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는 최백규 시인의 세계

시인 최백규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글 입력 2022.03.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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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CHAPTER 1. 청춘과 사랑, 그리고 죽음을 노래하는 시인 최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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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최백규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며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 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 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땐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창작 동인 뿔에서 최지인, 양안다 시인과 함께 시를 쓰고 있는 최백규입니다. 이번에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라는 시집이 8년 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학창 시절 최백규는 어떤 아이였나요? 최백규 시인이 처음 글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알고 있어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문청이셨나요?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해서 노는 것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책이랑은 별로 가깝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또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실용음악, 보컬 쪽으로 진로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성대결절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그 상황에서 갑자기 노래를 그만두게 되어버리니까 여러가지로 막막했어요. 그때 ‘아 내가 원래 가사를 썼었으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제가 에픽하이의 타블로도 좋아했거든요. 타블로가 소설도 쓰잖아요. 원래는 나도 타블로처럼 음악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글을 쓰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노래라는 것이 작곡이나 작사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타블로도 문예창작과를 나왔다는 말을 듣고 그때 처음 문창과라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며 자연스럽게 입시를 준비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성인이 되고 나서 최백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명지대 문예창작과로 소개되어 있는데, 과거 자신을 '자퇴한 아르바이트생'이라고도 이야기하셨었죠.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렇게 문예창작과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전에는 당연히 예체능 쪽이었으니까, 공부를 하나도 안 하는 상태였어요. 그러다 보니 내신도 안 좋았고, 원래 문예창작과를 가려는 친구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예고도 가고, 백일장도 다니고 하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는데 저는 그런 것이 전무하다 보니 열심히 해도 결국 다 떨어져 버렸죠. 그 당시 제가 시인 이상을 좋아했는데, 이상 시인이 건축학과를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성적 되는 대로 이상 시인을 따라 들어갔죠. ‘나도 이상 시인처럼 건축학과를 왔으니까, 이상 시인처럼 될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당연히 아니겠죠. 하하. 이상 시인은 이상 시인이고 저는 저니까요. 그래서 적응 못하고 친구들이랑 휴학 처리도 안 하고 수업을 안 나가며 피시방 가고, 당구 치러 가고, 노래방 다니고 하면서 한 학기 다니다 보니 정학을 당해서 군대로 갔죠.

 

군대를 다녀오니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때가 23살이었는데, 23살이면 그래도 학교 꾸준히 다닌 애였으면 졸업반일 시기인데 저는 아무것도 없다 보니 동네 밖에 나가도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지내고, 출근하고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운동복에 덥수룩해서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 옆집같이 사는 사람들도 ‘쟤는 뭔데,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낮에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다니냐’ 의문스러워했고요.


그런데 그때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전에는 제가 군대에 있을 때라서 제가 걱정할까 봐 굳이 이야기를 안 하셨던 거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내가 지금까지 너무 막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내일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내가 평생 후회되겠다 싶었어요. 당장 뭐라도 해서 내가 괜찮게 산다는 것을 아버지께 보여드려서 아버지께서 편하게 가시기를 바랐고, 그때 생각난 게 음악과 시 두 개였어요.

 

그런데 음악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어요. 지금 당장 노래를 다시 할 수도 없고, 작사 작곡을 해서 누군가에게 노래를 주려고 해도 그게 당장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인은 그냥 될 것 같았어요. 왜인지 모르겠어요. 그때는 또 20대 초반의 패기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천재인 것 같은데 그 정도면 금방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당시 대구에 장하빈, 김동원 두 선생님이 계셨거든요. 맨 처음에 무작정 대구시창작 강의를 검색해서 그 두 분께 찾아갔어요. 마치 영화 <타짜> 속 고니처럼, ‘저 무조건 반 년 안에 등단해야 한다, 가르쳐달라, 나 무조건 시인되어야 한다' 무작정 말씀드리며 따라다녔죠. 그러니 저에게 시 써본 적 있냐 여쭤보시더라고요.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도 반년 만에 등단해야 한다 하니까 처음에는 뭐 이런 애가 있나,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따라다니다 보니 시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있는 시 창작 책 다 뽑아보고, 시집 다 뽑아보고, 서점가서도 다 뽑아보고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고시공부하듯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했네요. 등단 당시 운 좋게 정끝별 선생님께서 심사위원이셨는데 원래는 떨어지는 것이었는데 뽑아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열심히 잘 했다기보다는, 그런 은인분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CHAPTER 2. 시인 최백규와 첫번째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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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만에 첫 시집을 내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시집 출간이 많이 늦으셨는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제가 2014년 등단인데, 그 해가 유독 스타들이 많이 나온 해였어요. 최근 20년 통틀어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시인들이 가장 많이 나온 해에요. 저는 같은 등단 동기잖아요. 그 친구들은 다 시집 나오고, 상도 많이 받고, 이름도 알려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나는 안 되나?’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시도 많이 바뀌는 과정을 겪었고요. 그때 옆에 같이 시를 쓰는 창작동인 뿔 친구들이 있어서 많은 힘을 받았네요.


