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언젠가 떠났던 여행

풍경 사이에 서서
글 입력 2022.02.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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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사이에 서서



언젠가 떠났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평소 카카오톡 프로필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는데, 오랜만에 본 내 배경사진이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문득 그때 떠났던 여행이 기억났다. 떠난지는 꽤 오래됐지만 이제라도 그 여행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졌다. 더 늦기전에 무언가로 남겨두고 싶어졌다. 그 때 떠난 여행의 의미는 뭘까? 내 삶에 남긴 흔적은 어떤게 있을까?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의 무늬들을 더듬어보고 싶다.


여행이라니. 이제는 꽤 낯설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안 간지가 한참이다. 하루에 확진자가 16만명씩 나오는 요즘은 서울에서 약속이 생기면 운이 안 좋으면 확진이고, 운이 좋아야 동선이 겹친다고 한다. 코로나 초기에는 사람이 없는 외진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바로 집 앞만 나가도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면 여행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제는 여행 갈 돈도 있고 마음도 있는데 가지를 못한다고, 서로 그렇게 아쉬워한다. 졸업하고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보니 전처럼 일상에서 만나 밥 한 끼 같이 먹는게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시간 맞춰 인적 드문 글램핑장에서 고기라도 구워먹으려 했는데 친구 녀석 하나가 확진이라 또 무산됐다. 여행 가기가 이렇게 어렵다 보니 이전에 떠났던 여행이 더 아련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실 코로나 전에도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 했던 것 같다. 20대 초반 대학생이던 때는 돈도 많지 않았고, 왠지 훌쩍 떠날 용기도 없었다. 그나마 몇 번 찾아가 본 여행지가 강릉이랑 제주였다. 여행이면 좋은 곳,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여행에서도 익숙한 곳을 찾아가는 건 내 습관이었다.


기억해보니 그 여행은 나의 두 번째 제주였다. 그때는 분명 제주로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첫 번째 제주를 ‘찾아’간 것 같다. 함께 바라봤던 풍경이 좋아서, 그리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쪽으로 발걸음이 갔다.


혼자 찾아간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맛집은 그리 맛있지 않았다. 바다에 몇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있으면 손이 시렸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면 꼭 해봐야지 하고 꿈꿔왔던 혼자만의 여행이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지금이라면 훨씬 더 좋은 시간을 보냈을텐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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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내 프로필 배경사진에 걸려있는 그 사진이다.


한 쪽은 화사한 꽃밭이 자리잡은 모습이고, 한 쪽에는 시들고 마른 풀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속 시선은 그 사이를 가로질러 바라보고 있다. 그 때의 내 상태가 그랬던 것 같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기만 해도 화사하고 밝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왠지 잿빛의 풍경만을 바라봤다. 간혹 밝은 풍경을 바라볼 때도 시든 풀들 위에 발을 딛고 서있었다.

 

지내다보면 언제나 어떤 길에나 그런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알면서도 잘 되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으므로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몬딱과 바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와 떠돌이 개



나는 뚜벅이다. 20살에 면허는 땄지만 면허가 생겼다고 해서 차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라서 면허증은 나에게 또 다른 신분증에 불과하다. 면허학원에서 말고는 핸들을 잡아보지도 않은지라 여행에서도 혼자 차를 렌트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며칠동안 걸어다녔다. 정말 많이 걸었다. 못해도 하루에 20km씩은 걸어다녔던 것 같다. 차 말고는 다니지도 않는 외진 해안도로를 따라 멍하니 발만 움직였다.


한참을 걷다보면 이슬비가 내리기도 하고, 시골 마을의 강아지가 곁을 따라 걷기도 했다. 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다가 내가 관심을 주면 한 발 물러나고, 모른 척 걸으면 다시 따라붙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가 대부분 그런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을 주고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지만, 흘러가는 대로 인정하고 그렇게 둘 때 비로소 꽃이 피는 관계. 그 날 이후로 너무 많이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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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몬딱주스다. 100%착즙주스인데 반쯤 얼어있는 주스를 사서 슬러시로 먹는걸 좋아한다. 걷고 걷다 힘들 때 달고 시원한 상큼함이 나를 달래준다. 고등학교때부터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었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는 그만한게 없다. 베라보다는 집 앞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하지만, 제주도까지 갔으니까 이런 특별함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아는게 참 중요한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찾아와도 내가 스스로를 달래줄 수 있다는게 좋다. 고작 몇 천원짜리 쥬스 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파도소리만 들리는 잔잔한 바다도, 해변가의 자잘한 소음도, 손에 쥐고 태우는 스파클링도 나를 기쁘게 한다. 해가 지날수록 더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그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기억이 난다. 여행에 가면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것 같다. 첫 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나보다 두 살 위의 형은 다음날 기꺼이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줬고, 그 다음날 만난 외국인들과는 야식으로 사온 간식거리를 함께 나눠 먹었다. 반나절 정도 같이 여행을 하다 헤어지며, 육지로 돌아가면 꼭 다시 만나자던 약속을 하던 일행도 있었는데 번호는 없어진지 오래고 이제는 얼굴도 어렴풋하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때 나는 아직 20대 초반인 주제에 인생의 많은 부분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서른에 일을 그만두고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던 사람들을 보며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괜히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면 그 사람들을 떠올렸다.

 

조만간 또 여행을 떠날 일이 있을까. 쉽지는 않을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떠났던 여행으로 배운 것들이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더 나은 여행을 꿈꾸고 기대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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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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