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빠, 저 등 좀 긁어주세요

아버지는 늘 내 등을 큰 손으로 긁어주셨다.
글 입력 2022.03.0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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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크기변환]아버지와 나.jpg

아버지와 나의 모습

 

   

언제부터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잠을 자러 가기 전에 꼭 아버지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손톱은 얇고 약해서 자주 갈라져 있는 반면에, 아버지의 손톱은 두껍고 뭉툭해서 아무리 긁어도 아프진 않고 시원하기만 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손은 항상 따뜻했고, 내 등을 다 덮을 것처럼 컸다.

 

어쩔 땐 정말 등이 간지러워서였지만, 전혀 가렵지 않은데도 긁어달라고 하는 때가 더 많았다. 사실 요즘 들어서는 간지럽지도 않은 등을 들이대며 너무 간지러워서 못 참겠다는 척을 한 적이 대부분이다. 지금도 아무 때나 등을 들이밀며 등 좀 긁어달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효자손으로 긁으면 얼마나 시원한 줄 아느냐고 하시다가, 못 이기는 척 등을 긁어주신다. 한참을 시원하다며 가만히 있다가 이제 됐다며 뒤를 돌면, 아버지는 너 등 긁고 나면 손톱 밑에 때가 잔뜩 낀다며 손톱을 보여주시고는 웃으신다. 그 말까지 들어야 등 긁기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팔이 긴 덕에 등에 손이 다 닿는데도, 등을 긁을 때는 아버지 손만 한 것이 없다.

 

*

 

한두 살 적에 난 아버지만 보면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일을 해야 할 때면, 아버지가 나를 들어 어머니의 등에 딱 붙여두어야만 울음을 그쳤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되게 속상했었다고 말해주셨다. 그 시절 이후로는 쭉 아빠의 껌딱지였다. 나는 아버지 옆에 꼭 붙어있었고 아버지는 늘 나를 업거나 안고 계셨다.

 

유치원생이던 나는 혼자 자는 것도, 잠이 드는 것도 힘들어했던 터라 아버지와 함께 잤다. 건넛방에서는 어머니와 오빠가 잤는데, 방끼리 완전히 마주 보고 있는 데다가 방문을 모두 활짝 열고 이야기를 하다가 잤기 때문에 엄마와 오빠가 잠든 것이 잘보였다. 아빠는 새벽까지 잠투정하는 나를 업고 작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재우셨다. 엄마와 오빠가 깰까 봐 살금살금 걸으셨을 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집에서, 아버지 등에 업혀, 불투명한 유리 창문에 주황빛 가로등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비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밖에서는 다 큰 언니 행세를 했던 나는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저녁에 데운 우유를 마시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다. 문제는 우유를 먹으며 자다가 깨서 이를 다시 닦거나 발을 닦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했다는 거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를 소파나 변기에 앉혀두고 한 손으론 바가지를 한 손으론 내 칫솔을 들고 직접 이를 닦아주셨다. 그러면 나는 실눈을 뜨고 아빠의 입 모양을 따라 ‘아, 이, 우’하다가 바가지에 '퉤!'뱉고 아빠가 컵에 물을 가져오시면 눈을 감은 채로 물을 머금고 있다가 또 바가지에 뱉었다. 발을 닦는 것은 그다음 순서였다. 아버지가 한쪽 무릎에 나를 앉히고 발을 꼼꼼히 닦아주시면 나는 뒤에 있는 수건을 꺼내는 담당이었다.


오빠와 나를 아침에 깨울 때면 꼭 손 마사지를 해주시면서 깨우셨다. 내 손 하나를 아버지의 두 손으로 잡고는 꾹꾹 누르고, 쓸어내리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튕기고, 손을 호호 불며 긁어주시면 기분 좋게 잠을 깼다. 아빠표 마사지는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등 마사지였다. 척추뼈를 따라 꾹꾹 눌러주다가 똥침 한번, 또 목부터 내려오다가 똥침 한번, 그리고 등을 긁어주시는 것까지가 등 마사지였다. 난 그게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뒤돌아 누워보라고 하시면 잠결에도 얼른 엎드려 누웠다.

 

맨 등을 맨손으로 긁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귀지를 파 달라며 눈을 꼭 감고  어머니의 손을 타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적에 친구들에게 등이 간지럽다고 하면 백이면 백 옷 위로 세게 등을 긁어줬는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맨 등을 맨손으로 긁어주는 것은 아무나 해주거나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 없다는 걸 안 것도 그때 쯤이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마음을 채워주는 데에는 맨 등과 맨손이 필수적이다. 어쩌면 지금도 아빠의 사랑을 한껏 채우고 싶을 때마다 등을 갖다 대고 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바쁘셨다. 평일엔 회사 일로, 주말엔 교회 일로. 새벽에 나가서 밤에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오빠와 나와 놀아주시고는 남는 시간엔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시거나, 서류를 보셨고 그게 아니라면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셨다. 항상 바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와의 시간이나 그의 사랑이 모자란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 동안엔 늘 내 등을 긁어주셨기 때문일 거다.

 

이제는 업어달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커져버렸고, 눈을 감은 채로 이를 닦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침마다 아버지의 손 마사지와 똥침으로 일어나지도 않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큰 손이 내 등을 긁어주신다.

 

글을 쓰며 궁금한 마음에 효자손을 가져와 등을 긁어봤다. 전혀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여든살이 훌쩍 넘고, 등이 너무 간지러운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그 땐 한 번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는 동안은 효자손을 쓸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권현정.jpg

 

 

[권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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