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으로 놓은 과학과 예술의 징검다리 - 빛이 매혹이 될 때

글 입력 2022.03.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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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꽤 진지하게 천문학자나 물리학자를 꿈꾼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낭만적인 이유에서였다. 우주가 너무 너무 광활한데, 거기에 압도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 광막한 우주에서 티끌에 티끌만도 못한 인간이 이 세계에 대해 파헤치려 덤비는 것은 더 좋았다. 아무튼 오래 가진 않았지만, 책도 찾아 읽고 <뉴턴> 잡지도 뒤적거려보고 그랬다. 그때 ‘상대성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하는 것들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는 교양으로 들은 서양미술사 수업에서 배운 모네의 인상주의 그림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림은 좋아했지만 미술과 ‘혁신’을 연결지어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게 한 장소에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을 표현하고 시각의 본질을 포착하려 한 모네의 연작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현대미술의 싹이 움텄고, 미술이 지적인 탐구와 혁신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미술에 ‘매혹’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빛이매혹이될때-표1.jpg

 

한편 저자 서민아 교수는 물리학자의 길로 들어서기 이전에 화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광학, 즉 빛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가 된 저자의 마음 속에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아서, 그는 휴일에는 붓을 드는 '일요일의 화가'로 살아가고 있다. 과학에서의 빛과 미술에서의 빛에 둘 다 매혹된 저자는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2020년)로 과학과 예술 사이의 징검다리를 한 번 놓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빛이 매혹이 될 때>로 ‘빛’이라는 소재에 집중하여 두 분야의 연결을 시도했다.

   

 

어느 화창하게 맑은 날, 뉴턴은 어두운 방의 좁은 틈에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틈새로 삐져나온 한 줄기 햇빛은 하얗게 보였다. 그런데 유리로 만든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은 반대편 벽에서 영롱한 무지개색으로 펼쳐졌다. ... 그의 프리즘 실험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 자체에 모든 색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을 증명해주었다.

 

- 41쪽

 

  

책은 기본적으로 빛의 속성에 대한 과학 이론의 정립 과정과 그를 둘러싼 기술의 발전을 짚으며, 이것이 미술과 화가에게 준 영향을 소개한다. 저자는 친절한 어조로 빛을 둘러싼 여러 논쟁의 흥미로운 쟁점을 설명해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그려 도식화한 그림 자료가 쏠쏠한 도움이 되었다.

 

뉴턴이 가시광선에 색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 이야기부터, 원자의 모형과 관련한 논쟁, 빛이 파동인지 입자인지에 관한 논쟁 등 중요한 광학, 물리학의 핵심 논의를 이야기하면서, 비슷한 시기 예술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저자의 논의는 그 연결이 약간 느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과학자와 예술가에 대한 깊은 존중을 담아, 그들 업의 본질에서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 부분이었다.

 

 

과학자들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실험을 반복하며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이유는 새로운 현상과 원리를 발견하여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술가들이 가졌던 목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73쪽

 

 

앞서 인용한 뉴턴의 프리즘 실험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뉴턴은 왜 하필 어두컴컴한 방에 있었던 걸까? 틈 사이로 햇빛이 한 줄기 새어 들어올 정도로 밖은 밝았는데. 알고 보니 당시 뉴턴은 ‘빛’을 파헤치는 데에 완전히 몰입해 있어서, 눈이 상할 정도로 태양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눈이 너무 아파 그는 방안을 어둡게 하고 3일간 틀어박혀 있었다고 한다. 뉴턴에 관한 기록과 설은 워낙 각색되고 와전된 것들이 많아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가 빛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 결코 한 순간의 우연이 아닌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반복과 몰입 끝에 얻은 결과임을 굳게 믿는다.

 

지난 100여 년간 현대미술의 혁신을 가져온 예술가들의 태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마네와 세잔, 뒤샹 등의 사례를 통해 이 예술가들이 전통적으로 당연하다 여겨왔던 상식과 관습, 권위에 도전하며 인식을 확장시켜왔음을 이야기한다. 몇 차례에 걸쳐 과학자와 예술가의 근본적인 정신과 태도는 같은 것이라 강조하는 책을 읽으며, 과학에도 예술에도 한 번씩 빠졌던 내가 동경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몬드리안은 정해진 형태나 구조가 아니라 비례와 균형만으로 완벽한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관점 역시 고전역학보다는 양자역학의 세계관에 더 부합하는 듯하다.

 

- 192쪽

 

 

… 인간이 세계와 분리되지 않고 물리적 현상에 개입한다는 양자역학의 세계관은 철학과 예술 등 다른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다양한 인식의 혁명을 불러왔다. 관람자의 관점이 개입됨으로써 예술작품이 완성된다는 철학을 피력했던 뒤샹 역시 그러한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 223쪽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도전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마지막 부분의 양자 역학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직관적으로 믿어왔던 거시세계의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미시세계의 양자물리학에 관한 내용은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도 여전히 모호하고 아리송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인간의 관찰 행위 자체가 물리적인 현상에 기여한다’ 등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나올 때 적절한 현대미술가의 사례를 빗대어 설명한 부분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한편으로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 자체가 과학, 예술 구분할 것 없이 오늘날의 철학적 흐름의 핵심이라는 것까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과학사와 예술사의 타임라인을 중첩시켜 결국엔 철학의 여러 분과가 비슷한 방향과 보폭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해설해준다.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마르지 않는 지적 자극을 주었다.

 

 

Antony_Gormley_Quantum_Cloud_2000.jpg

 

 

책에서도 언급된 앤서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작품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치고 싶다. 영국의 현대미술가 곰리의 작품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양자 구름> 시리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 이 작품을 실제로 양자물리학자인 바실 힐리(Basil Hiley)와의 토론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인 ‘관계’와 ‘얽힘’을 서로 얽혀 뻗어나가는 철제 유닛으로 시각화한 <양자 구름>은 현대에도 여전히, 혹은 더더욱 예술과 과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예시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러니까 과학과 예술은 서로에게 영감의 원천이며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는 동반자이기도” 한 것이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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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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