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용접봉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박예지 작가

박예지 작가의 말(horse) 너머 말(language) 이야기
글 입력 2022.02.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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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나무껍질 같기도, 적당한 침식과 퇴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철판 같기도,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뭉툭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크고 작은 다양한 입체 작품들. 어떻게 이런 질감이 만들어지는 걸까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현장에 계신 작가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작가님, 이거 뭘로 만드신 거예요?"

"용접봉이요."

 

그곳에서 박예지 작가를 처음 만났다. 11월 삼청동 북촌전시실에서 열린 개인전 <내가 선택한 삶>에서, 그것도 어쩌다 예술로 산책을 하다가. 용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더욱 그것의 낯선 질감과 형태를 오목조목 뜯어보게 됐다.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박예지 작가는 그 자리에서 아주 친절하게 작품 비하인드스토리를 풀어주며, 어떻게 용접으로 작품을 만드는지 작업 영상까지 보여주었다. 여러모로 인상 깊었던 나머지 그날의 만남을 개인적으로 정기 연재 중인 [어쩌다, 예술로 산책] #7. 글에 담기도 했다.

  

이후로 두 번째 만남이다. 이번 만남에서는 첫 만남에서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모아 박예지 작가에게 물었다. 용접봉으로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박예지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보자.

 

*

 

수많은 다양한 소재들 중 하필 ‘용접’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용접을 다루던 첫 느낌, 혹시 기억나시나요?

 

아는 지인이 카센터를 하시는데, 그곳에 용접공이 오실 때가 있어요. 그때 용접공한테 “저 용접 배우고 싶다."라고 말했죠. 그래서 그 카센터에서 처음 용접을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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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지 작가는 처음 카센터에서 배운 '아크 용접'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것도 주섬주섬 노트를 꺼내시곤 친절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아크 용접이라고 용접봉이 있고, 이 용접봉에 전류를 주는 '홀더'가 있고요. 이 홀더가 접지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용접할 부위를 '모재'(용접의 재료인 금속판)라고 하거든요. 이 모재에도 전류가 흘러요. 그래서 맞닿은 전류가 '아크'(방전의 한 형태)를 일으켜서 용접이 되거든요. 근데 용접공이 제게 용접봉을 주시면서 "이제 용접을 해봐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구하기 힘든 옛날 모델의 지프차에 지져보라고요.

 

철은 딱딱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딱딱한 채로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이게 훅 녹으면서 제가 중심을 잃었어요. 녹을 때의 그 느낌이 너무 신기했죠. 왠지 철이라는 게 딱딱하지만 제가 다룰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확 올라간 거예요. 미리 용접이 무엇인지 알고 갔으면 ‘원래 그런 거니까’라고 받아들였을 텐데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을 접했을 때 그 느낌....

 

더 확 와닿잖아요.

 

그렇죠. 내가 다룰 수 있겠다 싶어서 다가갔죠. 용접의 개념이 a와 b를 붙여서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저는 이 용접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거죠. 용접물이 녹아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지는 게 좋은 거예요.

 

(그리고선 다시 처음 용접을 다루던 날들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초반에는 (용접봉을) 잘 다룰 줄 모르다 보니 형태감이 어눌한 거예요. 촛농을 세로로 쌓고 싶다고 쌓이는 게 아니듯 말이죠. (참고로, 촛농을 녹이면 옆으로 퍼진다.) 그리고 당시에는 용접으로 쌓아 올릴 때 입체적인 모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내부를 채워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20cm 정도 크기의 말 한 마리를 만드는데 5시간 넘게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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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넘게 작업한 20cm 정도 크기의 말 ⓒ박예지

 

 

근데 5시간 동안 녹이고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사람의 삶 같다고 느껴진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말을 잘하면 사이가 좋아지지만, 반면 말을 잘못하거나 차갑게 하면 다시 딱딱해지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본인의 바운더리 안에서 삶을 비유하잖아요. 그렇듯이 저도 용접할 때 녹았다 다시 딱딱해지는 과정이 그렇게 해석이 되더라고요. (용접의 과정이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2017년 3월 15일, 인사동 성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매해 개인전은 물론 단체전 및 아트페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세요. 지금까지 해 온 작업들 중 인생의 변곡점이 될만한 인상 깊은 작업이 있었을까요? '이것만은 꼭 간직하고 싶다'하는 작업도 좋을 것 같아요.

