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예술로 산책] #7. 다음 계절이 궁금해지는 곳, 삼청동

박예지 개인전 <내가 선택한 삶> / 박진엽의 벽화 <나의 정원>/ 권소영, 배현철, 이강욱 작가 드로잉전 <11월의 산책>
글 입력 2021.11.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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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예술로 산책》은 매달 격주로 기고되는 예술 에세이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좋았던 일상 속 예술 조각 또는 흔적을 보고 느끼며 열렬히 사유한것들을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합니다.

 

*감상 포인트: 계획된 산책로는 없습니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습니다. 뜬금없이 걷기 시작할 수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도중에 지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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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겨울은 이맘때쯤 찾아왔다. 얼어붙은 공기의 촉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 시절. (지금과는 확연히 차원이 다른 추위였다.) 아침부터 학교 정문은 분주해 보였다. 추위 때문에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발간 볼들이, 긴장감이 잔뜩 서린 그들의 눈빛으로부터는 살기가 교실 곳곳에 돋아나는 듯했다. 모두의 염원을 담아 응원하는 그날. 그날은 이제껏 쌓아온 시간과 노력의 빛을 발하는 순간, 다시 말해 이날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될 만큼 그들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해가 저문 밖은 아침보다 더 추웠지만 활기를 띠었다. 학생들은 학교 정문 바깥으로 나갔고 그곳에서는 그들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팔 뻗어 맞이했다. 아까와는 달리 그들의 눈빛에서는 안도감과 약간의 감동이 차오르는 듯했다. 역시나 시험은 시험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자마자 이제껏 쌓아온 긴장감이 한 번에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피로감이 몰려왔고 금세 허기졌다.

 

날이 추운 탓에 더욱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세하게 코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얼어붙은 공기마저 감수할 수 정도로 콧김을 거세게 들이마셨다. 그리고선 본능적으로 떡볶이 냄새를 찾았다. 아니, 떡볶이 냄새가 내 코 끝을 스쳤다. 그날의 떡볶이 냄새를, 떡볶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하루 종일 추운 공기 때문에 얼어붙은 코 안을 하루 끝에서야 따뜻하고 매콤 달콤한 떡볶이 냄새로 후루룩 깊숙이 채운 그날. 냉기와 따스함이 동시에 코 끝에 서린 추억이 이맘때 즈음 생생하게 살아난다. 나에게 이곳, 삼청동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7년 전 그날의 추억에 머물러 있었다.

 

‘삼청동이야말로 갤러리의 성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기꺼이 집에서 거리가 먼 곳까지도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가 생긴 나는 그제서야 직접 내 손으로 갤러리를 찾았고 발을 직접 내딛기 시작했다. 그렇게 7년이 지난 지금, 2021년 11월 17일 다시 삼청동 길을 걸었다. 뚜벅.

 

*

 

어쩌다, 예술로 산책 #7. 다음 계절이 궁금해지는 곳, 삼청동

 

◈ 박예지 개인전 <내가 선택한 삶>

◈ 박진엽의 벽화 <나의 정원>

◈ 권소영, 배현철, 이강욱 작가 드로잉전 <11월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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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종로구에 속한 동으로, 북악산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주위에는 종로경찰서, 헌법재판소, 북촌한옥마을이 위치해있다. 2000년대 초 한옥 개조사업에 힘입어 미술관・화랑・카페 등이 들어서며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 소비 공간이 되었다. 골목마다 들어찬 갤러리와 예술가 작업실, 카페, 조그만 가게들로 독특한 개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대형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오더니 2018년부터 빈 상가가 급격히 늘어나고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참고문헌: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공공디자인 관점의 로컬플랫폼의 사례 연구 - 서울의 세대별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 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집, 2021, vol.16, no.1, 통권 70호 pp. 155-168)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그길로 쭉 걸었다. 7년 전 그날만큼 춥지도 않았고 심지어 가을의 정취조차 남아있었다. 끝까지 물든 잎을 붙들고 있는 나무들도 있고, 동시에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도 있었다. 그렇게 길 위로 무수하게 떨어져 한 폭의 무덤을 이루던 낙엽의 길을 걸으며, 이제 정말 가을의 끝자락이구나 체감하였다. (일주일 사이에,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겨울이 찾아왔지만...)

