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세랑의 시선으로 장식한 세상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도서]

수많은 존재에 대한 염려와 사랑을 그려낸 그의 시선으로부터
글 입력 2022.03.0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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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는 그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통해 처음 만나봤다. 오직 한 권의 책으로도 그는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구축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싫어 괜히 방 밖으로 나가지 않기도 하고, 그가 그려낸 세상을 만들어 내보이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작가의 여행 에세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김없이 다시 나를 헤어 나오기 싫은 정세랑의 늪에 빠지게 했다.


책은 뉴욕,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 총 다섯 여행지에 관한 글이 각각의 챕터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여행의 자유가 축소된 지금, 이를 읽으며 대리 여행의 만족을 분명히 느낄 수 있으나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 자체를 여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의 여행지를 경유하여 작가의 시선, 언어, 머릿속을 여행하는 것 같았고, 그곳은 어떠한 매력적인 장소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매력을 지녔다.

 

 

정세랑은 여행 에세이에 걸맞게 박물관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를 물론 소개하지만, 그것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상당한 비율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관찰하며 끊임없는 호기심을 자아내고, 그와 관련된 존재를 상상하고 기억하고 염려한다. 그의 이야기가 매력이 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에 있다.

 

보도블록 속 유리 조각을, 지나치는 건물 창틀에 놓인 화분을, 흔한 오줌싸개 동상을, 우스꽝스러운 달팽이 조형물을,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대화를 따스하게 포착하고 사유한다. 대상과 사유의 결과물을 잘 반죽해 내서 자기 몸 구석구석을 풍요롭게 만든다. 다소 엉뚱한 것 같기도 한 그의 상상력 속엔 조심스러우면서도 확고한 사랑이 존재한다. 사랑은 시선을 부지런히 타인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는 이슬아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물 위로 열리는 문이나 물속으로 바로 내려서는 계단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중략) 문득 그 도시의 취객들과 수면 장애 환자들이 매우 염려되기 시작했다. 잠결에 문을 열었는데 바로 물이라면, 취한 상태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는데 무릎이 잠긴다면"

 

 

이러한 태도는 지나치게 단절된 현대사회의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인 대부분은 무언가를 보고 두 발자국 나아가 생각하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시선 자체의 폭도 갈수록 협소해질뿐더러 자신의 시선으로 한 번 걸러내어 나에게 맞으면 수용하고 다르면 배척한다. 너무나도 빠르게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으로 세상은 이해된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같이 떠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활하면서도 세세하게 주위를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 시선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것이 정세랑 작가가 가진 황홀한 언어의 뮤즈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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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사람이 잘 없는데 이야기 속 세계에는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과 중병에 걸린 사람만 존재하는 것 같다. 중병을 다루는 방식에도 문제가 없지 않고, 안고 사는 병은 아예 생략되고 있는 게 아닌지 싶다. (중략)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항상 건강함을 연기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글을 읽으며 계속해서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보건교사 안은영>이 떠올랐다. (비록 드라마로만 봤지만) 작품엔 등장인물로 보건교사와 한문 교사가 나온다. 보건교사는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젤리 괴물을 볼 수 있다. 그의 눈에 세상은 젤리로 가득하다. 한문 교사는 다리를 저는 특징이 있으며 학교를 되살리기 위한 행동들을 말 그대로 어찌어찌 수행해낸다. 그들은 언뜻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사회적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결함이 있는 자의 평범하면서도 영웅적인 서사. 어쩌면 당연하지만, 지금까지의 세상엔 생소한 이야기다. 꾸준히 타인을 향한 시선을 상기시키는 부지런한 사고와 언행이 한층 풍부한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게 아픈데, 어떤 아픔만을 끄집어내 분리해 내려는 습관에 역시 의문을 가진다.

