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요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음악]

지금도 우주를 탐사하는 보이저처럼
글 입력 2022.03.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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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보이그룹 몬스타엑스 기현이 솔로 앨범 VOYAGER를 발표했다. 그간 드라마 OST에는 많이 참여해왔지만, 정식 작업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여행을 떠난 기현의 이야기를 여행자 시점에서 풀어'냈다는 앨범 소개처럼, 기현은 이번 앨범을 통해 삶의 이야기하는 솔로 아티스트로 도약한다.


 

131.jpg


 

VOYAGER

 

01 

[TITLE]

VOYAGER

 

02 

,

(COMMA)

 

03

RAIN

 

 

앨범명인 ‘VOYAGER(보이저)’는 한국어로 여행자라는 뜻이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앨범 아트 속 기현은 쌍안경을 손에 들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VOYAGER에 항해자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는 소품이지만, 처음에는 앨범 콘센트와 조금 거리가 먼 사진이라고 여겼다.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당장 어딘가로 훌쩍 떠날 듯 밝고 가벼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노래를 전부 듣고 난 후에는, 왜 이런 이미지를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공식 설명처럼, 이 앨범이 보여주는 여행자의 모습은 휴양지로 떠난 관광객이 아니라, 손에 나침판과 지도를 들고 있는 모험가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은 그 지도에 새겨진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강렬한 콘셉트로 유일무이한 팀 컬러를 만들어온 몬스타엑스를 베이스 캠프로 두고, 기현은 자신이 꿈꾸던 낙원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데뷔 7년차에도 음악 세계를 계속해서 넓혀가겠다는 각오와 포부가 담긴 VOYAGER를 살펴보고자 한다.


 

 


낙원을 데려오는 여행자, VOYAGER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 곡 ‘VOYAGER’는 기현이 꿈꾸던 여행지로 향하는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기현의 뛰어난 노래 실력이 이전의 다양한 활동들로 증명되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화려한 보컬 스킬과 목소리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VOYGER는 경쾌한 드럼 사이로 뻗어나오는 힘차고 시원한 발성이 두드러진다.

 

개인적으로 기현의 보컬을 부드러운 사포에 비유하고 싶은데, 탄산처럼 톡 쏘는 목소리로 청각적 쾌감을 주면서도 마냥 거칠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VOYAGER처럼 ‘긁는 목소리’를 낼 때 더욱 극대화된다. 베이스와 기타, 드럼 등 현란하고 풍성한 밴드 사운드는 여행의 설렘을 고조시키며, 보컬에 힘을 실어준다. 무엇보다, 기현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중독적인 밴드 사운드가 만나 청량하면서도 뜨거운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마냥 신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친 마음까지 달래주는 휴식을 선사하는 게 아닐까.

 

 

 

 

뮤비를 통해 ‘VOYAGER’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흑백 화면 속 기현은 차려입은 복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서 있는 그는 완벽한 스타의 모습이다. 뒤이어 나온 기현 역시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여기까지의 기현은 잡지와 화보의 일부가 되는, 단편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때 기타에 전류, 즉 음악이 주는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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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율은 현실의 기현에게 '잊고 있던 떨림'을 선사하고, 다음 장면에서 TV 화면 속에서 즐겁게 노래부르는 기현이 등장한다. 이는 기현에게 있어 ‘꿈꿔왔던 Paradise’일 것이다. 도로 한 복판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두 발 닿는 어디든’ 갈 기세로 달리기 시작한다. 여행자의 모습으로 걷고, 뛰고, 운전해 도착한 곳에는 스탠드 마이크가 서있다. 기현은 웃으며 노래하던 그와 같은 복장으로, 자신과 함께 무대를 꾸릴 밴드를 만난다. 수십 대의 TV 화면 속 한 장면이었던 기현은 이제 화면 전체를 차지한다. ‘다 꿈일까’라는 첫 소절이 그저 비유가 되는 순간이다.


