 눈빛은 꼭 유명인사들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영화제에 갈 때마다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눈빛이기도 하다. 그것은 관객들에게서 뿜어나오는 호기심의 눈빛이기도 하고,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영화 제작자들의 설렘 가득한 눈빛이기도 하며 곧 서로를 마주하는 소통의 눈빛이기도 하다. 나는 그 눈빛들이 은밀하게 감도는 영화제 특유의 공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속하기는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일념 하나로 기꺼이 영화제를 찾는 그 무해한 마음들에 속절없이 끌리곤 하는 것이다. 치열하게 티켓 예매를 하고, 취소 표를 사수하고, 날짜에 맞춰 극장을 방문하고, GV까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며 감독님과 직접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그 모든 지고의 과정과 순간과 마음들이 한데 모여 영화제의 눈빛을 만들어낸다.


축제의 규모와 상관없이 관객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영화제의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정말 눈부시게 빛나고,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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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당시 친구와 함께 영화의 전당 쉼터에서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별안간 ‘우리 뒤쪽에 감독님 두 분이 앉아있어’라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두 감독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친구는 그날 관람한 단편작들 GV에서 두 감독님을 보았다고 답해왔다. (영화제에서는 보통 국가나 주제별 단편들을 한데 묶어 한 타임에 상영한다) 친구는 내게 관람 단편들에 대한 짤막한 줄거리를 설명해주며 영화도, GV도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당시 친구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이었고, 첫 방문을 기념해 나름의 추억거리를 하나 더 만들고 가면 좋지 않나 싶어 감독님들께 슬쩍 말을 걸어보라 했다. 망설이던 친구는 계속되는 나의 등 떠밂에 곧 용기 있게 말을 걸었다. 비록 두 감독님과 우리의 모국어가 모두 제각각이었던지라 급히 파파고 번역기를 켜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을 뿐이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결국에 친구는 영화표에 사인을 받았고 –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 내가 영화제에서 항상 네임펜을 챙겨 들고 다녔기 때문에 수월하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 두 감독님과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사실 그날 일정대로라면 우리는 쉼터에 있을 시간에 해운대 주변에서 저녁을 먹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제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예상치 못한 비가 폭풍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영화의 전당 건물 내부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만일 그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친구는 두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을 테고, 해당 단편작과 GV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뒤쪽에 앉은 두 감독님을 알아보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변수가 아니냐는 생각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참으로 기이하고 신기한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날 밤의 우중충한 날씨와 습기, 두 감독님과의 온기 가득한 만남을 기억한다.


 

 

2. 순간 포착


 

 

최악은 사진을 찍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를 기다리게 했다. 서로가 원하는 포즈로, 서로가 원하는 구도를 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모든 착오를 추억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달픈 비하인드 신이었다.


순간을 포착하려는 지독한 시도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고유한 매력마저 없애버렸다. 행복은 낚아채 자랑하려는 순간 멎어버렸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특별함을 공유하려는 시대. 그 프레임 안에서 우리의 모습은 완벽하다. 타인을 의식한 행복이 어디까지가 가짜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자주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습관적인 사진 찍기를 포기했다. 나 혼자 뒤처져 무언가를 놓칠까 불안했지만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순간 속에 머물렀다. 찍어서 소유하는 것보다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떤 야경과 어떤 울음, 어떤 시간들, 더 잘 보고 더 잘 기억하기. 찍히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 순간순간이 모이자 삶은 더욱 비밀스러웠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예전보다 카메라를 드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나로서는 작가의 말에 공감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일명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는 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고,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는 서로의 사진을 원하는 구도로 찍어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한 번은 가장 친한 친구와 해외로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지금도 그곳에서 우리가 흘려보낸 시간을 이따금 떠올린다.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에 굳이 찾아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가고 싶었던 곳만을 원 없이 눈에 담고 올걸, 하는 후회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결국에 여행 사진은 몇 년에 한 번씩 사진첩을 정리할 때에야 스치듯 훑어볼 뿐인데.


생각해보면 친구와 여행 이야기를 나눌 때도 당시의 사진을 굳이 찾아보기보다는 기억 속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때 우리가 그렇게 무모했네, 하며 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식이 아니던가. 여행지에서 느낀 그 모든 추억과 전율의 감정은 우리의 몸을 떠나지 않으며 언제나처럼 기억 끄트머리에 굳건히 자리 잡는다는 것을 왜 진작에 깨닫지 못했는지, 돌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번에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제는 오감으로 여행지를 맛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마주하며 야무지게 여행을 즐기고 오리라, 다짐하는 요즘이다. 여전히 사진으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곤 하지만, 이제 사진 속에 담기는 것은 내가 아닌 그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저자의 말대로 찍히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 순간순간이 모이자 삶은 더욱 비밀스러웠다.

