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선의 승려 장인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3.0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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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승려란 익숙하지 않은 집단이다. 역사 시간에,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tv 속에서 마주치지긴 하지만, 실제로 교류할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스님들을 마주칠 때면 연예인을 마주친 것보다 더 낯선 기분이 든다.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세계의 분들이라고 느끼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다른 종교들의 확산으로 불교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믿지 않아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지인들의 말을 통해 익숙해진 목사님들과 신부님들과 달리 지금의 청년층은 스님을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조차 적다. 다른 이유를 찾자면, 절의 접근성 때문일 것이다. 절들은 우리가 다니는 길거리가 아니라 주로 산 속에 위치한 탓에, 관광 목적으로 가끔 찾을 때 빼고는 거의 경험한 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게 승려들의 삶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들은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불심을 꽃피웠고, 미약하고 가늘지언정 언제나, 어디서인가 우리나라 불교는 숨쉬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는 이렇듯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승려들의 불심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선과 불교의 병렬은 어색하다. 통치의 관점에서만, 혹은 유교와 불교, 숭상과 배척의 이분법으로만 한국사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시를 감상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옹호되고, 보호받을 수 없어도 마음속 깊이 믿고 따르는 것이 종교의 정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조선을 살다간 수많은 사람의 생각을(왕들조차도) 하나로 묶어 정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승려, 그리고 동시에 장인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승려들을 중심으로 불교 미술품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즉, 승려가 경전을 공부하여 중생들을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려와 예술가의 연결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는 전문 화가, 혹은 전문 장인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가한 수도자가 불교 미술품을 제작하는 건, 조선만의 독자적인 문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조선의 불교 미술품은 신성함을 모방한 예술이라기보다 신성함 그 자체인 것 같다. 불교의 세계를 아름다움으로 치장하기보다는, 수도의 과정 중에 깨달은 불교만의 아름다움을 공들여서, 진심으로 표현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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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작품은 승려 장인 연희의 작품이다. 가운데의 석가모니는 보살과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대좌 밑에 앉아있는 제자 수보리는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처음 이 작품을 보고서는 목판에 새긴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작품의 예술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찼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이며 작품만 뚫어져라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고 나서야 옆의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사찰을 유람하며 연희와 만났던 문인 정시한은 그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1년째 경전 수천 매를 새기고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승려 장인에게는 매 순간 반복된 작업 역시 수행의 일환이었습니다.”

 

설명을 읽고 깨달았다. 작품의 예술성은 그저 표면에 불과하다는 걸. 연희는 저 작품 속 수많은 보살과 구도자를 새기면서 불도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뾰족하게 새로이 떠오른 수를 마음에 품고 있을 수 있도록 둥글게 연마하고, 너무 편평해지면 다시 깎아내면서 진리로 향하는 끝없는 길을 묵묵히 감당해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금강경변상도 목판은 그저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다. 연희의 땀과 불도에 대한 열망이다. 작품의 예술성보다도, 그 뒤에 숨은 연희의 성실과 진심이 좌중을 압도하고 작품을 높은 경지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우리가 갖게 되는 연희에 대한 경외는 이 전시가 왜 작품의 생산자인 ‘승려’들을 대상으로 했는지 납득하게 한다.

 

 

 

찬란한 광채를 빚어낸 불심


 

승려들에게 법당은 부처와 만나며 절정의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그 체험을 중생들과 나누어야 하는 그들의 숙명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구도자이자 지도자인 승려들은 예로부터 그들이 아는 영험을 백성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고, 그 결과로 부처님의 이미지는 인자한 부처님, 위엄있는 부처님, 소박하고 정겨운 부처님 등으로 시대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바뀌었다.

 

단응 등 9명이 조각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화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불상 뒤의 평면을 벽화가 아닌 입체감 있는 평면 조각을 설치해놓아 아미타 정토를 실감 나게 나타내는 효과를 가져온 것은 단응 시기에 탄생한 기법인데, 당시 조각승들의 예술적 시도이자 고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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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엄청나지만, 실제로 보면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마치 천상의 세계에 온 듯, 작품에서 나오는 금빛의 광채가 내 몸도 함께 감싼다. 그리고 앞의 위엄있게 앉아있는 아미타 삼존과 뒤의 자유롭게 떠다니는 보살 등이 아미타 정토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부처의 세계를 중생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도록 아름답게 보여주고, 더욱 깊이 상상하게 하고자 하는 승려들의 의도는 완벽히 성공했음을 단번에 알아채게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다가 문득 승려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세계를 어떻게 이리도 황홀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수행의 연속인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때론 몸을 혹사하면서까지 진리를 찾으면서, 그 오랜 평생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게 어떻게 질리지 않을 수 있는지 말이다. 얼마나 마음속 확신이 가득하면 남한테 전할 수 있고, 믿음을 표현하는 손끝이 이리 유려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종교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대신 그들의 삶의 이유, 세계, 모든 것이었던 그 진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대상이 무엇이든,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작품 창작이라는, 자신의 신앙 세계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으며 걸작을 만들어냈던 조선시대 승려들은 그저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영험을 그려낼 정도로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느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믿고, 이를 향해 심혈을 기울이면 존경심이 인다는 것을. 그 감정은 자신의 믿음을 꿋꿋이 추구해나가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것이라는 걸.

 

옳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좌절감이 든다면,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조선시대 승려들의 작품을 찾아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용기와 강인함을 느끼고 얻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참고>

국립중앙박물관 승려의 장인전 리플렛 및 전시 해설

 

 

[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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