제가 또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졌거든요. 이번에 창비가 된 게 10번째로 낸 거예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곳은 다 내봤는데, 그 앞에 아홉 번은 투고했다 다 반려당했어요. 그런데 결국 제일 좋은 창비에서 되어서 사람은 운명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드네요.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 시집이 나온 뒤, 특히 좋았다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제가 시를 쓰기 시작한 지 8년이나 지나다 보니 그 사이 팬분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 팬분들께서 다른 시인을 좋아했으면 두세 권의 책을 마주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저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제 팬분들만 왜 이렇게 시집이 안 나오냐 하면서 직접 필사를 하면서 책을 직접 만들어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너무 죄송했는데, 이번에 나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가장 좋습니다.



- 시인의 많은 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여름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여름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사계절 중 다른 세 개의 계절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시인이 생각하기에 여름은 어떤 계절인가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습하고 더운 지역이었어요. 대구에서는 주변에 건물로 둘러싸여 있지 않은 이상 동서남북 중 어느 곳에서든 산이 보기도 하고, 제가 어릴 적 산 아래에 오래 살기도 했었고요. 그런 여러 상황들 속에서 여름에 내가 둘러싸여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감각이 어릴 때부터 계속 있었어요. 저는 제가 죽을 때까지 대구에서 계속 살 줄 알았죠.


또, 제가 학교에 잘 안 나가고 친구들이랑 가출하면서 거리에서 굉장히 오래, 그리고 많이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사회가 거리의 학생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냥 선도 대상, 불량 학생으로만 보는 거죠. 저희 같은 학생들이 갈만한 숙소도 없고, 돈도 없고, 미성년자라 찜질방도 못 가고 하니 길에서 자거나 겨울에 추우면 아무 건물에 들어가 계단에서 자는 생활들을 했어요. 계속 그런 생활들을 하면서 제 머릿속에 각인된 여름의 빨리 부패되는 이미지, 무언가 썩어들어가는 이미지가 죽음과도 맞닿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한여름 거리에 놓여있는 청춘들의 모습까지, 여름이란 저에게 그 모든 것을 묶어주는 것 같아요.


여름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진짜 더운 7-8월의 여름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1년 내내 여름에 갇혀있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여름이 온도와 습도로서의 여름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의 여름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시집을 보면 일 년 내내 꽃이 펴도 여름이고 눈이 와도 여름이면서 계속 여름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마지막 '시인의 말'에서도 오타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시인의 말에 '2022년 여름'이라고 적혀있거든요. 이것도 다 의도했어요. 지금 자체도 이미 여름이라는 뜻도 있었고, 미래에서 온 편지처럼 쓴 것도 있었어요. 이 시의 제목과 맨 첫 시, 그리고 마지막 시인의 말까지 이어지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꽃이 지고, 울고, 그늘이나 빛이 없는 것 같은 상황이어도 2022년 미래에서 빛은 계속해서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 자라나고 있다, 라고 이야기해 주는 의미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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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이 결정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표제 시는 대중이 정말 사랑하는 시인의 시 중 하나죠.


표제 시 같은 경우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중에 가장 먼저 쓴 시예요. 제 등단작들은 제가 맨 처음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반년 동안 쓴 시니까요. 등단작이라 하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잖아요. 뭐가 있어야 하고, 뭐가 없어야 하고, 그래야만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갖춰져있어요. 그렇다 보니 등단작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이 빠진 것 같아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뭘까 생각하며 가장 먼저 자유롭게 쓴 시가 바로 표제 시예요.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공감도 해주고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인터넷에서 굉장히 많이 떠돌아다녔거든요. 저의 시 중에서 <지구 6번째 신 대멸종> <애프터 글로우> 등 인터넷에서 많이 떠돌아다녔던 제 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떠돌아다닌 시가 이 시죠. 그래서 제 시를 잘 모르고 인터넷에서 스쳐 지나가며 ‘어 이 시 좋네’라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시집의 제목을 보고 시집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 이 제목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집 제목이라는 것은 이 시집의 전체적인 주제나 분위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제목 자체가 슬픔도 있으면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꽃이 져서 네가 운다, 이게 맞는 말이거든요. 하지만 제 시집의 제목은 반대로 그저 무력하게 울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너의 울음은 꽃이 지게 만들 수 있도록 힘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 이번이 시인의 첫 시집이지만, 그전에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내셨었죠. 시집을 준비하며 그때와 지금과 특별히 달랐던 점이 있었나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는 다른 시집들과 굉장히 많이 달라요. 지금 제 시집과도 많이 다르고요. 약간 밴드 같기도 해요. 록 밴드, 아이돌 그룹, 힙합 크루, 이런 사람들이 앨범 내듯이 내 시만 잘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세 명이 묶어서 낸 시집도 아닌, 창작 동인 뿔이 하나가 되어 낸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책에서도 이름을 지워서 냈어요. 시마다 이름이 안 적혀있고 맨 뒷장에 이름이 적혀있죠.

