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해서 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 [문화 전반]

나는 요즘 직업에 대해 생각한다.
글 입력 2022.02.21 00: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요즘 직업에 대해 생각한다.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생계를 유지해주며, 생활의 틀을 만들어주는 일. 요즘은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일과 직업에 두는 가치의 비중이 적어진 듯하다. 노동이 자아실현의 수단이자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지만, 최근엔 직업을 자아실현의 수단보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반복적으로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누구나 건물주가 되어 일하지 않으며 편하게 사는 삶을 꿈꾸고,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인생을 투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한 사람이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에서, 직업은 삶을 형성하는 기둥 중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시간이라는 형태로 삶을 분할납부’하고 있다. 시간을 쓰는 일은 자신의 생명을 쓰는 일이다. 그래서 시간을 들이는 일에는 무엇이든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시간이 쌓여 곧 그 존재의 윤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이제는 이전에 비해 직업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 했지만, 여전히 직업은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다.


일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는 누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시간을 내어 아트인사이트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일테니 출판이나 공연, 방송, 기획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미 일을 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때 그런 길을 꿈꿨으나,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문화예술에 대한 소식을 찾아오실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우연히 인터넷을 타고 넘어와 여기까지 왔을수도 있겠지.


나와 같이 이 플랫폼에서 글을 써내려가는 분들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각자의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분량을 꾸준히 써내고, 마감을 지킨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나보다 사유의 깊이가 깊고 글솜씨도 뛰어나서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정말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와 같이 본업에 치이고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의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어렵게 써내려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문화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여있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틱틱붐>이라는 뮤지컬 영화를 봤다. 보고싶은 작품을 고르지 못하고 한참을 스크롤만 내리다가 무작정 튼 영화였지만 흡입력 있는 인트로와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음악 덕분에 보는 내내 귀가 즐거웠던 작품이다. <틱틱붐>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렌트>를 쓴 작가이자 뮤지컬 연출가 ‘조나단 라슨’의 실제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한 번 시간내서 봐도 좋겠다.

 

 

틱틱붐.jpeg


 

“서른 살 생일을 코앞에 둔 유망한 작곡가. 사랑과 우정뿐만 아니라 심적 압박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다하기 전에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 넷플릭스 작품 소개

 


영화의 첫 곡은 며칠후에 서른이 되는 조나단 라슨이 조바심을 느끼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8년동안 디스토피아를 다룬 록 뮤지컬 ‘SUPERBIA’ 집필에 집중해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조나단 라슨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더 이상 서빙하는 작가가 아니라 글 쓰는 게 취미인 웨이터가 된다’며 불안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업적, 그리고 부모님의 삶과 비교했을 때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한마디를 건넨다. “널 움직이는게 두려움이야, 사랑이야?”


이 짧은 한마디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내 또래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고민에 작은 가이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내가 이 일을 계속 하는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 여럿을 붙잡고 질문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식이였다. ‘요즘 자기 일에 만족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에 지금 이미 하고 있는 안정적인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이유가 있을까.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거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괜찮은 일이 있는 상황이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서 삶을 일궈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 안정적인 생활을 벗어던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한다는 막막함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한참은 어린 나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제 때 학교를 가고 군대를 다녀와서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의 틀을 지키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걸 벗어나더라도 사실 아무 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삶은 왠지 조금은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그것은 실체가 있는 두려움일까? 사실 나는 주변의 많은 동기들처럼 휴학 1년 해보지 않고 바로 졸업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1년, 2년 늦게 졸업하는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괜히 불안하고 초조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도 그런 건 아닐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해서 하는 걸까, 아니면 이 일을 그만뒀을 때가 두려워서 지속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일과 환경을 사랑하고 있을까. 물론 모든 일에는 좋은 순간도, 사랑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여나 그게 조금 어렵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엊그제는 이 일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일기장에 마지막 인사를 썼다.

 

 

“사랑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들도 이제는 사랑해보겠습니다

저와의 좋은 기억과 추억만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런 순간들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시간들을 품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바라며 썼다. 사회초년생의 단순한 푸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가 오늘의 다짐이 될 수도 있을까. 짐을 챙기고, 출근을 준비해야겠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인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