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 그만 놓아야 하는데 말이죠 [사람]

다음 정거장에선 만날 수 있을까. 아이유 - [정거장] 을 들으며.
글 입력 2022.02.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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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니, 사실은 최근에 꽤 자주 그런 날이 있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기분은 침잠해져 가고, 의식은 수면 저 아래에서 지나간 추억들을 찾아 헤매는 그런 날. 시간을 들여 찾아낸 그 소중한 추억들을 자줏빛 여명이 찾아오기 직전까지 보듬고 또 보듬는 그런 날. 그 무엇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든 나의 이 마음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쯤 발견하게 된 노래가 있다. 바로 21년 12월에 발표된 아이유의 스페셜 미니 앨범 '조각집'에 수록된 [정거장]이라는 노래.

 

그 이후부터 쭉 이 한 노래만을 반복해서 듣는다. 더 이상 내가 기억에 파묻히지 않을 때까지 듣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아이유의 정거장을 들으면서 든 나의 두서없는 상념들을 짜임 없이 나열하고자 한다.

 

 

아이유 조각집 표지.jpg

 

 

 

다음 정거장에서 만나게 될까

 

그리워했던 사람을

 

다음 파란불에는 만나게 될까

 

그리곤 했던 얼굴을

 

- 아이유 [정거장] 中

 

  

그 사람은 하늘을 좋아했다. 하늘을 보며 몇 시간이고 멍 때리는 것을 좋아했다. 둘이 가까워진 계기 또한 하늘이었다. 보름달이 뜬 날 나에게 연락해 '보름달이 떴으니 보고 소원을 빌어달라'라고 했던 날, 나는 모종의 이유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다소 날이 선 대답을 했더랬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당신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보름달을 보고 당신을 위한 소원을 빌었으면 좋겠다'. 그날 나는 평소에 관심 있게 보지도 않던 하늘을 몇 십 분이고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물을 좋아했다. 윤슬을 좋아했다. 길을 거닐다 아름다운 윤슬을 목격하면 사진으로 간직했다. 나에게 보내주며 '윤슬이 참 이쁘지 않느냐'라고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 그렇다. 아름답구나.'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짙은 초록빛으로 물든 표지로 기억한다. 시집이었다. 전부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시 하나가 있다.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숨기거나 사소하게 드러내다가 사소하게 자랑하거나 사소하게 후회한다.

사소한 인연이 사소한 기억으로 가까워졌다가 사소한 망각으로 멀어진다.

나의 삶이 온통 사소함으로 채워져 있으나 사소한 행복은 가볍지 않고 사소한 견딤이 쉽지는 않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절망이 사소하지가 않다.

 

-사소하게- 황경신,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中

 

*

 

날이 좋은 날이면 나는 이유 없이 꽃집에 들러 추천받은 꽃 한 송이를 그 사람에게 선물했다. 특별한 날에만 주는 형식적인 의미가 아니었으면 했다. 내가 너를 생각함에, 날이 그저 밝거나 기분이 좋은 날에, 그런 평범한 나날 속 사소한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나의 어머니는 언제고 시들어버리는 생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서 처음 생화를 선물했을 때에는 꽤나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아이처럼 기뻐해 줬고 물병을 사 오래도록 꽃들을 보듬었다. 퍽 고마웠다.

 

그 사람은 모바일 게임 하나를 무척 잘했었다. 권유에 이끌려 같이 게임을 하게 되었고 정말 오랜만에 무력감을 실감했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그 사람보다 잘한다고 어쩌면 우쭐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고 착각이었다. 게임 하나를 같이 했을 뿐이었는데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사람과 나는 언제나 서로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유치할 수 있지만 나는 말을 높여 부른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더욱 존중해 준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려나.

 

그 사람은 복숭아 녹차를 좋아했다. '복녹'이라고 부르던가. 그래서 나도 한동안 '복녹'을 좋아했다.

 

그 사람은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사소한 것들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아 주었다. 또 사소한 것들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신도 좋아하려고 노력해주는 사람이었다.

 

 

버스 정거장 사진.jpg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저 지나간 추억들을 겨우 꺼내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기적인 이유로 먼저 관계를 끊어버린 나라는 사람을 머저리 취급하면서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일견 그럴듯한 핑계를 속으로 생각한다. 멍청이도 이런 멍청이가 있나.

 

자취방에서 역까지 걸어가는 날엔 그 사람과 마지막으로 걸었던 그 길 그대로 걷는다. 시간은 그 길에 켜켜이 쌓였다. 그렇지만 기억은 희미해지지 않고 그 시간 위에 덧씌워진다. 나아가는 듯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인 느낌.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듯한 느낌.

 

다음 정거장에서 만나게 될까. 다음 파란불에는 만나게 될까. 아님 이다음 세상에나 닿을까. 확실한 건 이번 정거장, 이번 신호, 이번 세상에서는 힘들 거라는 것. 나아가야 한다.

 

[정거장] 이라는 노래를 듣고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을 날이 올까.

 

놓고 싶지 않은, 그러나 놓아주어야 하는 기억들을 두서없이 끄적임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 속을 휘젓는다.

 

 

해는 정해진 시간에 떨어지고

 

거리는 비어 가는데

 

단 한 사람 어제와 같은 그 자리

 

떠날 줄을 모르네

 

- 아이유 [정거장] 中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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