 

 

 

3. 감탄과 절망의 독서




책들 앞에서 나는 더러 울기도 했다. 독서는 내게 감탄과 절망을 반반씩 주었다. 나를 작아지게 했고 허접한 사유를 들통나게 했다. 부족함을 직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처절했다. 그럼에도 읽는 일은 나를 쓰게 만들었다. 다른 글을 질투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은 책을 쓰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과 절망을 반반씩 느꼈다. 작가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가님처럼 나만의 확실한 문체를 갖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질투와 더불어 아직은 그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불안감과 절망이 나를 뒤덮었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이토록 따뜻하게 머금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감탄과 희망의 마음이 일었다. 불안과 희망, 감탄과 절망이 뒤섞인 희비를 선사하면서도 이 책은 결국 내가 글을 쓰게 만들었다. 작가의 말마따나 타인의 글을 질투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은 글의 첫머리를 떼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읽는 만큼 전혀 몰랐던 세계를 배우게 되어 조바심이 났다. 책의 세계는 무한했다. 그러나 탁월한 책들을 더 일찍 읽지 못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나의 때가 단지 지금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조앤 디디온과 도리스 레싱을 학생 때 읽었다면 그 감동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좋은 책을 만나는 때는 분명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후회하는 대신 서둘러 카뮈와 한트케를 읽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음에 안도하면서.


돌아보니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 때, 그 책을 이미 읽은 사람보다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을 더 부러워했다. 책이 너무 좋으면 시간을 되돌려 그 책을 처음 느낌 그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가끔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아껴서 읽고 싶은 책.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책들을 꾸준히 만나다 보면 나도 언젠가 그런 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내게 있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해당 장을 포함하여 『미워하는 마음 없이』 전반에 걸쳐 책을 향한 작가의 열렬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가끔은 그런 순간을 만난다.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 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지는 순간. 그러고선 나와 비슷한 취향은 가진 이들에게 스리슬쩍 해당 책을 추천하거나 선물로 건네고는 하는 것이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음 깊이 와닿는 책을 발견할 때면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그 여운에 푹 잠겨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손바닥만 한 책 한 권으로 일주일 치 이상의 행복을 얻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에서 유지혜 작가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언급하며 거듭 찬미하듯이 내게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가 대표적이다. 좋아하는 작가인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 “이 소설은 박상영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을 바꿀 것이다”를 어디선가 읽고 스치듯 집어 든 책이었는데 근래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좋았다. 400페이지가 넘는 다소 두꺼운 분량임에도 하루 만에 완독해버리고는 일주일 이상을 책 속의 여운에 잠겨 살았다.


더불어 다시금 그 여운에 흠뻑 젖어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빼놓을 수 없다. 『밝은 밤』은 가족과 목포 여행을 떠났을 때 기차 안에서, 숙소에서, 그리고 여행지에서 틈틈이 읽었던 책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책의 막바지를 읽으며 얼마나 울음을 참았는지 모른다. 결국, 활자 위로 쏟아질 듯한 눈물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을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며 남모르게 펑펑 눈물을 흘렸지만. 그날의 아득한 여운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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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드미트리 글루코프스키의 『메트로 2033』을 가장 좋아한다. 앞서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정세랑 작가의 추천으로, 『밝은 밤』은 엄마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라면, 『메트로 2033』은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친구는 오래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느껴질 만큼 (실제로 같은 동네에 산다) 문화예술에 대한 취향이 나와 무척이나 비슷한 대학 동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메트로 2033』은 대쪽같은 취향이 늘 맞아떨어지는 친구의 인생 책으로 추천받아 읽게 된 책이다.


추천을 받고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책을 펼쳐 든 것은, 600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두꺼운 분량을 보고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할 무렵 나는 첫 장에서부터 친구가 이 책을 향해 쏟아낸 온갖 찬사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2033년 핵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하고, 지상에서 더는 인간이 살 수 없게 되며 그로 인해 각 지하철역이 작은 국가 혹은 소도시가 되었다는 이 기상천외한 디스토피아적 설정은 나를 단번에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학창시절에 『메트로 2033』을 처음 접했다던 그 친구는 이 책을 자신의 바이블 삼아 무려 수능 날까지 시험장에 들고 갔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메트로 2033』과 후속작 메트로 시리즈까지 섭렵한 현재에 와서는 친구의 마음을 백번 천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 말이다. 까무잡잡한 표지에 깔끔한 배경, 오묘한 초록빛을 띤 제목이 무릇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경전을 생각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게 있어 인생 바이블까진 아니더라도 『메트로 2033』이 지금껏 읽은 SF 소설 중 전대미문의 최고작이라는 데는 여지없이 동의한다.


