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전경로탐색 : 시립미술관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3.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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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과 아트스페이스, 시드니가 공동 기획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UN/LEARNING AUSTRALIA》는 한국-호주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의 동시대 미술 실천에 주목하는 전시를 개최합니다. 2021년 기관 의제 ‘배움’을 바탕으로 목적지 없이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며 상호 학습의 계기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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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요? 바로, 드넓은 자연과 풍족한 물자, 따뜻한 날씨가 생각나지 않으신가요. 한국의 집단적 상상 속 호주는 서구화된 이상에 가깝죠. 이처럼 전시는 호주에 대한 인식에 내제하여있는 권력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해볼 기회를 마련합니다. 호주에 대한 고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문화, 사회,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 다층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경로 재탐색의 여정을 제시합니다.

 

호주는 영연방에서 유일하게 토착민과 유일하게 조약을 맺지 않는 국가입니다. 토착민 자치권 인정에 대한 거부는 정착형 식민주의를 고착화합니다. 토착민의 예술 활동은 이처럼 국가가 법적 메커니즘으로 가하는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토착민은 토지권을 소유하지 않으며 성지의 법적 소유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요.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토착민은 그들의 뿌리인 땅과의 관계를 오랫동안 맺고 있으며, 그곳에서 영감받은 예술 행위들이 곧 식민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법적 증거로 활용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토착민 예술을 통해 그들의 문화 특정적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리적 지적 측면의 시간을 들여 여칼라 공동체의 예술 작품을 읽는다고 했을 때, 이는 요릉우족의 세계관을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책무가 선행되는 복잡한 문화적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진정한 다름을 마주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호주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 호주로부터 벗어나기 : 토착민 자치권을 주장하다. (스티븐 킬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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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특정한 관람 동선을 제시하지 않고 다섯 가지의 잠재적 진입 지점을 제안하며 호주의 현대미술 작가 총 35명/팀의 작품 60여 점을 선보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배워왔던 익숙한 ‘경로’에서 벗어나 길을 잃으며 ‘앎을 잊기’의 투쟁의 영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기존 경로를 벗어나 작품들로 수 놓인 다수의 길을 따라 걸으며 다채로운 호주를 경험하는 앎의 과정을 따라가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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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특정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열어 내는 것이었다>, 2015–2017 3채널 비디오설치, 전체 33분 2초 가변설치 작가, 모내시대학교 미술관 제공

 


▣ 공동체 속에서 듣기와 앎의 공유

 

197-80년대 시드니에서 전개된 유럽 페미니스트 사상의 확산을 탐구합니다. 자체적으로 보급한 번역 출판물, 뉴사우스웨일스 건설자 연맹과의 제휴, 철학 파업 등이 당시 활동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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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짓기(부분 I)>, 2016 검은 모래에 쌓은 수제작 콘크리트 조개 1800개 가변설치 작가, 밀라니 갤러리 브리즈번 제공

 

 

▣ 장소에 새겨진 역사

 

호주의 식민지화와 채굴 산업으로 인해 천연자원이 약탈당하고 토착민 유적지가 파괴되며 발생한 깊은 단절을 조망합니다. 빈 껍질이 쌓인 패총은 ‘무주지’라는 법적 허구의 상징이 되었는데요.이에 저항해 패총을 기념비로 만들어 토착민은 지속적해서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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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2013– 텐트 천과 부품, 알루미늄 프레임, 밧줄, 네 개의 표지판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단채널 디지털로 변환한 16mm 필름, 흑백, 사운드 가변설치 작가, 밀라니 갤러리 브리즈번 제공

  

 

▣ 유머와 전복

 

원주민 텐트 대사관 활동은 1972년 정부의 원주민 토지권 비인정에 항의하며 등장합니다. 이 후 전 세계에 상황에 맞게 재해석되며 인종주의와 차별을 논의하는 장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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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유루>, 2021 린넨에 아크릴릭 230 × 200 cm 작가, 스피니펙스 아트 프로젝트 제공

 

 

▣ 자주권과 자기결정권

 

전시 입구와 출구에 설치되어 순환성 추진력을 연출한 이 작품은 ‘츄칼트자’라는 일곱 자매 이야기 속 등장하는 장소인 쿨유루에 대해 다룹니다. 작가는 1998년 스피니펙스 원주민 토지 소유권 획득의 증거로 사용된 회화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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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된 신체들(내재된 악덕)>, 2021 분필, 금박지, 금으로 도료 가변설치 작가 제공

 


▣ 다양성과 번목

 

18세기 귀족 초상화를 테두리를 뭉개고 살집으로 뭉쳐 ‘머리’의 형태로 대체합니다. 부조리한 대상을 재치 있고 그로테스크하게 전복시킵니다. 작가의 가독성과 비가독성의 개념, 정체성과 자아를 재탐색하는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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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 느가주 느게이>, 2021, 세부컷. 물래이 미술관 알버리 《DIWIL》 (2021)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작가, 로슬린 옥슬리 갤러리

     


    ▣ 장소 특정 커미션 작업

     

    마라라 굴라니 패턴은 토착 원주민과 유물을 추모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을 상징화합니다. 이를 SeMA Cafe+에 설치하여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아픔을 회복하는 공간으로 만듭니다.


    팬데믹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 작품 관람 뿐만 아니라 디지털 커미션 작품과 온라인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인스타그램 계정 ‘52 ARTISTS 52 ACTIONS’(@52artists52actions)에 전시 참여 작가, 콜렉티브, 토착민 아트센터들이 이미지, 영상, 텍스트, 오디오로 이뤄진 작품들을 전시기간 동안 릴레이 형식으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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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벨의 <대사관>은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와 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으로 재해석되어 <닝‘글라 아-나(이 땅의 굶주림)> 스크리닝, <대사관-배우고 비우고 다시보기> 등이 진행됩니다. 아가서 고스-스네이프의 읽기 퍼포먼스 <사자의 꿀>, 다양한 사람들의 우연한 의도적인 접촉의 교차점인 매튜 그리핀의 <컨템포라리아리> 뿐만 아니라 여러 강연, 작가와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족 대상 프로그램인 <식물로 그리는 식물>은 전시 속 등장하는 식물에서 색소를 추출해 잉크와 물감을 만들어 그림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합니다.

     

    출판물 도록은 페이지 크레딧인 사전 경로 탐색, 전시 출품작, 아트센터 인터뷰, 재탐색의 경로제안 에세이 등 ‘앎의 재탐색’에 대한 응답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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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전쟁, 치열한 생활고 등의 상황에 마주한 이들에게 예술이 가진 설득력을 잃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예술이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회의감이 들었고, 밀려가는 우선순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이 토착민들의 자치권 촉구 운동에 어쩌면 총과 칼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을 때 예술에 대한 강한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술은 결국 세상에 대한 균열을 만들어내어 토착민들의 자주성을 지키며 문화적 치유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의 교차점 속에서 만들어진 이 전시를 보며 탈 학습의 과정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윤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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