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닉스 -새 시대 파도의 정점에서

글 입력 2022.02.2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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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을 누군가는 학창 시절을 누군가는 군 복무 시절을. 각자 자신만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를 그리워한다. 아무리 어린 시절 칠칠맞아 부모님한테 혼났어도, 학창 시절 학교 공부에 시달렸어도, 군 복무 시절 선임과 간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든 말이다. 그런 안 좋은 기억을 덮을 만큼 그 시절을 아름답게 그려주는 동반자와 함께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과 비교하면 그 시절이 미화될 만큼 많은 사람들은 현재를 매우 힘들어한다. 그렇기에  그 시절 그들과 같이한 좋은 기억은 현재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도 안 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에 푹 빠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변화는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그 변화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는 변화의 파도 속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이런 자명한 진실을 맞닥뜨렸을 때 우리 모두가 이성적으로 과거는 과거에 묻어두고 현재에 맞서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 과거와 현재 사이에 크나큰 역사적 변곡점이 있다면 어떨까? 영화 <피닉스>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독일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에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크나큰 역사적 사건을 집어넣음으로써 이러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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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시대, 과거를 그리워하는 넬리


 

2차 세계대전은 역사적으로 크나큰 사건임은 누구나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전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냉전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미가 매우 큰 사건임은 자명하다. 특히나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라는 대학살을 겪은 유대인들에게 전쟁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큰 사건이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동시에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더 이상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기 힘들어졌다. 전쟁 중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악마화시켜 그들을 학살했고, 그 결과 수많은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야만적인 학살을 멈추었으나 더 이상 독일의 유대인들에게 독일은 따뜻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독일인들에 대한 불신은 커졌고, 더 이상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격변의 시대에서 영화의 주인공 넬리는 혹독한 홀로코스트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고향인 독일로 돌아오는 여인이다. 전쟁 중 얼굴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성형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그녀를 아는 사람들조차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 바뀌었다. 전쟁으로 얼굴마저 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녀가 한 가지 되찾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바로 그의 남편 조니이다. 영화에서 넬리의 친구인 레네는 조니가 그녀를 배신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레네는 넬리에게 같이 이 지긋지긋한 독일을 떠나서 새로운 조국이 될 팔레스타인으로 떠나자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넬리는 결국 조니를 찾아낸다. 그러나 넬리의 소망과 달리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조니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의 죽은 아내를 연기해서 같이 그녀의 재산을 받아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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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의 갈등


 

2차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나 독일의 유대인들에게는 2차대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당위가 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만약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진 유대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한다. 이런 상상력에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 넬리의 재산을 손에 넣고자 하는 전남편 조니를 등장시켜서 넬리로 하여금 갈등을 겪게 만든다. 자신의 전부라 생각했던 조니가 그녀의 재산을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넬리는 처음 결심한 대로 조니와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지, 아니면 그녀의 친구 레네의 말대로 팔레스타인으로 떠날지를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영화는 그녀를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영화의 끝을 달려가면서 점차 조니가 넬리를 어쩔 수 없이 버린 것이 아니라 나치의 탄압이 무서워 그녀를 버렸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이 바뀐 넬리에게 접근하는 조니의 목적이 넬리의 재산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자명해진다. 넬리는 쉽사리 그녀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지 못한다. 여기서 영화는 넬리의 갈등을 단순히 그녀의 갈등만으로 그치게 하지 않는다. 더 커진 넬리의 갈등을 통해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겪었던 갈등은 물론, 지금의 우리가 겪는 갈등을 관객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다.


영화 속 조니의 배신이 드러나는 기점으로 커지는 넬리의 갈등은 그녀의 갈등이 단순히 영화 속 한 등장인물의 갈등만으로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 기점 이후로 넬리가 과거를 포기하고 미래를 향해 나갈지 크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넬리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그때 당시 독일 내 유대인들이 겪었던 갈등을 표현한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갈등이나, 조니의 배신이 전쟁 중 나치의 압박에 의했다는 사실은 넬리가 겪은 배신이 그녀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당시 독일 내 유대인들도 넬리와 비슷하게 독일인들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은 물론 넬리 역시 과거로 돌아갈지 아니면 미래를 향해 나갈지에 대한 중대 기로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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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라진 현재, 그리고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은 넬리를 미래로 나아가는 길로 몰아간다. 결국 영화는 넬리가 조니에게 사실 자신이 조니가 죽었다고 여긴 아내였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함께 막을 내린다. 영화의 결말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한다. 작게는 개인에게 일어난 변화에서 크게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그저 과거의 기억 속에 취해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넬리가 조니의 충격적인 배신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 기억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를 뒤로하고 미래로 나아갈지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 선택을 하든 우리의 몫이다. 다만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면 과거의 무게까지 함께 짊어져야 하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면 과거의 기억은 과거에 묻어야 하는 대가가 따를 뿐이다.

 


[한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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