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같은 사랑, 사랑 같지 않은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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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2일. 필자는 이날 특별한 약속 없이 대학로에 나갔다. 단지 그날따라 외출이 하고싶었다. 그렇게 이유 없는 외출로 대학로에 갔고, 지나가다 우연히 본 영화관에 특별한 이유 없이 조금 머물다 가려 하였다. 혹자는 이런것을 운명이라 하더라. 그래 나는 운명처럼 이 영화를 만났다.
영화관 벽면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포스터는 많은 흥미를 끌어냈다. 어두운 채색의 포스터, 반면 너무나도 로맨틱한 영화 제목, 인간이라 말하기 어려운 기괴한 생명체와 여인의 포옹. 살면서 많은 영화 포스터를 보았지만 이렇게 색다르게 다가온 영화는 처음이였기에, 홀린듯 표를 사서 자리에 앉아 2시간을 꼼짝없이 스크린에 매료되었다.
<스포일러 주의>
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개인적으로 필자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인생에서 인간을 유의미 하게 하는 최고의 가치를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로맨스 영화는 딱 맞는 취미이다. 흔한 로맨스 영화겠거니 하고 들어간 영화관에서 필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로맨스 영화들은 적절한 클리셰를 가진다. 가난한 남주인공이, 부유한 여주인공을 만나, 집안의 반대, 미리 정해진 약혼자 등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딯고 결국 사랑에 성공해 평생을 함께한다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Boy meets girl”. 놀랍게도 이 영화는 부유한 사람도, 잘생긴 남주인공도, 예쁜 여주인공도 없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 카메오 조차로도 출연하지 않는 조그마한 소시민들만이 존재 할 뿐.
이 영화의 주요한 등장인물들을 꼽자면 4명 정도로 추려 낼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연구소 시설의 청소부인 '엘라이자 에스포지토'.
연구소 시설에 잡혀 고문을 당하는 '양서류 인간'.
연구소 시설의 총 책임자 '리처드 스트릭랜드'.
영화는 그중 엘라이자와 스트릭랜드의 대립으로 흘러가게 된다.
영화는 엘라이자가 작중 등장하는 연구소 시설에 잡혀온 양서류 인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느때와 같이 출근해서 일을 하던 도중 갑자기 한 통제구역의 청소를 급히 지시받게 되고, 그 곳에 도착하자 쇠사슬에 묶여있는 양서류 인간을 만나게 된다. 양서류 인간은 그 곳에 갇혀 갖가지 고문을 받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엘라이자를 극도로 경계하지만, 엘라이자에게 계란과 음악을 선사받고 곧 급속도로 친밀해져 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엘라이자는 연구소 책임자 스트릭랜드가 양서류 인간을 폐기 처분(즉 살처분) 하려 한다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고, 탈출 작전을 계획한다. 불가능 해 보이던 이 작전은, 수많은 조력자들과 함께 결국 성공 하게 되고, 엘라이자는 양서류 인간을 자신의 집 욕조에 살려놓게 된다.
양서류 인간의 실종으로 실각하게 된 스트릭랜드는 화가 나 많은 연구소 인원들을 문책하게 되고 그 도중 우연히 주인공 엘라이자가 양서류 인간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즉시 권총을 들고 엘라이자를 추격하던 스트릭랜드는 한 부둣가 앞에서 엘라이자와 양서류 인간을 마주치게 되고, 즉시 엘라이자와 양서류 인간을 총으로 살해한다. 하지만 이미 인외의 존재였던 양서류 인간은 총알에 맞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 스트릭랜드를 처치하고 총에 맞고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바다로 들어가 그녀를 치유하고 그녀 또한 아가미가 생겨나며 영화는 둘의 포옹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사랑' 그 단어의 의미
지난 2012년 국립국어원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을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으로 개정하였다. 이전에는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 로 정의하고 있었으나, '이성'으로 쓰던 것을 '어떤 상대'로 변경한 것이다. 더불어 이때 '연인', '연애', '애인', '애정' 의 정의도 모두 위와 같은 방향으로 개정 되었다.
그런데 2014년 국립국어원은 다시 이 개정된 정의에 다시 '남녀'라는 표현을 추가하였다. 여러 종교단체와 보수단체의 항의에 못이겨 다시 원래의 방향으로 정의를 수정 한 것 이었다. 필자는 이 때 부터 항상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느꼈다. 인간이 과연 '사랑'이라고 칭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것 까지 인간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인외의 존재의 사랑은 과연 '사랑'인 것인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잠자리까지 함께한 이 두 존재의 감정은 '사랑'인가 아닌가. 쉬이 대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을 영화는 절묘한 표현력으로 우리를 고뇌로 밀어넣는다.
우리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우리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손목에서 거미줄이 발사되지도 않고, 엄청난 에너지 출력을 가진 슈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눈을 뜨면 학교에, 회사에 가고, 퇴근 후에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런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벙어리이자 고아인 엘라이자, 동성애자 노인인 자일스, 뚱뚱한 흑인인 젤다, 인간이 아닌 존재인 양서류 인간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외면받는 '사회적 약자'이다. 작중의 사회는 조금이나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명을 시작한 현대 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타인의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며 등장인물들은 외면받고 핍박당한다. 첫 만남에 엘라이자를 무시하고 성희롱하는 스트릭랜드, 게이와 흑인을 경멸하는 파이 가게 주인 등 많은 인물들이 소외된 약자들을 혐오하며 그 혐오를 당연시 한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며 많은 대중이 사회 속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적 약자 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관심의 긍,부정을 막론하고 이것을 수면으로 끌어 올려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진행된다면 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작중의 그 외면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세상의 볕 아래 모두 당당하길 염원하며, 영화의 끝에 나오는 시 구절로 글을 마친다.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I find you all around me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It humbles my heart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For you are everywhere...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황승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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