 

유독 좀 생각나는 게 제 첫 작업이죠. 첫 전시했을 때 작품들이 많이 팔리긴 했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가 일부러 안 파는 작품이 있었어요. 저한테 제일 마음에 갔던. 그래서 그 작품만은 안 팔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지인에게 갔죠.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돈을 좀 더 빨리 벌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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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5시간 넘게 작업했다던 그 말, 결국 지인에게 돌아갔다. ⓒ박예지

 


다시 데려오나요? (웃음) 다시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그 작품에 애착이 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유독 눈에 밟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작품을 보면 초심의 설렘이 기억나기도 하고. 아무래도 저와 오래 붙어 있었기도 하고요.

 

“제 일상, 사람들과의 관계, 현재 삶과 나의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작업 방식으로 반영된다.”라는 말을 봤어요.

 

아직까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너무 많아서 관계적 질문을 계속 풀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나이 또래 작가들의 작가노트를 보면 거의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입에서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고립된 상태에 꾸준히 있어야 되는데 그런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더욱 자신의 시선을 표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이제 저만의 것을 찾게 되겠죠. 초반에는 테크닉적인 부분에 많이 기울였다면 조금씩 내가 어떤 방식으로 나의 것을 표출할지에 중심이 서겠네요.

 

전시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을까요?

 

제가 만드는 작품이 철인지 모르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이걸 '캐스팅(찍어냄) 했겠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되게 많으세요. 입체 작업하시는 분들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용접으로 쌓아 올린 거예요."라고 말하면 신기하게 보시죠. 그리고 선 작업을 한 작품은 사람들이 옷걸이로 만든 줄 아세요. 철사 공예나 철사 작업으로 생각하시기도 하고. 또 철을 다루셨던 분들은 지나가시면서 “저게 무슨 작업이야” 이렇게 말을 던지시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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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으로 선 작업도 한다 ⓒ 박예지

 

 

어떤 의미로 던지신 말일까요?

 

용접의 형태가 어눌하잖아요. 각이 잡힌 채로 ‘이게 컵이다’ 또는 ‘이게 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웅장함도 없고 약간 가냘프고 부서질 것 같은 모습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예지님이 생각하시기에 ‘용접’으로 만들어낸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용접을 다뤄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매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뜻밖이었다.

 

“근데 사실 저는 용접의 매력보다는 작가의 매력을 더 표출하고 싶어요.”

  

용접보다도 작가의 매력을 전하고 싶다는 박예지 작가. 디자이너에서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그의 사연은 무엇일까.

 

 


"작가, 너무 매력적인 직업"... 디자이너에서 작가로 전향하게 된 사연



아버지가 사업가이시다 보니 저도 돈을 좇게 되고 고등학교때도 대학교 진학할 때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어요. 학교에서도 "저는 공간 디자이너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거든요. 그때는 디자이너 중 제일 최고인 것 같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Andrée Putman (앙드레 풋맨)'이라는 분이 계세요.그분이 오브제 디자인부터 비주얼 디자인까지 다 하시는, 디자이너의 끝판왕이거든요. 그분을 동경하면서 결국 공간 디자인 쪽으로 진학을 했어요.

 

사실 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이너로 살았지만 돌아보면 저는 '이 디자인이 옳다'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디자이너보다는 확실히 나의 것을 밀고 나가는 작가가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에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추천해 준 작가를 선택했어야 했던 거죠. 프랑스 유학 시절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랬거든요. “넌 작가해야 돼.”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때 “작가는 무슨, 굶어 죽을 일 있어요? 저는 공간 디자이너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거든요. 결국 당시에 제가 택한 것은 돈이었던 거죠. 그렇게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돈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1년 프리랜서, 1년 회사 다니고, 1년 승마장에서 일하고, 1년 용접봉으로 공부하고, 1년 용접 학원 다니고. 그렇게 1년씩 끊어가면서 생활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면 항상 물었어요. “이제 지금은 뭐해?”라고요. 그러다 작업을 하기 시작한 순간 제 지인들이 다들 저한테 “야, 너한테 딱 어울리는 직업을 찾았구나.”라고 말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까지도 1년씩 끊어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해왔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거 더 하는 작가로 살고 있죠.