VOYAGER는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이 이야기는 꿈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상상의 여행지에서 되찾은 떨림을 현실에까지 가져온다. 그 결과물이 이번 솔로앨범이며, 그 과정을 한 편의 이야기로 담아낸 게 뮤직비디오라 할 수 있겠다. 뮤비 속 장면들은 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반영하며, 실제 앨범 홍보에 사용된 이미지들이 포스터나 잡지로 등장한다. 이 곡이 가진 힘은 현실도피적 상상력이 아니라, 꿈꾸는 세상을 ㅈ;금 이 순간으로 바꿔놓는 의지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기현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리는 꿈(락 밴드 보컬리스트)과, 그 꿈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노래’라는 점이다. 가수로 활동한지 7년, 그보다 더 오래 노래를 해왔을 텐데도 불구하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새로운 설렘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토록 한결같이 노래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 일이라면 몰라도, 직접 해낼 만한 재능이나 용기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Feeling like a voyager' 그는 여행자가 되겠다 말하면서 오직 음악만을 좇는다. 이것이야말로 대중에게 오래 사랑받아온 가수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처럼, 그러나 여전할 것.


 

 

 

우리를 지탱하는 삶의 쉼표, ,(COMMA)


 

두 번째 트랙 ,(COMMA)는 치열하고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쉬어가기를 소망하는 곡이다. 기현이 작사에 참여한 곡으로, 일기의 한 구절처럼 진솔한 가사가 눈에 띈다. 특히, ‘흔들리는 나의 걸음 속에 걸려있는 수많은 물음표’나 ‘지루한 문장 속에 쉬어갈 작은 점이 되어줘’처럼 문장 부호를 사용한 재치 있는 가사에 밑줄을 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수 본인이 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는 곡을 좋아한다.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수 본인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할 때 비로소 심장 가까이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는 입장에서도 가수가 이 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져, 자연히 귀 기울이게 된다.

 

가사 얘기를 먼저 했지만, 이 곡이 지닌 매력은 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기존에 즐겨 듣던 스타일의 노래라 그런지, 도입부의 악기 소리를 듣자마자 웃음이 나오며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탕을 이루는 멜로디는 세련되고, 물에 잠긴 듯 몽환적이다가, 한편으로는 도시적인 쓸쓸함이 묻어난다. 청량하면서도 빈티지한 기타 리프는 상반된 매력으로 곡이 가진 따스함을 끌어낸다. 감각적인 사운드 위로,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잔잔한 목소리가 밤 풍경을 덧그린다.

 

VOYAGER에서 들려준 시원한 음색은 여전하나, 최고조에 이르기 전까지는 조금 절제해서 부르는 느낌이 있다. 코러스가 사이다라면, 벌스는 밀키스 같달까. 이렇게 층층이 쌓아올린 감성은 빠르게 고조되어, 후렴에서 시원하게 터져나간다. COMMA는 밝은 것 같으면서도 어둡고, 시원하면서도 따뜻하며, 쓸쓸하면서도 가뿐하다. 이보다 많은 수식어를 붙이고 싶을 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곡이다.


기현은 ‘잠시라도 숨 쉬고 싶어 내 맘에 작은 섬이 되어줘’라고 반복해서 노래한다. “항상 밝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을 수 있는 생각을 가사로 옮기고 싶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척척 와닿는다. 나 혼자서만 감당한다고, 오로지 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1인분의 외로움이 공감을 통해 보편적인 정서로 환기된다. 그는 분명 자신의 콤마가 되어달라고 말하지만, 도리어 이 곡이 나의 콤마가 되어주는 것 같다.

 

 

가끔 내가 길을 잃을 때

더 이상 헤매지 않게

새로운 시작이 되어줘

내 얘길 이어나갈 수 있게

 

 

그가 팬들을 생각하며 이런 가사를 쓴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팬이기에 그 대상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고독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섬’과 ‘점’으로 삼아, 기대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돌릴 수 없기에 극적인, RAIN


 

마지막 트랙 RAIN은 이별 후 겪는 감정 변화를 비로 풀어낸 가사와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특징적인 곡이다. 이 앨범에서 어둡고 진한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이별을 주제로 삼은 만큼 격정적인 정서가 돋보인다.


