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자랐을까요?

글 입력 2022.03.1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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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이 되는 첫 시작점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다. 갖고 싶다고 다 내 것이 될 수 없고, 포기하고 단념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오 년 동안 꽤 자주 연습해 왔던 것 같다. 그럴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가끔은 깨달음의 시작이 늦게 찾아왔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몸은 자랐어도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오히려 더 많은 예시와 비교 대상을 세워 둔 채로, 모 아니면 도라는―유치하기 짝이 없는―극단적인 기준선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도망 다녔다. 어쩌면 늦은 성장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은 분명히 유복했다. 마음이 유복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의 순서가 다른 시기였을 뿐 더러, 그다지 거대한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실패하는 일도 적었고,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살고 있는 세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좁았기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 결과가 생각보다 많으며 요행만으로 잘되는 일도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꼭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세상이 흘러간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신이 나의 편은 아닌 것 같다며 불신하면서도 무력한 기도를 계속하곤 했다. 잘해보고 싶었으나 잘되지 않았다. 세상의 가차 없음 앞에서 상처받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시 회수할 수는 없으니 이미 부어버린 마음을 아까워하지 않고 쿨하게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한다고 열심히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자동으로 작동되는 것이어서, 아무리 초연하려고 노력해도 온통 헤집어진 속은 추하게 일그러지기 마련이었다.

 

분명히 자랐다. 돌아보니 고대한 만큼,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자라 있었다. 후회하는 순간이 많아졌고,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으며, 고집스러웠던 철칙을 꺾는 일이 종종 생겼다. 매번 넘어지는 연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파악해가면서 나이를 먹었다. 떨쳐내지 못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분기마다 일종의 해방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매끈한 삶을 갈망하며 빳빳한 부분을 길들였다. 열렬히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다가도 피터팬을 꿈꾸는 바보가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바보임을 인정하는 일이 기꺼워졌다. 모순을 가지지 않은 존재만큼 모순적인 것은 없으니까. (“원래 그래. a였다가도 b가 되고, b였다가도 a가 되고 다 그러는 거지. 자연스러운 거야. 우리는 변화를 기다리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동경하니까.”)

 

*

 

그렇게 나는 성장과 정체를 함께 품은 채로 많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다. 난데없이 실종된 것을 애도하고 빈번한 죽음을 먹으면서 아침을 맞았다. 견딜 수 없을 때는 방랑이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혼잡한 곳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축복 속에서, 견뎌야 할 것은 가져가고 집착하게 되는 것은 버리는 연습을 했다. 이방의 냄새가 나는 물줄기 앞에 어린 나를 너무 많이 두고 왔다.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관광객들처럼, 자신을 던지며 다음에는 동일한 이유로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설령 또다시 이 병을 앓게 되더라도 더 빨리 일어날 수 있기를.

 

방랑기를 끝내고 정착을 시작했을 때부터는, 기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생겨서 나는 계속 제단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절망하거나 삶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변치 않고 남아있는 것들에 시선을 두고, 애틋함이 차오를 때마다 아낌없이 표현하려 노력했다. 끈질기게 나를 포기하지 않는 손들은 내가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무덤 앞에서 뒹굴고 노래 부르며, 행복해서 두려운 감정을 완벽하게 체득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눈을 감지도 않은 채 속으로만 중얼거렸던 어린 날의 기도는, 타인의 힘으로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등 돌리지 않는 강력한 손들 아래서 나는 훈련받고 있었다.

 

그렇게 척추가 무너지지 않도록 무수히 고쳐 앉으면서 배웠다. 죽음이 상실이 아니라 곧 영원이라는 것을. 오히려 기록하고 회상하게 되기에 영영 인생에 박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겪었던 모든 죽음에 관련된 기억을 다 천국에 보냈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젊음의 몇몇 지점을 불멸하게 만들었다. 절대 사라지지 않는 흉터에서는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일한 사고를 뒤늦게 맞은 이들에게 상흔을 훈장처럼 보여주면서, 괜찮다고, 우린 계속 살아낼 거라고 이야기한다.

 

*

 

죽음을 껴안는 일이 익숙해졌다고 해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안과 안전을 더욱 바라게 됐다. 그러나 그런 멀끔한 생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멀게 느껴진다. 한번 열린 감각은 도무지 닫히지 않아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사건이 종결되어 일상이 조금 멀쩡해진 후에도, 마음 내밀한 곳에는 언젠가 유사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비슷한 연유로 넘어지면 극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해일처럼 몰려와 나를 또 한 번 수장시킨다.

 

안다. 오늘 한쪽을 꿰매면 내일은 다른 쪽이 찢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참을성 있게 바느질을 지속하는 까닭은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능숙한 솜씨로 구멍을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늘을 움직일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오직 바느질이 끝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생의 성장은 작은 눈과 짧은 호흡을 가진 인간이 결코 감지할 수 없는 거대한 단위의 리듬으로 꿈틀거린다. 다 올라오고 난 뒤 밑을 내려보았을 때 비로소 자신이 올라왔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처럼, 자란다는 건 층을 오르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것들이 한참 남았지만, 고질병 몇 개와 이별한 스물다섯의 나는 스물과 스물다섯 사이의 간격 속에 얼마나 많은 말과 걸음과 기도가 잠들어 있는지 안다. 그것들이 만들어낸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라는 동물.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모두 자라는 중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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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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