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제가 느낀 예술의 기쁨을 전하고 싶어요" - 이야기로 세상을 펼쳐 나가는 스토리아티스트 박혜랑 PART 2

“창작자로 상상하고 매개자로 연결하고 향유자로 예술을 즐깁니다”
글 입력 2022.02.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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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PART 1에 이어 스토리아티스트 박혜랑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에버랜드공연단 재직시절.jpg
에버랜드 공연단 재직 시절 ⓒ박혜랑

 

*사진은 에버랜드 공연단 재직 시절의 모습이며, 연기자 박혜랑이 손에 꼽는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창작자로 상상하고 매개자로 연결하고 향유자로 예술을 즐깁니다”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들면서 다양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느껴져요. 포트폴리오에 적으신 문장 중 “창작자로 상상하고 매개자로 연결하고 향유자로 예술을 즐깁니다”라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이 말씀을 하신 건가요?

 

시작은 연극이었어요. 그곳에서 느낀 결핍 때문에 이 말을 썼던 것 같아요. 제 근본적인 에너지도 그때 느꼈던 결핍에서 출발해요.

 

어떤 결핍이었나요?

 

향유자가 없으면 창작자가 굶어 죽는 현실이요. 예술교육인의 꿈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교직 이수도 했고요. 예술강사들이 하는 일이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관객 개발이거든요. “이거 진짜 재밌어. 너도 한번 해봐.”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컸어요. 예술을 누구나 같이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죠.

 

시작은 향유자, 그다음에 창작자, 그리고 매개자 순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향유자로 예술을 접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게 되면서 창작자가 됐죠. 그리고 최근에 생긴 개념이 매개자고. 향유자와 창작자 둘만 있어서는 절대 안정적일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입장에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결 지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계속해서 본인이 선택하고 걸어온 길에서 향유자, 창작자, 그리고 매개자까지 연결되고 확장되는 느낌이 있네요.

 

네 맞아요. 제 장점이 경계가 별로 없고 열려 있다는 거예요. 역할 전환이 쉬워요. 연기를 하면서 역할을 계속 입고 살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경계 없이 물처럼 흐르듯 활동을 해왔던 것 같아요. 교사, 도슨트, 또는 문화 예술 향유자들의 모임을 만드는 것도 어떻게 보면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도 공부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제 창작에만 너무 깊이 파고들면 시야가 좁아지니까. 사람들이 ‘너무 재밌어요. 재밌는 시간이었어요.’라고 얘기해 주시면 저도 매개자로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되고. 여하튼 저는 향유자와 창작자, 그리고 매개자 사이에 있는 걸 재밌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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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니 로다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 도슨트 현장 ⓒ박혜랑

 

 

서로 상호 보완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결핍을 느끼면 다른 역할들로 채워 나가는 과정들이요.

 

그렇죠. 결국에는 예술가의 삶이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술가가 진짜 진주조개 같은 사람들이에요. 상처와 결핍에서 예술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은 그 결핍이 악한 형태로 흘러가지 않게끔 본인들을 계속 컨트롤하는 사람들이고요. 제일 중요한 건 주제. 그러니까 내가 할 말이 생겨야 예술을 하는 건데, 그 할 말을 찾은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래서 찾는 거죠.

 

저는 사실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 글 써보라고 제안을 받았을 때도 제가 못 쓰겠다고 했거든요. 저는 사실 메신저로 살고 싶었던 사람이지 메시지가 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어서. 게다가 남이 주는 대본이나 디렉션을 받아서 수행을 하는 사람이었지 제 속 얘기를 할 기회는 없었고요. 전 지금도 에세이를 쓰는 게 그렇게 끔찍합니다. 진짜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좀 부끄러워요.

 

계속해서 창작과 실연을 이어가고 계신데, 정작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어렵다니 굉장히 의외네요. 어떻게 보면 살짝 느낌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어떤 소재와 주제의 힘을 빌려서 소설을 창작해 내는 것.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역이니까요.

  

참 신기해요. 글도 네이버 담당자님이 써 보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글을 쓰고 보여줬어요. 근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글 쓰는 게 재밌구나’라는 걸 느끼고 더 열심히 체계적으로 배워서 쓰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 쌓인 이야기가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런데 쓰는 건 둘째 치고 이후에 오디오로 확장을 하잖아요.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무섭더라고요.

 

어떤 공포감이었나요?

 

제가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들었던 연극 음향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소리는 폭력적이다”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시각적인 건 눈을 감으면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청각적인 건 귀를 막아도 들려요. 소리는 막을 수 없어요. 또 귀는 입체적이라서 더 강하게 들려요. 같은 문장이라도 뉘앙스나 톤과 억양 같은 반언어적인 표현들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강하게 다가오거든요. 그 공포감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글을 쓰고 나서 친구들에게 먼저 들려준 다음에 ok 사인을 받고 올렸어요. 그 작업을 몇 개월간 반복했고요. 그 정도로 공포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죠.

 

지금은 어때요?

 

지금도 고민이 많아요. 이걸(오디오 동화) 들었을 때 혹시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면서요. 그래도 이제는 자신감도 생겼고 글에 대한 검증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 제안이 오면서부터요. 제 자신의 능력을 믿고 쓰고 또 내가 할 말을 나름대로 찾고 있는 거죠. 그 시기쯤에 프린지 페스티벌을 나가게 됐는데 그게 저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긴 했어요.