신비롭게 일렁이는 곡 도입부의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고, 그 사이로 애절한 목소리가 힘차게 치고 나온다. 감정선은 점차 고조되다, 후렴에 이르러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듯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구성은 소설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기현은 흡인력 있는 보컬을 살려 애절하고, 처절한 슬픔을 듣는 이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달한다.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성숙해진 목소리와 더욱 깊어진 감정 표현은 절제된 스킬로도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무심하게 읊조리는 구간부터, 이를 악 문 것처럼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을 짓씹듯 부르는 구간, 그리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내는 구간까지, 기현이 가진 다양한 보컬적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이별 앞에서 상대를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대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계속해서 되새긴다. 가사만 보았을 때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언뜻 이별을 수용한 것처럼 보이나, 그 속은 절규와 미련으로 가득 차 있다. 보통 ‘비’하면 생각나는 촉촉하고 고즈넉한 풍경보다, 땅을 향해 내리꽂듯 떨어지는 낙하운동에 더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이 여정을 항해에 빗댄다면, 폭풍우 속을 지나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집어삼키려 드는 파도를 똑똑히 쳐다보고 있다. 그것이 항해사의 일이므로.


다른 두 곡이 가수 기현이 어떤 사람이 됐으며, 되려 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 곡은 여행에 나선 그가 어떤 보컬리스트인지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내게 있어 기현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무대가 서바이벌 NO.MERCY에서 한 ‘혜야’였다. RAIN 역시 '혜야'처럼 절절한 이별 감성을 노래하는 곡이라 그런지, RAIN을 부르는 모습에서 7년 전 무대가 참 많이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그가 이 곡에 담아낸 '자신 있음'이 무엇보다 자신다운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나 싶다.


곡이 가진 감정에 자신을 다 바쳐 부르던 그는 이제 곡이 가진 정서를 노련하게 전달한다. 기현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주는 힘은 여전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훨씬 근사한 보컬이 됐다. 그렇기에 자칫 날 것 같을 수 있는 감정은 진솔한 외침이 된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 과잉’이 싫어 발라드를 피해온 내가 차마 피할 수 없는 절절한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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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 수록된 ‘VOYAGER’와 ‘,(COMMA)’ 그리고 'RAIN'은 모두 락 장르의 곡이다. 기현은 이전부터 Imagine Dragon의 'Believer'나 Tom Grennan의 'Little Bot of Love' 등을 커버하며 락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온 바 있다. 좋아하는 장르를 만나서일까, 이 앨범 속 기현은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정말로 물 만난 물고기 같달까.

 

첫 솔로 앨범, 첫 번째 여행이라는 테마 안에서 전개된 세 곡은 전반적으로 푸른 색채를 띠고 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에서 시작해 청명한 한낮의 하늘, 푸른색이 점차 깔리기 시작하는 이른 오후,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긴 밤까지. 언제 꺼내들어도 좋은 앨범인 만큼, 특정한 시간대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다. 특히, COMMA는 해가 길어져, 저녁이 되어서도 아직 저물지 않은 하늘을 보며 듣기 좋을 듯하다.


누구보다 본인에게 뜻깊은 시도겠지만, 기현의 솔로를 오래 기다려온 입장에서 기다린 보람이 충분한 앨범이다.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는 것은 물론, 기현을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그를 소개해 주는 앨범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여행자 시점’에서 솔로 아티스트 기현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은 7년간 맡아온 몬스타엑스 메인보컬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으므로.


조금 더 많은 곡을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처음으로 혼자 닻을 올린 그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기에는 부족함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 세 곡으로 본인이 즐기고, 잘하며, 자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다릴 만한 음악을 전부 담아냈으니 말이다. 이제 막 출발한 사람에게 다음 여행은 언제냐고 독촉하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에는 기현이 그동안 쌓아온 음악적 내공과 고집이 집약되어 있다.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때, 이 앨범이 여행자들의 북극성처럼, 항해자들의 등대처럼 어떤 지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첫 번째 앨범에서 이렇게 뚜렷한 음악적 고집을 느끼고 나니, 그에게 항해박명이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여행을 떠나는 기현의 목소리에는 빈틈없는 확신이 깃들어있다. 앞서 앨범 아트를 통해 살펴보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될 뿐이니, 헤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수가 되기를 바란다.

 


"If you want it I can take you away"

 

 

기현은 VOYAGER를 통해 자신이 그리던 낙원에 도달하고, 그곳에 다른 이들을 초대해 공감을 얻고자 한다. 원한다면 데려가주겠다는 당찬 앨범을 안내서 삼아, 함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본 글의 제목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차용했습니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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