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튼 시리즈 - 당신의 빈칸은 무엇인가요?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3.0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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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뒷북 소리 말이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좋은 건 아무리 많이 이야기해도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에서 번갈아 출판하는 에세이집이다. 인기 많은 효자 시리즈라서 2017년에 처음 선보인 이후로 2022년 3월까지 벌써 47권의 책이 나왔다.

 

<아무튼, 아침드라마>, <아무튼, 비건> 등 작가가 아주 좋아하는 한 가지 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호흡에 읽을 수 있는 경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도, 가끔은 중요하고 무거운 이야기도 담는다. 소재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데 전부 자연스럽고 색깔이 분명하며 재미있는 글이었다.

 

 

 

아무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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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를 처음 발견한 것은 홀로 강릉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조용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할 일이 없어 책들을 뒤적이다가 마침 술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그때 마침 하이볼 한 잔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술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아주 공교롭게 느껴졌다. 홀짝홀짝 마시면서 읽어내려간 글은 아주 술술 읽혔다.

 

이 책이 바로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이다.

 

 

이날 이후부터 나는 그렇게 해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와 술을 마실 때는 항상 소주 두 병을 한꺼번에 주문한다. A병을 기울여 B병에 소주를 부어 넣을 때마다, 좁은 소주병 입구 바깥으로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고도의 집중을 하며 부어 넣을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렌다. 곧 아름다운 소리를 낼 오르골의 태엽을 감는 기분이다.

 

똘똘똘똘 소리 하나 듣겠다고 소주 한 잔 마실 때마다 그렇게까지 번거로울 일인가 싶겠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유의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집요해지는 나를 볼 때가 나, 잘 살고 있구나, 라는 가느다란 뿌듯함이 드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차가 막히거나 컴퓨터가 느려지거나 조직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등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병목현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사실에서, ‘세상에 다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소주 첫 잔을 받아들며 다시 한번 엄숙히 새길 수도 있다.

 

 

술에 관한 일화들이라니! 사실 술 마시고 실수한 무용담은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다들 하나 이상 가지고 있어서, 처음엔 개강파티에서 술 마시고 토했다는 얘기로 시작하지만 나중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야 될 법한 이야기까지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재치 넘치는 말투로 전해 들을 수 있다. 수능 전 백일주에 거하게 취해서 내 정체는 바로 ‘배추’라고 밝혔다는 이야기, 택시에서 노래방 리모컨으로 카트라이더 했다는 얘기를 기세 좋게 전하는 걸 듣다 보면 웃기고도 왠지 모르게 슬프다.

  

술과 함께한 우당탕탕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읽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술 한 잔씩 담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피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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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에서 <아무튼, 피트니스>를 추천받았다. 아무튼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고 아주 재미있다는 이야기에 홀랑 넘어갔다.

 

전 국민이 찍을 기세의 바디 프로필과 온갖 근육과 이상적인 몸선을 강조하는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운동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그저 덮어놓고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슬며시 책장을 덮으려 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몸을 계발하고 몸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양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생각 없이 몸에만 신경 쓰는 이들이라고 폄하했던 사람들이 실은 최선을 다해 자기를 다듬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든 아니든 저마다의 사연과 내력이 있을 테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 그런 것들을 체육관에서 배웠다.

 

나는 이제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아쉽고 모자라도 내 몸이 나와 동행할 나의 일부라는 것, 남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활력이 있으면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피트니스 대회 수상자나 경력이 있는 사람일 줄 알았으나 생각 외로 평범해 보였다. 류은숙 작가는 25년째 인권 운동(movement)을 해왔고 쉰 살이 될 무렵 다른 운동(exercise)을 시작했다. 그는 폭음과 폭식을 즐기다가 병 걸려 죽을 것 같으면 다 정리하고 여행을 떠나서 원 없이 떠돌다가 아무도 모르게 이국에서 죽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한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영업을 당해 개인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하면서 운동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평소 습관을 버리지 못해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헬스장 가는 걸 미루는 일, 맛있는 음식을 너무 사랑하는 모습들은 남일 같지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버거운 중량을 쳐내면서 우리는 뭔가를 배우고 그건 저절로 몸에 새겨지는 것 같다.

 

 

 

아무튼,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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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글은 밴드 ‘허클베리핀’의 기타리스트인 이기용 작가의 <아무튼, 기타>이다. 오래전부터 기타를 사두고 가끔 뚱땅거렸는데도 도무지 습관이 들지가 않았다. 기타와 자꾸만 낯을 가렸기 때문이다. 기타를 껴안으면 무언가 어설픈 느낌이었다.

 

이럴 때는 책을 읽는다. 기타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의 책을 읽고 그 세계를 경험하다 보면 당장이고 기타를 잡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았다. 그 감정을 조금만 더 묵히다 보면 드디어 기타를 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단 네 개의 코드만 익혀놓으면 노래를 부르면서 기타로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무척 중요해서, 어쩌면 모든 기타리스트들은 곡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해봤다는 최초의 성취감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경험한 바로 그 순간이 기타리스트로서의 삶이 무한히 확장되는 최초의 순간이기도 하다. 다른 어려운 곡들을 만날 때마다 늘 괴롭지만 그럴때마다 돌아가서 기댈 수 있는 노래가 있기에 다음 곡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적어도 마지막까지 좌절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글 속엔 담담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모든 기타리스트가 한 곡을 끝까지 쳐본 경험에서 비롯한 용기로 또 다른 곡을 시작할 수 있는 거라고. 뭐가 되었든 간에 한 곡을 끝내고 나면 언젠가 기타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시점이 올 거라는 위로다.

 

작가를 거쳐간 기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기타를 구한 과정, 첫 느낌, 누구에게 팔게 되었는지까지. 그런 것들에 대한 기록에 너무나 진심이 가득했다. 잃어버린 노란 텔레캐스터를 찾으려고 방방곡곡 수소문하는 장면은 마치 옛 연인에 대한 미련을 보는 것 같기까지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무엇


 

누군가가 소중히 생각하는 대상을 엿보고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그들의 마음과 시간을 담은 이야기는 반짝거려서 눈에 띈다.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뛰게 만든다.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무엇은 우리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관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주머니 속에 찬찬히 넣어두어야겠다.

 

묻고 싶다. 당신의 빈칸은 무엇인가요?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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