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때의 우리는 어땠을까 - 영화 '소피의 세계'

기억하지 못해도, 그때보다는 잘 지내기를.
글 입력 2022.02.2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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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시간의 발견은 사소하고 우연한 곳에서 시작된다.

 

수영(김새벽)의 경우에는 사진이었다. 한 여행 블로그에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은 2년 전 수영의 집에서 나흘을 지내고 간 여행자 소피(아나 루지에로).

 

소피의 글과 사진을 통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남편 종구(곽민규)와 자신의 모습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는가?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떠한가? 영화는 이 질문들의 힘으로 작동한다.

 

아담한 크기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 거실과 방 3개짜리 집에 사는 종구, 수영 부부와 그들 사이의 외부인 소피. 이른 아침, 소피는 수영과 거실 탁자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접시를 치울 때가 되어서야 방 안에서 종구가 등장한다.

 

가정집에 지인도 아닌 여행객, 흔치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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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관련된 묘한 긴장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 부부는 집을 내놓았고, 집 문제로 갈등한다.

 

널찍하고 채광 좋은 그들 집의 전세 자금을 대준 것은 종구의 어머니. 하지만 최근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수술비로 돈이 다시 필요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종구는 그렇지 못한다. 수영에게 묻는다. “우리 엄마 원망스럽지?”


수영은 아니라고 하고 종구는 계속 추궁한다. 격한 감정들이 오고 가고, 수영은 결국 집을 나가야 해서 아쉽다는 점은 인정한다. 고성 끝에 집이 한바탕 눈물바다가 된 장면을 소피가 잠깐 놓고 온 카메라를 챙기러 들어오며 마주한다.

 

소피는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소피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시선과 기억은 일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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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소피가 몰랐던 그들의 문제도 있다. 영어에 능숙한 수영과 그렇지 않은 종구가 소피를 상대하며 발생하는 문제다.

 

종구는 수영이 세 사람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고, 자신을 빈 그릇만 치우는 ‘가정부’ 취급했다며 화를 낸다. 수영이 종구를 ‘무시했다’와 ‘무시하지 않았다’ 사이에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역시 상황은 무승부다. 소피는 다음 날 아침 종구와 통성명을 하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결된 상황만을 목격한다.

 

다시 세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보자면, 그들의 관계는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형성됐다. 수영, 종구 부부는 여행객 소피에게 숙소를 마련해주며 돈을 받았을 것이다. 소피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얻게 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자본과 필요로 얽힌 관계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피가 (대가 없이) 그들을 위해 제삼자에게 자신은 수영, 종구 부부의 친구라고 거짓말을 해주는 상황을 부각한다.

 

영화는 겨울의 일부를 공유한 따뜻한 관계로 세 사람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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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시선이 대체로 그들을 향한 것은 맞지만, 그 집, 그들의 세계에서만 살지는 않는다. 밖에 나간 그는 또 그 자신대로 일상을 보낸다. 북촌을 걸으며 옛 인연 조(문혜인)도 만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주호(김우겸)도 만난다. 나흘 동안 소피가 꾸린 세계는 작지만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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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일상과 수영, 종구의 일상. 소피의 블로그를 마주치기 전, 수영과 종구에게 2년 전 겨울은 어떻게 남아 있나. 추억조차 하지 않고 잊어버렸나 아니면 그때의 순간들로 더 단단해졌나. 두 부부의 힘겨운 일상이 소피에게 특별하게 다가가고, 소피의 존재 또한 두 부부에게 특별하다.

 

<소피의 세계>는 일상 사이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타인의 시선을 직시하는 영화다. 일상에 나타난 잠깐 머무르다 떠난 낯선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아도, 그때 우리가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들도, 나도 그때보다 잘 지내기를.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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