 

물론 이렇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네 명이 각자 생각하는 예술관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보니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 의견 충돌이 많았죠.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제 의견을 들어주려고 마지막에 배려를 많이 해줬어요. 제목도 제 시에서 나오고 시인의 말도 제가 쓴 걸로 하는 등 저를 되게 밀어주었죠. 리에게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이지만 너에게는 첫 번째 시집이니 네가 돋보였으면 좋겠다 말해줬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굉장히 고맙습니다. 저도 앞으로 그 친구들에게 많은 보답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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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 초에는 첫 시집까지 ‘이 세계는 평화롭지 못하다’라는 중심 주제를 완성시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제 첫 시집을 내셨는데, 스스로 생각하셨을 때 이 다짐을 잘 지키셨나요?


그 세계관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그때가 8년 전인데, 8년 전과 지금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하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사람들이 여러모로 많이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일어나고 있고, 전쟁도 일어나고 있죠. 인간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부터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인데, 그걸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인 거죠. 좀 더 넓게 시야를 가져서 신과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신의 원대한 계획 때문에 인간이 여러 가지로 불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음 같은 것들도 있고요. 이때 제 시집에서는 ‘청춘’, 사랑’ 같은 것들이 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청춘을 지키고자 하거나, 사랑을 하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즉, 등단 초에는 그때는 ‘세계가 어떻다’라는 것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 시집에서 ‘내가 이 세계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 시집에서 완성시킨 것 같아요.



- 이번 시집에서 시인께서 가장 좋아하고, 다른 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시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는 것이 제가 쓰고자 하는 시의 방향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열대야>라는 시가 시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분들이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도 이 시집의 분위기를 잘 함축하고 있는 시인 것 같아 이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열대야

 

최백규

 

사랑이 사랑도 아닐 때까지 사랑을 한다


네가 물들인 내 밤이 너무 많다


전국적으로 별일 없이 해거름이 옮아가고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야경을 바라본다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행복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울겠지


지난 주말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외지의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다


가만히 쓰러진 기린을 구경했다

 



 

CHAPTER 3. 최백규의 눈에 비춰지는 세계


 

- 시인께서는 신과 굉장히 밀접하게 성장하셨고, '신이 죽음을 준다면, 죽음을 주기 전에 맞선다'라고 이야기하셨었죠. 신이 죽음을 주기 전, 그전에 내 시 속에 모두 살려놓겠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도 하셨고요. <애프터 글로우>에서는 신을 ‘캐릭터들이 죽는데 계속 동전을 넣는’ 게임 플레이어로 묘사하기도 했죠.


 

애프터 글로우

 

최백규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곳이 다 오락이어서

캐릭터들이 죽는데 플레이어가 동전을 계속 넣었다


어느 주말 오후 흰 캔버스를 세우고 멍하니 그리워했다 있는 것들만 죽여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웃으며 안았다 손끝으로 상대방의 생명선을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같이 한다는 비극을 믿었다 우리가 금방 죽을 거라 했다


어젯밤 꿈에 눈이 부어서 오늘도 젖은 하루를 살았다 창밖엔 숲 이외의 것들만 조용히 번져서

우리의 기후가 같을까 무서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아무 일 없이 골목을 걸었다


와락 쏟아지다 터뜨려지는 파스텔이다


어두운 식탁에 앉아 찬 음식을 오래 씹어야만 하는 나이

무심히 낯선 여름이 굴러가고

두려웠다 내가 저 햇살 아래 작고 유순한 것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

죽여버리고 싶어서


지옥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안녕과 안녕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바늘 끝 위에 몇 명의 천사가 쓰러질 수 있을까


-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쯤 결심한 것 같다, 세계가 망가지더라도 시를 쓰자 아름답게 살자 남은 인생을 모두

이 천국에게 주자

 