 

 

4. 감사하기에 헤픈 사람



 

그때부터 넓은 거실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 집이 없는 사람을 생각했다. 방이 없는 사람을 생각했다. 형제가 없었기에 내게는 거실 없는 집에서도 늘 작은 방 한 칸이 주어졌다. 나는 형편없이 낡고, 지나치게 아늑한 내 방을 증오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곳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다. 미움은 무관심보다 훨씬 더 사랑에 가깝다. 미움이라는 끈으로 어떻게든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


저자는 행복 회로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소개했다. 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단련하는 방법에는 적절한 운동하기, 수면의 질 높이기, 결정 내리기, 좋은 습관 들이기 등이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감사하기’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


그때부터 나는 감사하기에 헤픈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감사하기에 헤픈 사람’이라니. 한동안 감사하는 것 자체를 잊고 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시의 깨달음은 무릇 나도 감사하기에 헤픈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했다. 말마따나 나의 일상에는 하루에도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안락한 집이 있고, 원하는 만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양껏 배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안락처가 있음에도 넓은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SNS로 엄청난 규모의 자택에 사는 지인의 일상을 접하며 나는 자꾸만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집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리고 방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매일같이 무방비한 폭격에 노출되는 사람들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자국을 떠나 난민이 된 이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세계의 이면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집을 잃고, 생사가 걸린 갈림길을 오가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 고작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 때문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이 조금 더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나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의식적으로라도 행하려 노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감사하기에 헤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날을 반추하고, 그간의 행적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온기와 다정을 품을 수 있는 세상을 기다린다.


 

 

6. 손편지



 

어른이 되고서도 종종 손편지를 썼다. 편지는 어떤 수단보다 효과적으로 나의 진심을 후원했다. 약간의 불편, 약간의 결심, 약간의 부지런함만으로. 손에 쥐고 만질 수 있는 글씨만이 가진 풋풋한 뉘앙스가 있었다. 편지는 택배와는 달리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없다는 점도 좋았다. 꼼수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심지어 도착이 보장되지도 않는 일반우편은 모든 것이 추적 가능한 이 시대에 남은 불친절한 낭만이다. 그 대신 1~2주의 기다림 끝에 우편함에 꽂힌 종이봉투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


나는 선물을 받을 때조차 그 안에 함께 담겨 있을 편지를 더 기대했다. 달콤한 연락을 주고받은 후 그 상대가 보내온 선물을 열어보았을 때 작은 쪽지라도 없으면 크게 실망하곤 했다. 혹여나 편지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싶어 선물 상자를 뒤집어 탈탈 털어보았던 적도 있다. 편지가 없는 선물은, 대화체가 빠진 소설과도 같다. 영 심심하고, 막연하고 조금은 서운한 것이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아마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손편지를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고백일 것이다. 작가는 여전히 친구들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곤 한다며 편지 내용 일부를 책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활자로 인쇄되기 이전, 편지지 위에 쓰였을 정갈한 손글씨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편지 쓴 지가 대체 언제더라.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 가족들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편지를 언제 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보편화되면서 건네고 싶은 축하의 말도 메신저로 함께 건네고 나면 끝이니, 근래 손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어졌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손편지를 향한 작가의 사랑 고백을 읽고 나니 오래 적의 어느 지점에서부터 멈춰버린 아날로그의 손편지가 다시 쓰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올해 급히 추가한 목표가 바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편지쓰기’이다. 벌써 두 달이나 밀려 3월에는 편지를 3개나 써야 할 듯싶지만, 벌써부터 건네주고 싶은 이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건 괜한 의욕 탓일까? 이미 편지지는 몇 개나 쟁여두었으니 아무래도 좋다. 특별히 미안함을 전하고픈 사람, 친한 친구, 그리고 생일을 맞이한 지인에게 봄을 맞아 내밀한 사랑을 담은 손편지를 차례차례 건네고 싶다.

  

*

 

순간을 즐기기, 감사하기에 헤프기, 손편지를 시작으로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을 내 안에서 차근차근 늘려가고 싶다. 작가의 온기를 빌려 사랑의 조각조각을 모아 언젠가는 사랑이 넘치도록 흐르는 다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났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불평을 줄이고 감사를 연습하다 보니 사랑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들을 사랑하는 게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해졌다. 그런 나의 마음은 주변 친구들에게도 쉽게 번졌다. 사랑하면 모든 게 쉬워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열다섯 살. 그때부터 절실한 믿음을 갖게 됐다. ‘우리’에 대한 믿음, 세상에 대한 믿음, 사랑으로 세상과 사람을 달리 보는 눈빛의 믿음. 내게 사랑은 은유가 아니라 본능이고 직관이었다. (...)


나는 사랑을 믿는다. 사랑의 전망은 앞으로도 밝을 것이다. 사랑은 내 평생의 유행이다.


- 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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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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