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헤세가 헤세 했다 -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글 입력 2022.02.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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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헤르만 헤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모른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진정한 책쟁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독어독문과에 갔다고 하면, '헤르만 헤세 좋아하니?'라는 질문이 바로 뒤를 따를 정도로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헤르만 헤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줄여서 새-알 구절로 유명한 책 <데미안>의 저자이자 나를 경악에 빠트린 책 <싯다르타>의 저자인 그를 나는 퍽 좋아한다.

 

나에게도 헤르만 헤세는 책 <데미안>이 처음이었다.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스웨덴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시차 적응이 안 되어 낮과 밤이 뒤바뀐 채로 살던 그때 나는 <데미안>을 꺼내들었다.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이케아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문장부터 찌릿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문장에 알알이 박혀 있는 잔상들에 어쩔 줄을 몰랐다. 굉장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정이 마치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굉장한 꾼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보고 글을 잘 쓴다고 말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어 내려간 책 <데미안>.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 <데미안>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결코 새삼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이 왜 이제야 화제가 된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내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데미안>이 아니라 말한다면, 지금껏 그렇게 찬양을 하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말할지 모르지만, 내가 헤세의 진면모를 느낀 책은 <싯다르타>였다.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소설화한 책 <싯다르타>. 나는 <싯다르타>의 저자가 헤르만 헤세라는 사실을 알고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뭐지? 저 먼 이국 땅에서 어떻게 이런 묘사와 통찰을 담은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실제 석가모니를 만나본 사람인 것처럼 굉장히 섬세한 묘사를 담고 있는 이 책이 그 시절 서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어디서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헤르만 헤세가 살았을 당시만 해도 동서양의 교류가 그리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쩜 이렇게 완벽한 <싯다르타>를 구현해 낼 수 있었는지 '역시 굉장한 꾼이구나', 다시금 속으로 생각했다.

 

우연히 만난 것치고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선사해 준 헤르만 헤세. 그런 그의 글을 볼 수 있는 신작이 나왔다고 하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는 음악을 향한 헤세의 물기 어린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헤세의 음악 찬양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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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꽤 음악을 사랑하지만, 헤세에겐 쨉도 안 되는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온 마음으로 음악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지, 심지어 이게 진짜 한 사람이 쓴 글들이 맞나? 도대체 언제 무엇을 느껴서 이런 글이 나왔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인상적이었던 글 하나를 꺼내보자. 개인적으로 헤트비히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나타>가 기억에 남는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주인공이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달하는 글이었다.

 

감정이 부산스럽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이 느끼는 답답함과 체념 등이 생동감 있게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가끔 헤세의 화려한 수식어구가 잘 소화되지 않기도 한데, 이 글은 읽는 순간 주인공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현실과 마주했을 때, 느껴본 감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헤트비히의 남편은 현실이다.

 

이 밖에도 실제 헤르만 헤세가 출간한 책의 일부를 발췌한 글, 시,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실제로 행진곡과 춤이 그 중요성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다(pp.110)'라고 말하는 헤세의 진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특징적인 글 모양새와 함께 그의 음악 사랑을 한데 모아 두고 있어, 헤세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훌륭한 사료가 될 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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