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계에 대하여 [도서/문학]

최은영 작가 <한지와 영주>
글 입력 2022.03.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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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한지와 영주 中>


최은영 작가의 <한지와 영주> 속에서는 이별을 다루고 있다. 해외의 수녀원으로 봉사를 갔다 머무르게 된 영주, 케냐에서 온 한지는 마음이 맞아 금새 단짝이 되었다. 영주는 매일 밤 한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일기장에 적었고, 한지에 대한 마음이 나날히 부풀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지는 영주를 모른체 하기 시작했다. 한지는 나이로비로 돌아가야 했고, 결국 그들은 끝내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한 채 이별을 해야 했다. 남겨진 영주는 한지를 생각한다. 한지의 푸른빛 피부를 떠올린다.


이 소설을 읽었을 그 당시는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한지처럼, 그 어떤 얘기 없이 나를 단절하여 이별한 이가 있었다. 떠난 사람은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은 대체 나를 왜 단절했을까. 사소한 잔 걱정까지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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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영주는 한지가 밤중에 산책을 하자고 했을 때 거절했던 것과, 한지가 노트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한지 너라고 얘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한다. 한지가 살리지 못했던 동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당황해서 침묵하지 말고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줬더라면 어땠을지.

 

민당팽이의 기원 따위를 떠벌릴 시간에 한지가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줬더라면 어땠을지. 혹시 자신의 그 단순함이 그 애를 숨막히게 한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자신이 너무 자주 그 애를 보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한지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시간을 자신이 너무 독점해서 질려버린 건 아닌지.


남겨진 사람들은 수없이 생각하게 된다. 지난 날 저지른 행동에 대한 반성. 후회. 그리고 자책을 한다. 결국 영주는 침묵의 주간을 신청하게 된다. 침묵은 영주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영주는 한지에게 쪽지와 자신이 그동안 쓴 일기를 대신 전달해달라고 테오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결국 한지는 이건 영주에게 중요한 거라고 받지 않겠다 거절하였으며 노트는 다시 영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남겨진 영주는 단절된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사라지던 몸과 가끔씩 깜빡이던 한지의 눈. 침묵하던 한지의 눈과 입. 검고 푸른 피부. 영주에게서 고개를 돌릴 때의 자연스럽지 않던 몸짓.

 

*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만가지의 인간관계가 피고 진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어려운건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는 성인이 된 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인간관계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불가용어 중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이 또래에 나만큼 잘 이해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 온 몸으로 이해했다. 사람이나 일, 물건과의 만남,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다는 것.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혹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는 법이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갖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 반대로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겠지. 사람이든 물건이든 재물이든 내 품 안에, 내 손아귀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나를 스쳐갈 모든 것들에 온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 때는 그 때의 기억이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그 때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때의 우리가 아니다. 그저 나라는 책 중에서 한 챕터에 불과했다. 이미 인쇄되어버린. 그리고 지금 나의 소중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으니까. 수없이 많은 계절을 반복해도 다다르지 못하는 곳이 존재한다. 결국 마주해야 하는 것은 어제와는 다른 폭풍. 그 가운데를 뚫고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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