 

미술계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관계자분들을 만나면 '작가로 사는 거 힘들지 않냐' 이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보통 작가들은 작가의 삶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적극 추천이거든요작가야말로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삶을 알아갈 수 있는 너무 매력적인 직업이라서..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느낀 게,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결국에 사람은 죽잖아요. 죽음이라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죽음에 다다랐을 때 '나 잘 살았어'라고 눈 감을 수 있는 게 작가로서의 삶이 아닐까. 다른 방면으로 보면 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작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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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작업 중인 박예지 작가 ⓒ 박예지

 

 

저는 디자인을 하다가 전업 작가 된 사람이라 초반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디자인 작업에는 주어진 예산이 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 존재가 삭제된 상태에서 예산과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작가로 살면서 예산이나 누군가의 요구도 없이 오로지 제 스스로의 힘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어떤 틀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뭘 하려고 그러니까 어려운 거예요. 그러다 저의 작가적 기질을 이끌어 주신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래서 하게 됐어요.

 

근데 그냥 하면 사람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풀어지잖아요. 그래서 그 작가님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아침 8시까지 작업실에 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전시 일정을 잡자.” 그러니까 저는 처음부터 작가로서의 생각을 키워나간 게 아니라 작가의 삶을 살면서 작가의 생각을 키워나가게 된 거죠.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작가님께 감사하겠어요.

 

진짜 감사하죠. 작가님은 저에게 제대로 된 코멘트를 해 주세요. 좋으면 좋고, “이게 무슨 작업이냐.”라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근데 제가 개인전을 많이 하면서부터는 “이젠 머리가 컸다고 내 이야기도 들지 않을 거잖아.”라고 미리 던지시고 코멘트를 말씀해 주세요.

 

그럼에도 계속 꾸준히 코멘트를 해 주시네요.

 

왜냐하면 제가 여쭤보니까. “이 작업은 어떤 것 같습니까?” 이렇게요. 그래서 늘 말씀만으로도 항상 너무 감사해요. 작가님의 말로 용기를 얻고 성장했죠.

 

 

  

"있는 그대로를 보세요" 박예지 작가의 말(horse) 너머 말(language) 이야기



작가님의 작품에는 '말'의 형상이 자주 나타나요.

 

만들고 나면 항상 형태가 말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왜 자꾸 말에 연연하고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저한테 영향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조금 우울하긴 했더라고요. 세상과의 커넥션이라고 할까요, 그때 대가들의 인터뷰를 유튜브로 찾아보게 됐어요.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이런 거예요. “젊은 작가들아 너네들이 하고 싶은 걸 해라.”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말의 형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어떤 특정한 목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말을 만들고 싶었으니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을 다녀오면서 초반에는 단어나 속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조금 힘들었어요. 그래서 말(언어)에 대한 무서움이나 두려움도 있고. 언어로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에 제가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말(언어)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고. 아직도 말(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말의 형상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너무 말장난 같지만 모든 것들이 다 얽혀 있어서.

 

그러니까 알게 모르게 내 삶의 모든 것들이 다 녹아 들어서 제 손길을 거친 형태가 말(동물)이 된 거죠. 다만 보이는 형태가 말인 것이지, 사람들이 거기에 ‘왜 하필 말일까’하고 연연하며 보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말들의 모습이 조금 기괴하게 나타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다리가 길거나 아니면 목이 길어서 이게 기린인지 말인지 모르게. 굳이 말이라고 특정 지어서 보지 않도록 표출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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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지 작가 개인전 '내가 선택한 삶'에서

 

 

겉으로 본 건 분명 동물의 말(horse)의 형태였는데 작가님의 말을 듣고 보니 언어의 말(language)로도 통하는 것이 정말 말장난 같기도 하네요. 작가님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과 그 너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느낌이 진짜 다를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러다 보면 이제 제 작업을 말(동물)로 보지 않고 그냥 그 작업 자체가 풍기는 느낌을 찾게 돼요. 그래서 제 작업을 꾸준히 봐오신 분들은 “무슨 느낌이 나네” 이런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무슨 느낌이 나네”라는 건 보통 작가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만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작품마다 풍기는 느낌도 달라지는 거겠죠?

 

그렇죠. 아무래도 작가의 손길이 닿고 작가의 시간과 노력이 묻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느낌'이 풍겨 나오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코로나 시대에 같이 살고 있고 지금 이 순간 나올 수 있는 작업이 또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모든 작가들한테도 다 동일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가들이 사람들한테 “있는 그대로를 보세요”라고 말하는 게 내가 만든 이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던지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에는 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각자의 시각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다를 뿐이니까.

