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족, 단지 세상의 끝 [영화]

어쩌면 평범한 가족 이야기,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
글 입력 2022.02.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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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포근한 둥지에 비유되곤 한다. 집은 언제 돌아가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며, 나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이해해 줄 든든한 가족들이 기다리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그리는 영화들은 대부분 따뜻하다.


하지만 보편적인 학습된 개념으로의 가족의 의미를 넘어, 개인이 가족을 정의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사랑하는 나의 지원군이 아닌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으며, 집에서조차 이방인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를 통해 가족 간에 오가는 다양한 감정을 순수하게 보여주는 감독 자비에 돌란은,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서 다시 한번 가족과 집이라는 공간을 그만의 방식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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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은 답답한 영화다. 등장인물들은 가족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제자리를 맴돌고 만다. [단지 세상의 끝]은 살얼음판같이 예민하고 숨 막히는 가족들 사이의 긴장감과 폭발 직전의 답답함을 미묘하게 포착한다.


[단지 세상의 끝]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주인공 루이의 회상 씬을 제외하면, 독립해 떠난 이후 12년 만에 시골의 고향 집을 처음 방문한 루이, 친절해 보이지만 정작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머니, 루이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형 앙투안, 루이를 반기는 여동생 쉬잔, 어딘가 주눅 들어 보이는 형수 카트린까지 총 5명의 등장인물만이 극을 이끌어간다.


숨 막힐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영화 내내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촬영기법에 의해 극대화된다. 감독 자비에 돌란은 [단지 세상의 끝]에서 주인공들의 얼굴-상반신 1/2 정도까지만 등장하는 구도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단지 세상의 끝]이 대부분 등장인물 다섯 명 간의 대화로 구성된 영화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계속해서 클로즈업 상태에서 보이기 때문에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촬영 각도로 인해 실제 대화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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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평범해 보이지만 어긋난 가족이 함께한 3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주인공 ‘루이’는 유명한 작가이다. 루이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다. 내뱉어야 할 말이 있지만, 루이는 번번이 이를 속으로 삼켜내고 만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에는 동성애자인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단지 세상의 끝]에서는 주인공 루이가 그렇다. 후반부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루이는 동성애자이며 형 앙투안과의 대화로 추측하건대 루이가 유년 시절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루이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12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루이는 속 얘기를 하지 못한다. 형수 카트린은 그런 루이를 애매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마치 루이가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카트린은, 크고 깊은 눈망울로 루이를 쳐다보지만 결국 먼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12년 만에 루이를 만난 가족들은 어떨까. 여동생 쉬잔은 루이를 반긴다. 쉬잔은 유명한 작가가 된 오빠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쉬잔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루이는 어린 시절의 모습 뿐이다. 분명 오빠를 만나 너무 반갑지만, 12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반가운 인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틈을 만든다.

 

쉬잔은 지금의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른다. 먼저 루이의 마음을 열게 하지는 못했지만, 쉬잔은 루이를 멋대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12년의 간극이 어색하게 다가올 때면 쉬잔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 속 루이의 모습을 지금의 루이에게 덧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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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의 어머니 역시 루이를 반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루이의 어머니가 루이의 형수 카트린과 비슷한 듯 다른 포지션을 취하는 캐릭터라는 것이다. 카트린은 루이에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음을 직감하지만, 이 가족과 피로 엮인 인연이 아닌 자신의 위치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액션을 취하지 못한다. 루이를 향한 앙투안의 날 선 말들에 반박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내 윽박지르는 앙투안의 목소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루이의 어머니는 분위기를 긴밀하게 읽어낸다. 가족 간의 살얼음판같이 위태로운 분위기를 감지한 어머니는 따뜻한 말투로 화제를 전환시킨다. 그러나 그녀는 본질에 대해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그녀는 가정을 유지시켜야겠다는 일종의 어머니로서의 의무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속을 터놓는 대화를 종용하기보다 초반의 중얼거림처럼 오늘은 시작과 같이 끝나면 될 뿐이며, 의무감과 중대한 얘기는 없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한다. 어머니의 살가움은 루이의 마음을 보듬지도, 살얼음판 같은 대화에 불안해아는 쉬잔을 안심시키지도, 화를 내는 앙투안을 진정시키지도 못했다.


