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촉촉한 화분처럼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2.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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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나 전시 관련된 아티클을 몇 번 쓰다 보니 전시에 입문시켜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처음엔 글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만 생각했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솔직히 몰랐다.

 

현재의 문화예술을 충실히 알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친근한 이미지를 갖게 하고, 더불어 그 사람들의 미래에 예술적 영감을 주는 작은 씨앗이 되고 싶다고 썼던 자기소개서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꽃을 피우는 결과를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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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입문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다. 사는 동네도 바로 근처여서 서로의 집에서 떡볶이나 먹으면서 놀았지 전시를 같이 보러 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뭐든 첫 인상이 중요하다. 그래서 홍영인 작가의 《We Where》를 골랐다.

 

이유는 첫째, 전시장의 위치가 삼청동 PKM 갤러리로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다. 전시를 보기도 전에 힘이 빠지면 안되는 일이니 전시장까지 가는 거리와 교통 편의성을 고려했다.

 

두 번째 이유는 전시 그 자체로서 재미있었으면 했다. 아예 전시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에게 고미술이나 평면 그림보다는 펠트 조각, 악보, 음악 퍼포먼스 등의 활동적인 작품이 덜 지루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국제갤러리와 바로 옆 학고재 갤러리까지 하루에 전시를 세 탕 뛰고 싶은 나의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다.


《We Where》는 홍영인 작가의 개인전으로 사운드 설치, 대규모 자수 작품을 포함한 신작 8점과 2개의 사진-악보 시리즈가 소개된다. 작가는 동시대에 잊혀져 가는 ‘공동체’를 주제로 소수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담아낸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직조 설치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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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ven and Echoed

A Colorful Waterfall and the Stars

 

뒤집어지거나 파편화된 단어들이 직조를 통해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 작품의 텍스트들은 1970-1980년대에 한국 섬유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해체된 말들은 제각기 모여 하나의 콜라주를 이룸으로써 그동안 남성 중심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여성 노동자들의 개별 서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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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되고 깔끔하다기보다 주렁주렁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다. 작가에 의해 하나의 덩어리가 된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니 꼬인 이어폰을 풀듯이 하나하나 해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집단은 결국 수많은 개인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 단번에 시각화 되어 머릿속에 영상처럼 펼쳐진다. 다만 그 중 몇 개 사라지거나 찢어져도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이지만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양면성을 지녔다.


그렇게 전시장을 나오는데 돌담이 보였다. 거기에는 누군가 동그랗게 말아 둔 파이프와 돌담을 뚫고 자란 식물이 묘하게 얽혀 있었다. 그 위로 군데군데 낙엽이 걸쳐 있는 모습에 친구와 나는 “어, 이것도 혹시 작품 아냐?”라고 말했다. 그리고 걸음을 떼자마자 이번엔 정체 모를 전선이 자유로운 형태로 돌담에 말려 있었다.

 

“오, 진짜 예술인가 봐.” 물론 둘 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순간 예술의 목적 중에 하나가 이게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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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길가에 버려진 풍경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는 것.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고자 시도함으로써 삶이 풍성해지는 것이 예술을 감상하는 이유이자 장점이며 또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삶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키우는 과정은 결국 생활을 재미있게 만든다. 사소한 걸 봐도 그 의미를 생각하고 나름의 서사를 마음대로 붙여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지루함을 느끼기엔 생활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재미있게 바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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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인 전시는 나의 감정을 촉촉한 상태로 만든다. 바짝 마른 화분에 물을 갑자기 부으면 물이 내려가지 않고 고이는데, 이미 촉촉하게 젖어있는 화분에 물을 부으면 천천히 스며들면서 오히려 잘 내려간다. 이처럼 전시를 보면 나는 촉촉한 상태가 되어 이후에 맞이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충만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눈 앞의 수많은 시청각 정보들을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다. 그저 나를 둘러싼 하나의 환경일 뿐 굳이 귀 기울이거나 영감을 잡아챌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익숙해지면 막상 필요할 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늘 말라 있어 수분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화분처럼 말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분을 잘 흡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게는,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술이 필요하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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