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상기와 손세동의 '공작도시' - 문학과 미술의 환유 2편 [미술/전시]

손상기 화백의 글과 그림
글 입력 2022.02.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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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계의 탈피이다. 말하려는 자신이 어리석다. 먹혀지지 않는 나의 언어. 나와 인간들. 어리석은 나는 그들과 격리되어져야 함을 알았다. 스스로 격리되어 주어야 함을 말이다(<작가 노트>, 1976.).”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보다 나는 무엇이 더 낫길래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일까.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피한 격리가 만연해진 만큼 혐오나 불신, 양극화 등 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전염병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격리의 대중화가 아닌 격리의 개인화를 경험했던 손상기 화백의 상념을 보며 결심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처럼, 별이 바람에 스치우니까 그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제도권이 미처 다 포용하지 못한 세계를 넘나들며.

 

 

나는 글을 쓰고 난 후 그림을 그린다. 내가 느낀 감정과 추상(追想)을 정직하고 설득력 있게 기록하여 이미지의 집약을 꾀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의 이 집약은 회화와 문학의 접근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다(최태만, <육체의 불구와 불구의 시대를 넘어서>, <<손상기>>, 45쪽).

 

전쟁의 마당에 피는 꽃의 색깔도 내게는 그것들이 생래로 지닌

분홍빛이거나 노랑 빛이거나 흰빛이거나 그러하다.

그러기에 나는 그것들의 색깔은

그것들의 생래로 지닌 색깔 그대로라고 말한다.

내 경우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직함이요

그리고 진정한 시인 것이다.

오직 ‘아름답다’고 보는 눈과 말하는 입 또한

이 세상과 사람을 옳게 떠받치려는

간절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겠다(<작가 노트>, <<손상기>>, 344쪽).

 


손상기 화백이 추구하는 ‘정직함’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유형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예술 작품의 구성 원리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 개인의 체험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사회 현상에 소설의 허구와 회화의 미감적 요소가 가미되는 과정이라는 가정하에.

 

대상이 있어야 이해되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여러 예문을 참고하는 일 따위다. 그의 정직한 태도를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감명’이 필요했다. 숱한 그림의 정직이 그만큼의 감격을 안겨 주지 못한 까닭에 골똘하며.

 

긍휼의 관점이지만 쉽게 주머닛돈을 내어줄 수 없다. 그의 정직은 동병상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화폭의 인물을 마냥 연민하지 않게 한다. 작품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피사체는 사라지고 줄거리만 남는다. 글로 자신의 감정을 덜어내서일까. 연작으로 짙어진 서사성도 이에 한몫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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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독립문 밖에서, 1984, 캔버스에 유채, 161×130cm / © 1984.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작은 내 가슴에 고인 삶의 언어로 화폭을 채워 도심에서 인간의 영혼이 다시 꽃처럼 부활하는 그런 풍경을 시적인 내면의 공간에서 보이고 싶어 돈키호테가 기사수업을 나갈 때 만들었던 투구를 수없이 만들어 위대한 당신에게 바치며...(<그림을 그리는 마음(동덕미술관, 1983)> 팜플렛에서)”

 

돈키호테(Don Quixote)인 그의 옆에는 산초 판사나 로시난테가 아닌 또 다른 그가 있다. 상처받은 영혼의 인간 군상을 목격하고 회복의 염원은 그의 꿈이 되었다. 그것은 돈키호테의 낡고 조악한 투구라도 쓰고 덤벼야 하는 쟁투를 수반했다. 내밀하기에 확증 편향처럼 보이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현실임을 말해주었다. 그처럼 투구를 써야 하는 사람들.

   

문을 여니 벽이었을 심정이겠다.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반대하던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축했다. 이는 오늘에서는 유구한 역사를, 과거에서는 강력한 주체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위의 작품은 오래도록 사회로부터 외면과 무시 받던 사람들의 터전을 압축한다. 콘크리트 벽이 자리하며, 돈키호테처럼 본의 아니게 비주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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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교회가 있는 풍경, 1987, 캔버스에 유채, 100×100cm / © 1987.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화면에 욕심껏 표현되는 것은 꼭 그리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나의 모습이고, 상실이 빚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며, 즉 어떤 것에서 헤어나기 위해 고함지르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손상기의 삶과 예술>, 142쪽).”

 

정방향의 삶을 살았는지 자신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고인에게 이를 물어볼 방도가 없으니 최소한 깊은 상실을 겪은 이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손상기 화백에게 세상의 공기가 더 없는 욕심이라고 하늘이 말해줄 시점에 그는 교회와 성당을 다니며 그림으로 남겼다. 척추만곡증이라는 장애와 실낱같은 호흡에 대한 한탄으로. 구원을 바라기엔 몹시 청년이지 않았는가.

 

성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허락한 거룩한 일이라는 틀 안에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흥했다고 주장했다. 상업의 융성은 노동의 역동성으로부터 기인했지만 이는 개인을 지우기도 한다. 허나 개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미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으로 산물과 하나인 개인은 발전한다. 부모님이 추천한 시계 기술 대신 그는 화가의 삶을 택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곤궁을 대가로 얻은 자아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시간이 청춘을 가리키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난과 장애가 자신을 궁지로 몰지라도 마지못해 선택해야 하는 밥벌이에도 기투할 수 있는 잉여의 재능이 거룩함을 일깨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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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자화상, 1979, 캔버스에 유채, 37×45cm / © 1979.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생각은 문학이다. 바람이 불면 먼지나 휴지가 날린다. 미술은 먼지와 휴지 등을 날리는 것. 바람은 문학, 생각, 근원, 원동력이다. 미술은 감각적인 면에서 문학이다(<손상기의 삶과 예술> 60쪽 참고).”

 

거대하고 메마른 도시에 서정을 심는 삶이면 싶다던 손상기 화백은 세상의 모순을 정통했다. 죽을 때까지 이율배반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감각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낫겠다 싶다. 그러나 이렇게 태어난 걸, 이렇게 살아가는 것의 명분을 합리에서 찾아 아팠던 게 아닐까.

   

손상기 화백의 자녀 손세동의 드라마 <공작도시>의 인물들은 감정조차도 무결한 논리로 방어하는 합리주의의 기형을 형상한다. 그런데 결정적인 모순을 범한다. 봉건 사회를 증명하는 혈연의 계급으로 자신의 한계를 결정한다. 실컷 비난할 수 없어 개탄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고 있다.

 

 

[참고문헌]

김진엽 외 4인, 손상기의 삶과 예술, 사문난적, 2013.

홍가이 외 3인, 고통과 절망이 품은 따스한 빛 손상기, 아르테(arte), 2019.

 

 

윤하정.jpg

 

 

[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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