 

헌법재판소를 지나서야 나온 큰 길 따라 쭉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초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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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조각 1. 용접봉으로 연결되는 마음들

- 박예지 개인전 <내가 선택한 삶>



문이 열리고 마주한 낯선 풍경에 살짝 긴장했다. 곳곳에 놓인 크고 작은 물체들. 거친 나무껍질 같기도, 적당한 침식과 퇴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철판 같기도 하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보면 생각보다 동글동글한 모양에 화산재에 덮인 암석 같기도 하다. 도대체 뭘로 만들면 이런 느낌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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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거 뭘로 만드신 거예요?"

“용접봉이요.”

 

박예지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재료는 ‘용접봉’이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용접봉을 녹여 만든 것들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용접봉을 녹여 차곡차곡 쌓아올릴 수도, 구부려 이어붙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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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에게 말은 조금 특별한 존재이다. 말타기를 좋아하는 것도, 말의 어떤 특정한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말이 있었다. 이걸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연스럽게 말에 대한 애정이 생겼고, 이번 전시에서도 곳곳에서 다양한 말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조금씩 다른 형태로.

 

대학교 공예 수업에서 용접을 경험해 본 적 있다. 구리선을 녹여 ‘나’를 표현하는 작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였고, 구리선을 녹이는 것은 꽤 간단한 작업이었다. 다만 구리선을 녹이는 동안만큼은 오롯이 그곳에 집중할 수 있는 진득한 정신과 끈기가 필요했다. 당시 온몸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경험한 그 찰나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단단한 고체 형태의 구리선이 뜨거운 불에 닿는 순간 아주 천천히 액체로 녹아내리는 진득한 순간을, 그리고 산소와 맞닿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곧바로 다시 딱딱하게 굳어지는 순간을. 당시의 경험이 너무 신기해서 구리선이라는 재료가 매력적으로 느꼈다.

 

물론 구리선과 용접봉은 전문적인 면에서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작가님 또한 고체에서 액체로 녹고 다시 액체에서 고체로 굳어지는, 용접봉이 가진 성질의 매력에 빠진 후로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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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움직인다. 그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용접봉이 녹았다 굳어지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미묘한 감정의 밀고 당김을 느끼셨다는 작가님.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용접봉으로 만들어진 작품 특유의 투박한 인상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작가님의 따스한 시선과 생각들도 함께 작품 안에 녹아들어 켜켜이 쌓인 느낌이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선택한 삶>은, 이곳에 전시된 모든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닌 작가님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온전히 완성된 느낌을 받았다. 용접봉과 함께 녹아든 마음과 그것으로 만들어 낸 크고 작은 조각 작품들에는 그가 걸어온 인생은 물론 앞으로 걸어 나갈 삶의 방향 또한 함께 녹아들어 있는 듯했다.

 

용접봉이라서 구현해낼 수 있는 독특한 질감, 느낌, 인상이 있다. 이 모든 질감과 느낌 모두 정확히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그것 자체로 보고 느끼는 재미가 풍성하다. 그러니 삼청동에 갈 일이 생긴다면 이곳에 들러 직접 눈으로 감상해 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전시는 북촌전시실에서, 다음 달 5일까지 진행된다.

 

 

 

◈ 예술 조각 2. 주차장에 피어 있는 정원

- 박진엽 벽화 <나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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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다시 계속 걷다 회색빛 벽돌에 그려진 강렬한 색채의 그림에 멈칫했다. 물감을 튀긴 것 같기도, 움직임을 크게 하여 과감한 붓칠을 한 듯한 모양새의 화려한 색감 위에는 토끼 비슷한 형상의 검은 테두리가 그려져 있었고, 프랑스어로 ‘Avant Garde (아방가르드)’라고 적혀있었다.

 

아방가르드란,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으로,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일어난 다다이즘, 입체파, 미래파, 초현실주의를 통틀어 이른다. 미술에서는 이러한 양상을 일컬어 ‘전위 미술’이라고 하기도 한다. 왜 이 단어를 벽에 새긴 걸까 생각하며 동시에 발걸음을 몇 마디 움직이니, 벽돌 끝에서 공간이 확 트였다.