 

그럼 혹시 다른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갈 때 있는 그대로를 보시나요?

 

저는 작가님들 전시를 가면요. 일단 서문을 안 읽고 그냥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돈 다음에 다시 서문을 읽고 의도가 이런 거였구나라고 이해를 해요. 이해를 하고 싶을 때는 서문을 읽고 가고, 아니면 제가 느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러면 서문을 읽지 않고 그냥 나오기도 해요.

 

신기하네요. 사실 작가님들은 다른 작가님들의 전시를 보러 갈 때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거든요.

 

사실 제가 진짜 좋아서 찾아가는 작가 전시 아니면 거의 안 가고, 아트 페어를 가는 걸 좀 더 좋아해요. 왜냐면 아트페어는 정말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곳이잖아요. 그래서 가면 그곳에 있는 모든 작품을 소지하고 있는 것 같고. 그냥 되게 풍만한 느낌이 좋거든요.

 

 

  
“지금 우리는 예술을 하고 있네요”


저희 아트인사이트 슬로건이 ‘문화예술은 소통이다’인데요. 문화예술은 소통할수록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문장이에요. 예술이란, 대체 뭘까요. 박예지 작가님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삭막한 삶을 풍요롭게 해줘요. 사람이 풍요로워지면 예술을 찾는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삶이 풍요롭기 위해서 예술을 찾아야 된다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표출해낸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고 꿈꾸고 슬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그런 게 예술이 아닐까. (저는 음식도 예술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구체적으로 언제 예술이 풍요롭게 해준다고 느끼는지, 특정한 경험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박예지 작가는 '이건, 예술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다양한 순간들을 자유롭게 나누었으며, 그의 말을 가감 없이 나열했다.)

 

1. 화장실에 타일들이 있잖아요. 타일에 마블 문양을 보면서도 상상이 가거든요. 이상한 아저씨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찾았다는 발견의 기쁨을 느끼기도 해요. 그러면서 즐거워하고. 본인이 발견한 기쁨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게 예술이 아닐까.

 

2. 아 오늘 보고 온 전시에서 작가님이 치약을 전시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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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갤러리 traart(트라아트)에서 열린 전시 "어느 날 치약을 보았다" ⓒ 박예지

 

 

이 넓은 공간에 치약 하나만. 근데 사람 모습 같잖아요. 본인이 너무 힘들 때 치약을 힘겹게 짜고 있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그 순간 엄마가 치약으로 보이더래요. 그 모습을 치약으로 표현한 거죠. 찰나의 순간 작가가 발굴한 것으로 공감대를 끌어오는 것이 예술이 아닌가. 그때의 슬픔이나 고통을 유머스럽게 풀어내고. 그걸 공유하고.

 

3. 사실 우리가 맛있는 밥 한 그릇 먹을 때도 "맛이 예술이다!"라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힐링을 하죠. (예술은 힐링의 순간임을 강조했다. '예술=힐링')

 

4. 어떤 분들은 작품을 보면서 울기도 하잖아요. 공감대가 이루어졌다는 의미거든요. 그렇게 커넥션(소통)이 이루어졌을 때도 예술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5. 저는 작업하는 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 자신을 더 빨리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작업을 하면 죽음과 더 빨리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 저는 솔직히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되게 죽고 싶었어요. 그러다 이 작업을 하면서 '삶이 고통만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고 삶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자기 내면을 못 돌아보고 죽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중요한 것 같고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지금 우리는 예술을 하고 있네요.

 

2022년 박예지 작가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올해 계획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외국 가서 전시하고 싶어요. 워낙 제가 만드는 작품이 입체이다 보니, 한국에서 만들어서 운송하는 것보다 그곳에서 만들어서 바로 전시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박예지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게 될 다양한 문화예술 애호가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오셔서 하시고 싶은 말 다 하세요. 오셔서 작품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도 좋고, 굳이 작품을 보고 안 느껴도 돼요. 그냥 소통의 장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감상하고 이야기하다 가세요.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을 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제 작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이 시대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이슈가 중요한지 이런 것들을 듣고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예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SNS에도 쓴 적이 있는데요. 좀 더 굵고 힘차게 때론 하늘하늘 한 듯 모든 고난과 역경을 받아낼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와 큰 땅이 되고 싶어요. 모든 사람을 다 포옹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본 인터뷰는 대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전문 필진_신송희.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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