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헛된 투쟁이란 없어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글 입력 2022.03.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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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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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4일에 개봉한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배우들을 보자마자 또 어떤 위로를 건네줄까 생각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 ‘빌 나이’와 영화 ‘우리의 20세기’에서 사춘기 아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준 ‘아네트 베닝’이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등장한다. 한 가족으로 만난 그들이 가족의 사랑에 있어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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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의 갈등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서로 비슷하다는 착각. 자신이 가장 노력하고 있다는 착각. 자신만의 방식이 맞다고 믿는 착각. 우선 엄마 ‘그레이스’는 사랑을 강요한다. 자신만이 가족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착각한다. 남편 ‘에드워드’와 아들 ‘제이미’를 향한 한껏 포장되어 있는 그녀의 날카로운 화법은 그들을 억누른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안 주고 결국은 상대방을 고치려 한다. 아빠 ‘에드워드’는 사랑을 방어한다. 갈등이 생기면 그냥 넘기려 하고 말을 돌려 버린다. 그리고 쏘아붙이는 아내의 공격에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한다. 자신이 잘못했고 문제라고 생각하며 입을 닫아버린다. 아들 ‘제이미’는 사랑을 각자의 것으로 본다.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하면 가족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상황을 무마한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너무 많은 우리. 문제는 비슷한 점에만 주목한다는 것이다. 한 집에서 같은 걸 먹고 같은 곳에서 잤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가족만이 아니다. 친구, 연인, 동료, 상사 등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에드워드’는 ‘그레이스’와의 첫 만남에서 서로 같다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점들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거리감이 생겼다. 비슷한 건 서로 즐기고 다른 건 서로 이해하며 맞춰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밀은 쉽지만 그건 쉽지 않다. 세상에 많은 갈등은 서로 다른 걸 이해하지 못해서 비롯된다.

 

 

 

갈등의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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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만들은 쌓이고 쌓여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낸다. 풍선 입구를 막는 손을 떼면 바람은 빠지겠지만 누가 먼저 양보하지 않는다. 자신이 맞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바늘을 들고 화두를 툭 건드린다면 풍선은 터지고 쌓였던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 ‘에드워드’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 집을 나간다. ‘에드워드’의 바람과 함께 풍선이 터지고 나서야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바람 앞에는 촛불보다 가족이 더 위태롭기에 적어도 이해하고 말해보려고 시작한다. 하지만 그 주체는 ‘그레이스’ 뿐이었다.

 

 

 

헛된 투쟁은 없어 - 영화와 시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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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제이미’도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엄마에게 말한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엄마의 문제점과 아빠의 문제점을 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엄마의 노력을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들에게 ‘그레이스’는 시 한 구절을 읊어준다.

  
 
투쟁을 헛된 일이라 생각하지 마라.
 
  

투쟁을 ‘싸우는 행위’가 아닌 ‘지키려는 행위’로 관점을 바꿔준 구절이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와의 화해를 위해 투쟁 중이었다. 안 소중한 가족은 없겠지만 그녀에게 가족은 유난히 더 소중해서 대화라도 나눠보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도 ‘제이미’처럼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 경향이 컸다. 그냥 이런 경향인 건지 그만큼 나에게 소중하지 않았던 건지는 몰라도 좋은 기회를 놓쳤을 때, 누군가와의 관계가 흐지부지됐을 때 다시 한번 잡아보려는 ‘투쟁’을 한 적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노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시로 아들은 엄마가 왜 이리 노력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해는 동쪽에서 뜨지만 햇빛은 모든 창가에서 들어온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은 시인인 ‘그레이스’에 맞게 다양한 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투쟁을 헛된 일이라 생각하지 마라.’와 위의 구절이 인상 깊었다. 아들에게 해주는 말이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같았다. 해가 뜨는 동쪽 창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빛은 어떻게든 세어 들어온다. 그 빛이 눈에 닿고 반사되어 조금씩 방 안이 보이고 밖으로 나가는 문도 보인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비로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남편이 떠나간 그녀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그처럼 우리도 소중한 누군가를, 무언가를 잃어도 아침에 뜨는 해 하나쯤은 눈이 부시게 볼 수 있다.

 

 

 

절벽 위를 정복한 모자의 사랑 - 광활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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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간중간에 ‘노매드 랜드’와 비슷하게 엄청난 자연의 모습이 나타난다. 눈이 부신 바다와 클레오파트라의 콧대만큼 깎아지르는 절벽이 나타난다. 아들이 어렸을 때를 상상하면 푸른 바다가 롱샷으로 그의 추억을 보여주고 엄마가 근심이 쌓이면 가파르게 깎인 절벽을 보여준다. ‘그레이스’는 걱정이 될 때마다 절벽을 찾아간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엄마를 보고 ‘제이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나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했을까. ‘제이미’는 절벽 앞에서 ‘그레이스’에게 말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엄마가 포기하면 나도 힘들 때는 그냥 포기하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테니, 엄마만큼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살아달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쭉 쿨한 모습만 보여줬던 아들이 어렸을 때 바다에서 놀면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보이게 하는 장면이었다. 다 큰 아들이 더 큰 엄마를 안았을 때 보이는 절벽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험한 길을 헤치고 절벽 끝까지 올라온 정복자로 보이게 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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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에 어린 ‘제이미’가 엄마를 기다리며 바다에서 노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른이 된 ‘제이미’가 똑같이 바다에 서있고 엄마와 아빠를 기다린다. 마지막 부탁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바다로 와 달라고 부탁한 ‘제이미’는 엄마가 말한 대로 나름의 투쟁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절벽과 바다가 마주 보는 그곳에서 3명이 모였을 때 어떤 얘기를 할지 모르지만 말없이 ‘제이미’를 지켜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로소 풍선이 터지고 나서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이 가족. 바람피면 안 된다는 교훈과 함께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사랑하자는 말을 건넨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강요하고, 착각하고 있진 않은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건 우리가 믿었던 그 사람이다.


그 믿음을 잊지 말자.

 

 

[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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