 

건강함에 대한 지나친 오만은 스스로가 완전히 독립된 존재라고 오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 능력주의가 과열되면서 한 개인의 독립적이고 탁월한 능력이 필수적으로 되어가는 모습도 이를 극대화하고 있다. 자칫 염려되는 것은 이러한 양상이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능력 없음',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환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개인의 서사는 절대 그 개인에게서만 발생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외부 세계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한 존재의 서사는 비로소 시작되고 더욱 세밀하게 짜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두는 크고 작은 도움을 받게 된다.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항상 다른 존재의 도움과 희생이 순환되고 있으며 그것이 부재하다면 삶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필요한 도움의 종류가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그 부분에 대한 타인의 보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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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과 더불어 <플랫다이어리>라는 웹툰도 떠올랐다. 웹툰 작가 임현은 끊임없이 '더'를 외치며 '#'(반음을 올리는 음악 기호이자 해시태그 기호) 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바쁜 흐름을 좇느라,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졌다고 한다. 이에 자신을 위해 ‘#’한 이야기가 아닌 ‘♭(반음을 내리는 음악 기호)’ 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세랑과 임현의 시선은 한 주제로 이어진다. 지나치게 과잉되고 비대해져 무엇이 본질인지 알 수 없어진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해진 세상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이라고.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

 

이런 맥락에서 책은 자체로 여행 에세이이자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 같기도 하다. 문득 여행의 기초적인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익숙한 생활 반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만이, 즉 최소 해외여행은 가야지 인생의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어쩌면 장소보다는 한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유하고 이해하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해외여행은 결국 너무 ‘당연했던’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경험 축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단순히 외국에 가기만 하면 더 넓은 이해의 폭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지나친 미신이 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운 좋게(?) 여행을 가지 않고도 다채롭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배웠으니, 지금부터 주변에 있는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품고 의심해 봐도 좋겠다. 내 몸, 가족, 친구, 길거리, 여러 가게, 노동 현장 등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존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한순간에 낯설어질 수도 있다.


 

"운이 좋게 간직할 수 있게 된 마음속 이미지들을 품고 아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너무 욕심내지는 않으려고 마음먹는 것이다."

 

 

정세랑은 여행 에세이의 마지막을 여행에 대한 보류로 마무리한다. 너무 사랑하기에 지나치게 많이, 가까이 가면 어쩔 수 없이 손상을 주어 안 된다는 것이다. 즐거운 여행 뒤엔 그로 발생하는 교통수단의 매연과 쓰레기들, 현지인의 사생활 침해 등의 어두운 면이 반드시 존재한다. 섬 자체를 폐쇄한 보라카이나 등반을 제한시킨 제주도의 여러 오름도 그러한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이다.

 

개인의 행동이 개인에게서만 끝나지 않는 시대다. 앞서 말했듯 현재의 구조 아래 관광지가 유지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지인과 현지 동식물 등의 자연이 지나치게 착취되어야만 한다. 자기 행동이 의도와 관계없이 무수한 대상에게 비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응당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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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를 여행한 것보다 작가의 언어를 여행한 것이 더 재밌다고 느꼈던 건 아마 작가의 훌륭한 시선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결과일 것이다. 사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자신만의 고유함을 발전시키는 데 효과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여행 전에 그것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작가의 시선을 먼저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 속 아주 작은 것들에, 작은 관계들에 대해 먼저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무수한 물음표들이 허리를 세우게 되었을 때 더 넓은 곳으로 향해보는 것이다. 그 시선을 가졌을 때는 이미 광활한 이동은 필수적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정점을 지나온 작은 도시를 잔잔한 형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는 것 같다."

 

 

정세랑은 이외에도 색다른 여행지와 함께 다양한 사유 거리를 제시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척도에 대해, 힘든 날들을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 제국주의와 제삼 세계에 대해, 불균형한 노동에 대해, 폭력에 저항하는 이가 느끼는 좌절감에 대해, 타인으로 향하는 시선에 대해,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존중과 폭력에 대한 방관이 희미해지는 지점에 대해, 몸에 부여된 성적인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의 힘에 대해,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남성에 대해.


매력적인 장소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하게 펼쳐진 작가의 사유도 음미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사유의 여행을 끝으로 책의 부제를 완성할 단어들을 고민해 봐야겠다.


( )만큼 ( )를 사랑할 순 없어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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