루이의 형인 앙투안은 시종일관 루이에게 화를 낸다. 루이를 답답해하며 루이가 하는 모든 말에 시비를 건다. 앙투안을 연기한 배우 뱅상 카셀의 짜증스러운 연기 톤까지 더해져, 관객들은 앙투안이 나쁜 형이라는 판단을 섣불리 내리기에 이른다. 루이가 12년 전 집을 떠나버린 이후 앙투안은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유명한 작가가 된 동생을 자랑스러워하는 면도 가지고 있다. 앙투안은 떠나버린 동생이 밉다. 그 미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풀어가야 할지 모른다. 12년간 교류하지 않았던 둘 사이에는 깊은 감정의 골이 있다.


앙투안은 자신의 감정을 마구 분출하지만 그럴수록 루이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꼭꼭 숨겨버린다. 앙투안은 그런 루이를 답답해한다. 앙투안은 계속해서 루이에게 감정적으로 도발한다. 어쩌면 앙투안은 동생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이 맞서 고함을 치며 대답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너무나도 모른다.


형의 직업이 뭔지 아냐고 묻는 형수 카트린의 질문에 루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서로를 잘 모르는 가족들은 대화를 시작하는 법을 모른다. 대화가 너무 오래 단절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원인을 직면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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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기억만으로 살아가기에 삶은 너무 굴곡지며 무겁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는 있어도 모든 간극을 메꿔 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생각한다. 오해가 생길 때 흔히 내뱉는 말도 그렇지 않은가. “내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어.” - 자신에게 최선이었던 방법이 타인에게는 최악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지나고야 깨닫는다.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서로 마음속에 묻었던 감정들과 질문들은 결국 가족의 붕괴를 가져온다. 대화는 이렇게나 소중하면서 무서운 것이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답게, [단지 세상의 끝]은 인물들 간의 전체적인 서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저 그 상황 속에 놓여, 대화에서 제시되는 정보들만으로 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정확하고 체계적인 서사를 장점으로 하는 영화가 있는 반면, 돌란의 영화들은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감정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루이네 가족의 대서사시를 관객은 알 수 없다. 그저 지금 이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상당이 불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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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루이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다시 집을 떠난다. 루이는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이라 믿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시한부임을 알고 있음에도 루이는 이렇게 말한다.


“또 올게요, 더 자주. 그리고 편지할게요, 더 자주. 두세 단어 이상으로. 왜냐하면 후회가 되어서요. 우리가 낭비한 시간도, 내가 낭비한 시간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집을 나서려는 루이의 맞은편 뻐꾸기시계가 울리며 새가 날아와 집 안을 날아다니다가 결국은 바닥에 떨어져 죽고 만다. 얼마 남지 않은 루이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버린 가족의 대화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항상 잃고 나서야 문제점을 발견한다. 루이는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거의 다 썼을 때, 자신과 가족들이 시간을 낭비했음을 깨닫는다.


사람이 제일 어렵다. 타인을 배려한다고 했던 모든 선택은 사실 이기적이었을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관계에서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이러한 답답함을 정면 돌파하느냐, 회피하느냐에 있어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더 나빠질지라도,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결국 집을 떠난 루이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마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듯, 누구도 먼저 이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은 그렇게 붕괴된 채 루이의 죽음에 대한 뒤늦은 책임을 떠안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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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가 조금 더 오래 살았기를 바란다. 형 앙투안과 한 번쯤 포옹하고 뒤돌아섰기를 바란다. 얼마 전 루이 역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단지 세상의 끝] 속 루이의 슬픈 눈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가스파르 울리엘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 아마 앞으로 [단지 세상의 끝]을 볼 때마다 울고 싶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라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영화 속 가스파르 울리엘이 연기한 루이의 꾹 닫힌 입과 축축한 눈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바랐다. 루이가 너무 일찍 죽지 않았기를. 결국 사랑이 대화와 이해를, 루이를 살려냈기를.


“다른 행성에라도 사는 줄 아나 본데, 여기가 세상의 끝도 아니고.”

  

라며 루이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집에서의 3시간 동안 루이에게는 집에 세상의 끝과도 같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집이 단지 세상의 끝일 수 있다. 나는 바란다. 루이가 다시 한번 단지 세상의 끝을 찾아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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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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