  

 

 

꿈의 무대,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사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옛날부터 꿈이었어요. 프린지를 처음 알게 된 건 16년 전인데, 예술가들에게는 꿈의 무대였죠. 공연 천재 예술 천재들이 거기 다 모여 있는 거예요. 본인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시각, 무용, 글, 음악 등등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걸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라도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때부터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발표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해에 가장 꽂혀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프린지에서 풀거든요. 2019년 첫 회가 낭독극이었어요. 한참 낭독극을 너무 하고 싶었을 때였고 특히 어른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계속 동화구연만 하다 보니까. 그때 당시 1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별로 다섯 가지 유형의 ‘헤어짐’에 대한 이별 이야기를 목소리로 연기했어요. 10대는 좋아하던 물건, 20대는 남자친구, 30대는 엄마, 40대는 좋아하던 꿈, 50대는 삶. 첫 공연 만석이었고 그때 진짜 제대로 한풀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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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 1인극 2019 참가작 <헤어지다> ⓒ박혜랑

 

 

그 다음해 2020년에는 명상에 꽂혀 있었어요. 명상 오디오북 성우로 처음 명상을 접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제가 쓴 글로 명상 안내를 해 보고 싶어서 그때 명상지도사 자격증도 땄어요. 코로나 때문에 실내 공연이 불가해서 야외에서 명상공연을 했는데 너무 황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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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 1인극 2020 참가작 <살아, 숨쉬다> ⓒ박혜랑

 

 

작년 2021년에는 제 그림을 가지고 회고전 형태로 전시회를 열었어요. 작년엔 미술에 꽂혀 있었거든요. 혼자 전시기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어요. 반응이 좋아 뿌듯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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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 1인극 2021 참가작 <2421年 박혜랑 회고전 사라지다> ⓒ박혜랑

 

 

올해는 음악에 관심이 있는 만큼 뮤지컬이나 음악 작업을 위주로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해 본 예술 중에 작곡이 제일 재밌어요. 제 성향과도 잘 맞는 것 같고요.

 

한 번 하실 때 정말 제대로 하시는군요.

 

그럼요. 그냥 하는 건 없어요. 한 번 하면 제대로 하죠. 늘 얘기하지만 저는 ‘비전문가’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엄청 커요. 근본 없어 보일까 봐, 중구난방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무서워요. 그게 싫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을 증명하고 설득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해요. 남들이 50을 시키면 저는 200 정도 해가거든요. 사실 비전문가로 보이는 것에 대한 공포나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한 책임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나머지는 그냥 즐기면서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맨날 100번은 더 할 수 있겠다고 말하거든요. 좋아서 하고 있는 일들이니까요.

 

 

 

유일무이한 사람, 누군가의 향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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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

  

 

혜랑 님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느끼는 부분인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것을 만들어가는 데 애정이 굉장히 깊으신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남들과 똑같은 게 너무 싫었어요. 늘 어떤 결핍으로 인해 자기 증명을 계속했고, 그 과정으로 인해 지금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왔던 것 같아요. 제 SNS에 '근본 없는 콘텐츠들은 철학과 역사를 못 따라온다'고 적기도 했어요. 저는 형태보다는 원형과 힘이 중요한 사람이라 결국 제가 어떤 걸 만들어낼 것인가가 문제인 것 같아요. 앞으로는 또 어떤 걸 도전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계속 비슷할 거예요. 형태만 달라질 뿐. 이제 또 ‘스토리아티스트’라는 단어를 써 주시더라고요. 제가 만들어서 밀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그 단어로 인식하잖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브랜딩의 강점이기도 하고.

 

저는 ‘스토리아티스트’라는 말도 이번에 혜랑 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이야기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세상을 열어 살아나가고 있다.’라는 말이 어쩌면 혜랑 님이 정의한 스토리아티스트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풀어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아마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할까’에 대한 부분. 근데 제가 정말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건 직업명으로 나를 설명하지 말자였어요. 그것이 가져다 주는 장점도 있지만 한정 지어 버린다는 한계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는 절대 하나만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많은 일들을 병행하다 보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나름의 고민이나 고충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지금도 가끔 훅 들어오는 얘기가 있어요. 하나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근데 제가 튕겨냈어요. 저는 싫다고. 이미 배우 생활 하나만 10년 동안 오래 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를 깊이 했던 맛은 알거든요. 다른 활동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싫다고 했는데 막상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또 고민이 되는 거예요. 사실 브랜딩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직업명으로 묶어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게 제일 좋잖아요. 그것만큼 정확한 포지셔닝이나 타겟팅하는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은 거예요. 직업을 떼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싫은 거죠.

 

저는 '절대 하나만 하고 싶지 않은 사람',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곧 혜랑 님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서 다양한 방법과 방향으로 스스로 증명을 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다행입니다. 요즘에는 그래도 좀 재미있는 일 하는 분이라고 저를 소개하시더라고요. 저는 또 많은 요소 중에 감동도 좋고 유익함도 좋지만 재미를 좋아하기도 하고. 전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은 제가 만든 콘텐츠들이 다 제 생활권 안에 있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제 콘텐츠에 푹 묻어 있으면 되게 재밌을 거예요. 미술 소개도 해주지 동화도 들려주지.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혜랑,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저는 만인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든 심심하면 곁에서 즐길 수 있는 사람이요. 제가 과거의 향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과거의 향수가 되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로 애착 인형, 아니 애착 담요로 할게요. 과거를 한 번 돌아봤을 때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p.s. 끝으로, 인터뷰 중 혜랑 님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어렸을 때 줄곧 하고 싶은 일을 따라 이제껏 부지런히 자신의 능력을 쌓아오며 만들어진 혜랑 님만의 서사가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

본 인터뷰는 대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전문 필진_신송희.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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