 

빽빽이 들어선 회색빛 차량들이 있는 공간. 누가 봐도 주차장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향연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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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기하학적인 문양, 화살표, 해골 모양, 어떤 얼굴의 형상들, 그리고 드물게 영어 글귀도 새겨져 있었다. 마치 낙서한 듯한 느낌의 거침없는 드로잉 탓에 정확히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세상을 인지하는 순간, 동시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생각과 감정들이 생겨난다. 외롭고 자유로운 공간이다.

 

- 박진엽, 나의 정원(My Garden), 201510

 

 

박진엽 작가에게 ‘나의 정원’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이 담긴 외롭고 자유로운 공간이다. 외롭지만 그럼에도 휘갈기는 붓의 움직임과 색채의 조화에서 자유로움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그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굳이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길을 지나가다 누군가의 시선을 끌었다면, 분명 주차장인데 벽화가 그려진 이 공간이 ‘매력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에게 '나의 정원'이 있듯,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정원이 있지.’라고 공감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 예술 조각 03. 공중 위에서 산책을

- 권소영, 배현철, 이강욱 작가 드로잉전 <11월의 산책>



계단을 오르다 발견한 파스텔톤의 노란 표지판. 그 위에는 ‘art B project’라 쓰여 있다. 표지판을 두고 위로 향하는 계단이 이어진다. 시선을 위로하니 문이 하나 있다. 이끌린 듯 가파른 계단을 조심히 올랐다. 뚜벅뚜벅. 그리고 다다른 유리문. 얼마나 투명하던지 문안에 놓인 작품들이 프리뷰 샷 마냥 그대로 보였고, 동시에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내 모습도 함께 반사되어 보였다.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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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 2015, gouache, oil, pastel, on paper 39x53.5cm

 

 

작품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의문은 ‘무엇을 그린 걸까’였다. 의도된 듯한 형태의 굵고 검은 선이 작품에서 큰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위로 다양한 꽃과 풀들이 불규칙적인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꽃이 놓인 화병을 그린 걸까’ 그러나 작품의 제목은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

 

 

이강욱 작가는 실재하지 않는 심상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현대적인 터치와 전통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 art B project 공식 사이트

 


그림만 보았을 때는 무엇을 그린 걸까 이해 가지 않다가도 제목을 보면 구체적인 상상력으로 호기심이 채워지는 작품이 있는 한편, 제목을 보지 않더라도 그림 그 자체로 와닿는 작품도 있다. 전자의 경우가 이강욱 작가의 작품이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무엇을 그린 걸까 호기심을 가지게 하고, 이내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지게 만든다.

 

정확히 화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시선의 초점은 아무렇게 자라는 ‘풀’에 있었다. 어쩌면 각기 다른 형태로 굵직하게 그려낸 검은 선들은 ‘아무렇게 자라나는’ 형태의 움직임을 더 극대화해 보여주는 듯했다.

 

후자의 경우는 권소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제목을 궁금해하거나 작품 속에 그려진 것의 의미를 고민하기보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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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영, 검은풍경드로잉, 2020, 화선지에 수묵 30x30cm

 

 

권소영 작가는 자연과 풍경을 관찰하고 사유한다. 종이에 기록된 산과 들과 하늘은 시간의 순차와 공간의 연속성이 없이 작가의 감흥에 따라 분할과 재구성을 통해 만들어진 기억의 공간이다.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을 이어가며, 국내외 곳곳의 풍경을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다.

 

- art B project 공식 사이트

 

 

때로는 한지에 목탄을, 때로는 화선지에 수묵을 사용하였고 공통적으로는 오일 파스텔로 풍경화를 그렸다. 살짝 우는 듯한 투박한 질감의 한지 위에 푹 스며든 파스텔의 느낌이 따스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을 만큼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함과 묵직함에 그저 그림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좋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감상할 때 습관처럼 행하는 행동이 있다. 작품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그 위에 묻어난 물감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사용한 재료에 따라 질감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때 다른 질감의 재료들이 한 폭의 캔버스 위에 잘 어우러지는 느낌을 선호한다. 권소영 작가의 작품처럼 화선지와 같은 종이에 물감이 잘 스며들어 있거나, 반대로 캔버스 위에 붓의 터치가 그대로 드러나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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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철, 바람의 언덕, 2110 2021, oil on canvas 33.4x3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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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철, diary drawing series, 2021, 26x37.5cm

 

 

diary drawing series는 다양한 컬러의 단색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어떤 특정한 순간을 담고 있다. 쨍한 색감의 단색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 안에 그려진 것은 구름, 집, 자동차, 건물 등 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라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조금 색다르게 그려진 듯했다.