그럼 최백규 시인에게 신은 '저항'하고자 하는 존재인가요? 인간은 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죠. 게임 캐릭터가 게임 플레이어에게 저항할 수 없고, 바둑, 장기, 체스에서 말들이 선수에게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시와 문학, 예술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계속해서 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에서 찾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계속 예술은 무용하다, 쓸모가 없다 생각하는데, 결국 인간은 쓸모 있는 것들로만 사는 생물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동물들이 본능대로 생존에 필요한 것만 하죠. 하지만 인간은 원시시대 때부터 돌로 사냥감을 잡고 그걸 벽화로 그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인간은 다른 종들과는 달리 쓸모없는 일들을 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꼭 예술 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만 그런 좋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 같아요. 일 끝나고 볼링 치거나 노래방을 가면서 삶의 낙이라고 하는 사람들 보고 뭐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꼭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시선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가볍게, 쉽게 봤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이 물속이라고 생각했을 때, 여러 산소호흡기 중에 하나가 문학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 등단 당시에도 최백규 시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화두가 죽음이라는 평도 들으셨고, 가장 많이 적는 시의 주제도 사랑, 청춘, 죽음이라고 답하셨었어요. 작가님께 이 세 개의 단어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이 시집에서 담겨있는 사랑과 죽음은 정말 문자 그대로의 사랑과 죽음을 의미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자체를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죽기 전까지 하는 사랑, 이 두 개가 붙어있다는 것이에요.단순히 각각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과 사랑, 죽음은 함께 붙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청춘들이 사랑하다가 죽어가는 이야기,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등 이 단어들이 어떻게 붙어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번에 낸 시집의 스토리 자체가 화자가 어떻게 태어나서부터 자라서, 내가 왜 시를 쓰게 되었는지가 적혀있는 시집이기 때문에 ‘왜’에 방점이 찍혀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해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제가 생각하는 죽음과 사랑, 청춘까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 시인께서는 요즘 시대를 ‘사랑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씀하셨었죠.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 그리고 이 시대 속 청춘이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시대는 조금 하다가 안되면 말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아진 것 같아요. 시대상 자체가요. 그런데 이런 시대상을 만든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겠죠. 취업률, 집값 등 열심히 해서 취업을 해도 내가 집 하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연애든 결혼이든 포기하게 되는 거죠. 물론 다른 사회적 문제도 물론 함께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언가를 이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거기에 한 번쯤 깊게 고민을 던져볼 수 있는 때가 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저는 분명 사람에게 하나의 코인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하나의 코인이요.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의 기회가 무조건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꼭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게 언제 올지 모르니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한 번쯤은 내 인생을 다 쏟아붓는 거죠. 뒤가 어떻게 되든 신경 안 쓰고요.

 

그 코인은 청춘만이 갖고 있는 하나의 코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5년에서 10년만 지나도 그 코인은 소멸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하고 소멸되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활용해서 꼭 플레이하고, 그렇게 플레이했을 때 게임 안에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해봤으면 좋겠어요. ‘아, 안 되나?’ 싶어도 절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믿고 끝까지 해내는 꾸준함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제가 나아갈 방향이고, 제가 현재 청춘이기 때문에 청춘 모두가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CHAPTER 4.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이신가요?


우선 시집이 나왔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힘들어도 낭독회를 계획 중이고, 창작동인 뿔에서 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양안다 시인이 다음 달에 전역해서, 나오면 바로 같이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한 곧 산문집도 하나 나올 예정이라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최백규는 어떠한 것들을 적고 싶나요?


가장 가깝게는 2집이 있네요. 2집에서는 NCT DREAM, 방탄소년단처럼 청춘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다른 국가에 번역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 이 사람 한국 시인이구나, 할 수 있는 한국의 여름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CHAPTER 5. 마지막으로, 첫 등단 당시 ‘결과적으로 최백규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들은 찾으셨나요?


 

네, 찾은 것 같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이 있어요. 저는 옛날 시인들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특히 7080년대 시인들을 좋아하는데, 그분들의 좋은 점들이 2000년대를 지나오며 거의 휘발되었다고 보거든요. 요즘 나오는 시가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굳이 그전의 여러 장점들을 버리고 무조건 새것만 찾고 낯선 것만 찾는 것이, 그리고 모두가 그쪽으로 몰려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과거의 장점과 현대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고스트 바둑왕>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천 년 전의 바둑을 잘하던 귀신이 주인공에게 와서 현대에서 바둑을 계속 둔다는 내용이거든요. 그 만화에서 “천 년 전의 사람이 지금 다시 바둑을 배우면 최고의 기사가 될 수 있지 않냐"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래서 과거의 이성복, 기형도 등의 분들이 지금 태어나서 시를 배웠다면 이런 시를 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안에서 최백규만 적을 수 있는, 누가 봐도 최백규 시인의 시인 것들을 쓰고 싶었어요. 1집이 나온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저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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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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