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달픈 단편영화 제작기 [영화]

나름 진심이에요
글 입력 2022.02.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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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 필자는 첫 연출작 촬영을 마쳤다. 작년 내내 영상 제작 동아리와 영화 동아리에서 뽈뽈 다니며 스태프로 네다섯 개의 작품에 참여했었는데, 번아웃의 고비를 넘기고 이제 나도 만들 순 있겠다 싶어 겨울에 냅다 내 것을 만들기로 결심한 데서 모든 게 시작됐다.

 

나름 지난 일년이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기도 하고 유별난 경험이라고도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적어 영화를 꽤나 진심으로 하는 학생들도 많단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나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것은 술자리 무용담과 다를 바 없으니 제작 과정을 하나씩 간단하게 짚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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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리프로덕션 - 프로덕션을 준비하는 단계다. 프로덕션이 뭐냐하면 독립 단편영화에선 그냥 정말 촬영하는 날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정말 초단편에 준비할 것도 없는 영화라면 당장 휴대폰을 들어 찍으면 되겠지만••• 대개 욕심을 좀 내게 되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팀 구성은 대체로 연출/제작/미술/촬영/음향 이렇게 이루어진다. 연출은 말그대로 영화 연출을 위한 팀으로,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피드백 등등을 진행한다. 제작팀은 영화 환경 조성 및 관리를 위한 팀으로, 예산 및 회계, 로케이션 헌팅 등을 진행하며 미술과 촬영과 음향은 말 그대로 영화의 미술/촬영/음향을 준비한다.

 

본인은 현장에서 촬영/음향을 담당해보긴 했지만 정식적으론 촬영/음향을 제한 팀에서만 활동해봤다. 연출은 세세히 무언가 극의 연출을 쌓아가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흐름을 보기에 좋았고, 제작은 피디를 맡으면서 예산 관리, 일일촬영계획표 제작 등등을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갭을 마주하기에 좋았다.

 

미술은 화면을 어떤 소품과 의상으로 채워낼 것인지 고민하고 발품 팔면서 앞으로의 화면 구성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경험에 버릴 구석이 없었다.

 

 

(2) 프로덕션 - 그렇게 모두 함께 달리다보면 촬영날이 다가온다. 원래는 본인이 속한 팀에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조금더 세분화되어 이름이 붙여진 역할들이 몇 있다.

 

예를 들면, '5씬 3컷 2테이크' 하고 슬레이트를 친 뒤에 화면을 빠져나가는 슬레이터라든지, 편집의 용이함을 위해 ok/keep/ng를 기록하고 세부 내용을 적어주는 스크립터라든지, 데이터 백업하고 관리해주는 데이터 매니저라든지, 붐폴을 들어 사운드를 따는 동시녹음(붐 오퍼레이터) 라든지,... 그 외에도 많고 필자 또한 알지 못하는 역할도 많다.

 

촬영을 시작하면 한두시간 하고 헤어지기보단 회차 내내 거의 하루종일 함께 일하다보니 전우애가 생긴다. 체력적으론 죽어가지만 뭐 어떻게든 정신적으로 살아남으려 애쓰게 되나보다.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나면 딱 하루였어도 금세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다.



(3) 포스트 프로덕션 - 이제 촬영이 끝났으니 편집을 할 때다. 컷편집을 하고 사운드를 믹싱하고 색보정을 하고 등등 정말 화면 자체를 영화로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요 부분은 편집 기사를 따로 두기도 하고 외주를 맡기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학생영화에선 팀 내에서 해결하게 되는 듯싶다.

 

필자도 편집까진 내 손으로 해내보자 싶어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다.

 

*

 

이렇게 몇 달 고생하다 며칠 촬영하고 또다시 몇 달 컴퓨터에 앉아있다보면 영화 하나가 만들어진다.

 

첫 연출작을 만들면서 한 생각은, 인생은 팀플레이라는 것이었다. 혼자선 절대절대절대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꾸리고 그 사람들을 양 팔에 꽉 낀 채 일을 해내가고 도움을 받는 게 필수적이고, 그 도움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부응할 수 있는 영화가 되게 노력해야 한다는... 뭐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한동안은 영화에 손도 안 대야지 했는데 이미 다음 학기에 또 스태프로 들어가기로 해버렸다. 영화라는 게 사람을 담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만들다보면 뭔가 되고 있다, 뭔가 즐겁다 하는 그 느낌에 중독되어 빠져나오질 못하는 듯싶기도 하다.

 

배우님의 연기에 순간 압도되어서 컷을 외칠 때를 놓쳤을 때, 엠비언스를 따기 위해 현장에 있는 모두가 일분간 침묵했을때, 누군가의 말실수로 다같이 깔깔 웃었을 때, 죽어버린 체력에 생생해진 정신력으로 버틸 때, 쓰러지듯 잠에 들고 다음날 비척비척 촬영장으로 향할 때. 모든 순간이 생생히 남았다.

 

취미라기엔 모두 너무 진심이다. 단편영화는 짧은데 그 짧은 영화를 위해 모두가 악착같이 몇 달을 준비한다. 만들기엔 엄두가 안 나거나 관심이 안 가더라도 단편영화를 몇 편 챙겨보시면 어떨까 싶다. 개중 정말 반짝이는 것들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만드는 방식은 다르고 이 글에 쓰인 내용도 틀리거나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대충 만들어진 영화는 없다는 건 확실하니 열심히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아무튼 그렇다. 언젠가 스크린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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