 

 

배현철 작가는 몸 감각의 예민함을 이용해 손으로 그리고 칠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상 속에서 서정성을 찾고 위로가 되는 순간을 기록하는데, 각자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보편적인 서정을 작가 특유의 우직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 art B project 공식 사이트

 

 

그의 드로잉 작품에는 붓의 터치가 살아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것도 응어리진 채로 말이다. 물에 다 풀어지지 않은 듯한 여러 색의 물감들이 한데 섞여 찐득하게 수놓아져 있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역동적이면서도 살짝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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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제목답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세 작가의 시선 따라 기분 좋게 공중에서의 11월 산책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뚜벅. 가파른 계단을 아주 조심히 내려왔다. 역시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지만 그럼에도 가파른 계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전히 종아리가 파르르 떨렸다.

 

예전에는 코끝이 시렸는데, 요즘에는 턱 끝까지 감싸는 마스크 덕분에 이마와 귀가 대신 시큰했다. 아까보다 더 추워진 공기가 말해주는 몸의 신호였다. 다리도 슬슬 아프고 허기도 살짝 지려는 찰나에 눈에 띈 표지판 하나, ‘서울서둘째로잘하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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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첫째로 잘하는 집도 있나?’하는 의문에 피식 웃고, 바로 아래 쓰여 있는 ‘단팥죽의 달콤한 위로가 있다면, 쌍화탕처럼 쓴 오늘도 삼킬 만하지.’라는 정감 가는 구절에 한 번 더 싱긋 웃었다. '잘됐다. 둘째로 잘해도 맛이나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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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단팥죽은 달디 달고 쌍화탕은 사약같이 쓰지만 역시나 건강한 맛이었다. 마실 수 있는 걸까 후회하려던 찰나에 마침 같이 내어 주신 생강 정과를 함께 씹어 삼키니 한결 낫다. 마치 뜨거운 물을 마시다 데인 혀끝에 얼음을 물자 스르르 진정되는 느낌이다. 여전히 코끝은 시리지만 입속은 달큼하고 쌉싸름하게, 뱃속은 뜨끈히 데워지는 7년 전 그때와 비슷하다. 춥지만 따끈한 기억. 한 바퀴 돌고 나니 겨울이 왔다.

 

 

 

◈ 더 보기) 산책자의 시크릿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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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했고 먹먹했다. 7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낯선 풍경들을 많이 마주했다. 곳곳에서 고즈넉한 멋이 서린 전통적인 느낌의 가옥들이 보이고,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갤러리들과 화랑들이 넘쳐났다. 이제라도 ‘삼청동’의 멋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게다가 늦지 않게 한가을의 끝자락을 눈에 담았다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삼청동을 들를 일이 생긴다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동네를 지긋하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삼청동 지도가 그려져 있는 벽화도 군데군데 엿볼 수 있다.

  

오늘의 산책을 계기로 이곳 삼청동의 다른 계절이 궁금해졌다. 각양각색의 꽃들로 포근히 내려앉은 봄의 모습이, 주위의 모든 습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여름의 모습이, 불균질한 나뭇가지들이 당당하게 뻗은 한겨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한겨울에 또 다시 이곳을 들르기로 했다. 그때도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예술의 조각과 감사히 맞닿기를 바라며.

 

- 21.11.17 산책 노트

 



당신은 오늘 어떤 예술 조각을 마주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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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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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윤영감
    •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니
      길이 또 다르게 보이네요!
      다음엔 송희님의 시선을 따라 다시 걸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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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21.12.17 15:31:47
    • |
    • 신고
    • 윤영감저의 사적인 시선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걸으며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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